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랑자 ⑮  

     국민회 회비 횡령은 사실로 드러났다.

    그해 연말 안수일을 중심으로 한 회원들이 결산을 확인한 결과 1만불이 넘는 회비중 절반인 오천불 정도의 사용처가 불분명했다.

    안수일로부터 그 사실을 들은 내가 격분했다. 동포의 성금을 횡령, 착복하다니. 더구나 고국을 떠나 뜨거운 농장에서 일하며 낸 성금을.

    「법원에 고소를 하세요.」
    내가 자르듯 말했다.
    「그런 사람들은 매국노보다 더 나쁜 사람들입니다.」

    내 말을 들은 교민들은 두말 하지 않고 법원으로 달려갔다. 결국 그 불분명한 돈은 간부들의 횡령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내가 가장 놀란 것은 국민회 회비 대부분이 박용만의 국민군단 병학교 건립과 운영 예산으로 집중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박용만은 국민회 하와이총회가 사단법인 인가를 받도록 앞장서 주선한 선각자 노릇을 했다. 미국 본토에 있는 중앙총회보다 일년이나 빠르게 인가를 받은 것이다. 따라서 박용만은 국민회에서 발행하는 국민신보의 경영권까지 물려받아 사장 겸 주필이 되어있다. 박용만이 국민회의 배후 실세인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 상황이 되자 나는 먼저 박용만을 떠올렸다. 박용만은 공금을 횡령하지 않았다. 박용만처럼 순수한 애국지사는 없다. 그의 주위에 붙은 소인배들이 병학교 건축자금 명목으로 또는 자재 구입 명목으로 자금을 착복한 것이다.

    내가 박용만을 찾아갔을 때는 저녁 무렵니다. 저녁을 마친 박용만은 병학교 건물 2층의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씩 웃었다.

    「형님이 찾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이 사람아, 사람 관리를 어떻게 하는가?」
    대뜸 내가 꾸짖었더니 박용만이 길게 숨을 뱉는다.

    「이제 형님하고 저하고 원수가 되었다는 소문이 쫙 퍼지겠습니다.」
    「내가 그 말 하려고 왔어.」

    앞쪽 자리에 앉은 내가 정색하고 말을 잇는다.
    「그렇게 소문이 나야 자네 주변의 기생충들을 다 떼어낼 수가 있네.」
    「저도 놀랐습니다.」
    다시 길게 숨을 뱉은 박용만이 초점이 먼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지금 박용만의 측근인 국민회장 김종학이 구속되어 있는 것이다. 임원 세명도 조사를 받는 중이다.

    내가 말을 이었다.
    「내가 이 기회에 국민회를 숙정 할테니 자넨 내가 독선적이라고 비난을 하게.」
    「그 동안에 저 쓰레기들을 치우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쓴웃음을 지은 박용만이 나를 보았다.
    「제가 그 쓰레기들에게 의리를 보여주란 말씀이군요.」
    「어쨌든 자네를 따른 사람들이 아닌가?」
    「그랬지요.」

    다시 외면한 박용만이 말을 이었다.
    「저도 조금은 눈치 챘지만 내버려 두었습니다. 병학교 운영자금이 예상보다 많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본토에서 함께 있을 때부터 나와 박용만은 독립 방법에 대한 노선은 달랐어도 서로 존중했다. 박용만의 병학교 건립과 목총만으로의 군사훈련은 우습게 보이겠지만 정신무장에 그만큼 도움이 되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나와 박용만, 둘의 방법이 마찰 없이 함께 진행 되어야만 한다.

    그때 박용만이 머리를 들고 나를 보았다.
    「알겠습니다. 형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박용만의 표정을 본 내 가슴이 무거워졌다. 무척 외롭게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