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랑자 (21)

     당시에는 모르고 있었지만 아마 조국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 동포들한테도 내 이름이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특히 1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측 승리로 정전이 되었고 미국이 주도하여 세계 질서를 세우는 상황이었으니 나에 대한 기대가 컸을 것이다.

    3·1독립운동은 조국 동포들이 일제의 압제에 저항하고 독립을 갈망하는 욕구가 분출된 것이다. 그것을 계기로 각지에 흩어진 동포들이 서둘러 임시정부를 구성했는데 모두 나를 국무총리, 또는 집정관 총재 등으로 임명했다.

    「안창호씨가 상해로 떠났습니다.」
    필라델피아에 머물고 있는 나에게 김병구가 말했다.

    도산 안창호는 국민회 총회장이니 미국지역 한인의 총대표나 같다.

    김병구가 말을 이었다.
    「하와이를 거쳐 상해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하와이는 동포 대다수가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회의 자금원이기도 하다. 본토에서 걷는 회비는 하와이의 5분의 1도 안되는 것이다.

    머리를 끄덕인 내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미주지역 국민회 총회장이 당연히 가야겠지.」

    도산 안창호는 국민회 총회장으로 국민회를 이끄는 한편으로 흥사단을 조직하여 행동 조직을 갖췄다. 조직 운용이 노련한테다 덕이 있어서 사람들이 따른다.

    나는 조직력이 부족한데다 첫째로 고집이 세었고 둘째 자만심이 강해서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안창호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성품이다.

    오후 8시쯤 되었다. 나는 김병구 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둘이서 응접실에 앉아 있었는데 집안은 조용했다. 필라델피아에 온 후에 나는 김병구의 저택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때 다시 김병구가 입을 열었다.
    「박사님께서도 상해로 가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도산이 가 있으니 당분간은 됐네.」
    내 말에 김병구는 뭔가 부족한 표정을 지었다.

    김병구는 전라도 김제 부잣집 아들로 유학을 왔다가 정착해버렸다. 국민회 지부장을 맡았지만 나를 따른다.

    「하지만 박사님. 임정의 수반이 되셨는데 조각(組閣)도 끝내야 되지 않겠습니까?」
    「거기 있는 사람들이 잘 하겠지.」
    그래놓고 내가 김병구를 향해 웃었다.

    30대 중반의 김병구는 고생을 모르고 자란 때문인지 아직 성품이 부드럽다.

    「아직은 이곳 일이 더 중요하네. 서둘러 갈 필요는 없어.」

    이제 해외의 단체들이 통합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에서 세운 조선민국 임시정부에서부터 만주, 연해주, 상해에 이르기까지 설립된 임시정부가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 모두 나를 임정 대통령, 국무총리, 부도령 등으로 임명했지만 이견도 있을 것이었다. 안창호가 먼저 달려갔으니 나보다 더 잘 조정할 것 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말을 이었다.
    「이제 임시정부가 세워졌으니 미국 지역은 구미위원부 소속으로 되어야 할걸세.」
    「구미위원부로 말씀입니까?」

    정색한 김병구가 되물었다.
    「그럼 국민회는 어떻게 됩니까?」
    「구미위원부에 속해야겠지.」

    그 순간 김병구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 미주 국민회 회장 안창호도 구미위원부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김병구의 표정을 본 내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도산도 다 알고 계실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당연한 일인 것이다. 임시정부 위에 국민회가 있을 수 없다. 상해로 들어간 도산도 알고 있을 터였다. 더구나 안창호는 임정의 내무총장으로 임명 되었다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