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와 1980년대 인간의 자유가 질식하도록 숨 막혔던 엄혹했던 시절에 정의구현사제단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저도 그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저는 정의구현 사제단이 불안스러워지고, 안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 고개가 가로저어 졌습니다. 성직자는 그 시대의 문제점과 그 시대의 숙제가 무엇인지를 통찰하고 성찰할 수 있는 명철함과 냉정함이 있어야 합니다. 성직자는 불의에 불 같이 일어서야 하지만 인간을 신의 가슴으로 품어 안을 수 있는 온유한 가슴이 있어야 하고, 세상을 신의 눈으로 분별할 수 있는 냉정한 머리가 있어야 합니다. 성직자는 인간과 사회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성직자의 말 한마디, 발걸음 하나가 인간의 가슴으로 이어지기에 성직자의 말은 진중해야 하고, 고뇌가 있어야 합니다.

    언제 부터인가,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은 성직자 본연의 임무를 벗어나 이념의 사도들, 그것도 광기와 증오가 번뜩이는 무서운 이념의 사도들로 변해갔습니다.
    우매한 인간의 대표적인 어리석음 가운데 하나는 언어와 행동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쏟아내는 것이고,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고성방가 하는 것이고, 자기가 누구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큰 어리석음은 그 언어와 고성방가에 광기와 증오가 넘치는 것입니다.

    인간의 언어와 의식에 광기와 증오가 넘치면 그 언어와 의식은 죽은 것입니다. 거기서 분출되는 언어가 아무리 정의롭고 수려해도 증오와 광기가 들어 간 언어는 죽은 언어입니다. 그것이 정치의 언어일 때 그 하수인들은 무자비한 권력의 폭도가 되고, 그것이 종교일 때 그 추종자들은 광포한 광신자가 됩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의 원흉이라고 과격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을 때,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은 이들에게 분별력과 이성을 가르치기 보다는 앞장서서 이들을 선동했습니다.
    저는 그 때 거리에서 증오와 광기를 설교하는 정의구현 사제단을 보면서 정의구현 사제단이 병들어 간다는 탄식을 했습니다. 제가 한 때 존경하고 성원했던 정의구현 사제단이 정의란 자기 정의에 병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사는 사회에 정의는 가장 중요한 대들보이고 초석입니다. 그러나 정의가 광기와 증오의 가면을 쓰면 그 정의는 미쳐버리고 정의의 영혼은 죽어 버립니다.

    병들어 가던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은 급기야 스스로의 정의에 칼을 꽂는 비극을 연출했습니다.
    사제들의 큰 어른이고, 신도들의 정신적 지주인 추기경을 향해 "거짓 예언"으로 교회를 분열시키는 "궤변"을 하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 성명서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제 가슴도 이렇게 억장이 무너지듯 아픈데 천주교 신자들은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른바 사제들이, 그것도 명색이 정의를 외친다는 정의구현 사제들이 믿음의 스승 같은 추기경을 향해 이렇게 막말을 할 수 있습니까. 사제단의 언어는 옮겨놓기도 민망스러울 정도로 품위가 떨어집니다.

    "고령을 감안하고 막중한 직무를 존중하여 추기경에 대한 쓴 소리는 삼가고 삼갔다." "노골적으로 정부를 편들어야 하는 남모르는 고충이라도 있는 것인지 여쭙고 싶다" "시중에 나도는 4대강 난개발과 명동성당 불법개발이 한통속이라는 소문이 자꾸만 솔깃하게 들린다." "추기경께서 성경의 예언자들을 소개하기 위해 새 책을 썼다던데 그 분의 예언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이런 말씀은 당신이 사목적 혜안을 과감하게 포기했거나 아예 갖추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해 버리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미움이나 부추기는 골수 반공주의자 면모를 과시하고 있으니 이는 교회의 불행이다."
    정의사제단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에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 소용돌이치는 것은 이들의 어투와 언어가 비 성직자의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 표현이 비비꼬이고, 무례하고, 독선적이고, 천박하고, 불량한 것이 시정잡배도 아닌 성직자의 가슴에서 나왔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습니다.

    정의사제단이 교황의 메시지와 가르침을 인용하면서 추기경을 꾸짖었지만, 그들이 말하는 교황이 추기경에게 이렇게 무례하도록 가르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은 교황의 메시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교황을 추기경처럼 매도할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사랑과 정의는 오직 자기 의견과 같은 사람들에게 있을 뿐입니다.

    저는 미국에 살기 때문에 4대강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 찬반의 타당성과 정당성에도 무지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광우병 문제가 사제들의 기도 제목이 아니었던 것처럼, 4대강이 사제들의 기도 대상이 아니란 것입니다. "조상 대대로 금수강산이라 일컫던 자연 환경은 우리의 무관심과 어리석음으로 망가졌고, 지금도 자연 파괴는 계속 되고 있다"는 사제들의 탄식은 합당한 탄식입니다. 그러나 4대 강 개발을 금수강산을 파괴하는 것으로 비약하는 사제단의 탄식은 틀린 것입니다. 자연이 파괴되는 것에 대한 사제들의 탄식은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심성과 의식과 행태에 관한 안타까움이 되어야지 4대 강 개발 같은 구체적인 정책이 그 탄식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문제는 사제들이 잘 모르는 전문성을 요하는 일입니다.

    "4대 강의 심층적인 문제에 대한 판단은 자연과학자와 토목 전문가 등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 이라는 정진석 추기경의 말은 합당한 분별력입니다.
    사제들은 "4대강 사업은 대표적인 난개발이라는 주교회의 거듭된 질차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하면서 격문을 쓰듯 추기경을 비판하고, 추기경이 주교회의의 분별력을 경시했다고 흥분했지만, 주교들 또한 국토개발 전문가가 아닙니다. 성직자들은 성직에 전념해야지 쇠고기 수입이나 토목 건설 사업에 나설 일이 아닙니다.

    기독교에 문외한인 사람이 사제들을 향해 성경 강의를 한다면 당신들, 사제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책에는 찬반이 있고, 이념에는 좌파, 우파가 있습니다. 성직자가 정책의 찬반과 이념의 좌우에 연루되면 이미 성직자가 아닙니다. 사제들은 성직자이지 과학자나 정치인이 아닙니다.

    성직자가 현실 문제에 나설 때가 있습니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질식당할 때, 성직자들은 생명을 걸고 나서야 합니다. 위기의 상황에서는 성직자도, 학자도, 언론인도, 시민도 본연의 자리를 박차고 거리로 나가는 것이 용기입니다. 그러나 위급한 상황이 지나면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위급한 상황이 지났는데도 계속 과거에 머무는 것은 분별력과 지각이 부족한 것입니다. 아니면 이념에 경도된 운동가가 되는 것입니다.

    시대의 몫을 다했는데도 계속 과거에 머물고, 새벽이 오고 태양이 작열하는데도, 칠흑 같은 밤중으로 착각하고 아우성칠 때 그것은 광기로 가는 것입니다. 광기는 필연적으로 증오를 수반합니다. 추기경을 향해 "아, 이게 무슨 말씀인가!... 사도좌의 높은 가르침을 거슬렀다"고 탄식하는 정의사제단의 탄식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바로 그들이 정의란 이름으로 사도의 성스런 길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는 의로운 것이지만 정의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되고, 정의가 광기와 증오로 포장되면 그 정의는 악이 됩니다. 자기가 믿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다르다고 정부 청사를 폭파시키면서 수많은 시민을 죽인 미국의 광신도도 정의를 외쳤고, 하원의원을 죽이고 신자들을 집단 살상한 미친 목사 짐 존스도 정의를 외쳤고, 9.11 테러리스트들도 정의를 외치면서 만행을 저질렀고, 지금도 이스라엘 광신도들은 정의란 이름으로 팔레스타인 인민을 살상하고, 모슬렘 광신도는 정의란 이름으로 폭탄 자살을 하고 있습니다. 정의는 의로운 것이지만, 정의가 균형을 잃고, 광기와 증오로 오염되면 정의의 강물은 불의로 가득찬 피의 강물이 됩니다. 북한도 사회주의 정의란 이름으로 6.25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은 정의 파라노이드(편집증) 증세로 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중증입니다. 광기와 증오병에 걸린 한국의 극단세력을 정의구현 사제단이 더욱 그 병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천주교의 격을 끌어 내리고, 사제의 격을 실추시키고, 성직자의 격을 천박하게 하고, 한국의 국격을 끌어 내리고 있습니다. 슬픈 것은 정의구현 사제단과 극단 세력만 병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탁류가 한국의 의식과 심성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당신들, 정의구현사제들이 정의의 깃발을 들었던 1970년대가 아닙니다. 2011이 오고 있습니다. 아직도 당신들은 수십 년 전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0년을 보내는 송년의 저녁에 정의사제단의 망언이 계속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당신들의 정의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