• 방랑자 (23)

     「박대장께서는.」
    안영준이 머리를 들고 나를 보았다.
    「박사님께서 상해에 오실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여론에 밀려 박사님을 임정 대통령에 임명했지만 박사님께서 오시면 꼬투리를 잡아 자진 사퇴를 시키고는 정권을 잡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허, 임정 대통령이 무슨 큰 직함이나 된다고.」
    쓴웃음을 지은 내가 말했지만 가슴이 무거웠다.

    인간은 인연으로 이어진 생활을 하는 사회적 동물이지만 인연에 얽매이면 큰 일을 할 수가 없다.
    그것이 내 신념이다. 그래서 나는 애써 조직을 멀리했고 인연을 따지지 않았다. 내가 독불장군이라고 불린 것도 그 때문일 지도 모른다.

    안영준이 내 머릿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말을 잇는다.
    「도산은 흥사단원을 모으고 있고 이동휘는 공산당원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래야겠지.」
    내 입에서 생각과는 다른 말이 나왔다.

    내 놓은 김에 나는 말을 이었다.
    「임정을 운영하려면 조직이 있어야 될테니까 말일세.」
    「사(私)조직입니다. 박사님.」

    정색한 안영준이 말을 잇는다.
    「개인의 권력을 위한 조직이란 말씀입니다. 이미 임정의 간부 대부분이 도산과 이동휘의 조직에 가담했습니다.」
    「......」
    「그리고 도산은 자금이 풍족합니다. 미국 국민회에서 자금이 전해져오기 때문에 임정 재정은 도산이 맡아하는 실정입니다.」

    조직을 만들려면 자금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도산이 상해에 가기 전에 하와이에 들린 것도 그 때문일 터지만 조직이 궁극적으로는 독립운동에 도움이 될 것이다. 흥사단이나 공산당도 정부의 정당으로 발전될 수도 있을 테니까.

    이윽고 내가 길게 숨을 뱉았다.
    「내가 임정의 대통령으로 미국에 미주위원부를 설치했고 국민회 모금도 미주위원부 지시를 받아 입출하도록 했네.」

    그러자 안영준이 눈을 크게 떴다.
    「잘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직 시행이 잘 되지 않아.」
    「그럴리가요. 대통령이 지시하신건데.」
    「임정 내부에서 이견이 있기 때문에.」

    안영준이 입을 다물었다. 국민회 회장 안창호가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말을 이었다.
    「도산은 이해했지만 이곳 국민회 간부들이 반발을 하는군.」

    그러나 곧 해결이 될 것이었다. 내가 사심이 없는 한 자신이 있다.

    스스로 다짐하듯 나는 한마디씩 잘라 말했다.
    「이곳 일이 정리되면 상해에 갈거네. 가서 내 할 일을 해야지. 난 잠깐 멈춘 적도 있었지만 뒤로 물러선 적은 없어.」

    그리고는 문득 생각이 떠오른 내가 안영준을 보았다.
    「박용만에게 편지를 써 줄테니 전해주지 않겠나?」
    「전해 드리지요.」
    대뜸 승낙한 안영준이 묻는다.
    「무슨 말씀을 하시렵니까? 박용만씨는 신채호와 함께 박사님의 적이 되어있습니다. 박사님을 비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저도 수없이 들었습니다.」
    「내가 직접 듣지 않았으니 믿을 수 없어.」

    웃음띤 얼굴로 말한 내가 안영준을 보았다.
    「자네도 소문을 다 믿으면 안되네. 소문이란 자신한테 유리하게 만들어져서 나가는 습성이 있는 터라 몇단계를 거치면 전혀 엉뚱한 이야기가 된다네.」

    하지만 박용만과 너무 떨어졌고 오래 만나지 못했다.
    그것이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