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교향곡

심양섭 객원논설위원 | 최종편집 2010.12.21 13:07:27

설거지 교향곡
심양섭

‘설거지’라고 하면 뭔가 중요하지 않은 일을 가리키는 것 같은 묘한 뉘앙스가 있다.
실제로도 ‘설거지’는 순서상 어떤 일 다음에 하게 된다. 먼저 요리를 하고, 식사를 하고, 그러고 나서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란 말이 비유적으로 쓰일 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전임자가 뭔가 잘못을 저질러 놓으면 후임자가 그 ‘설거지’를 해야 한다.

이렇게 ‘설거지’라는 말의 의미를 격하(格下)해도 좋은 것인가?
이 질문에 나는 주저 없이 반기(反旗)를 들고 싶다. 나아가 ‘설거지’의 위상을 격상(格上)하자고 감히 주장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설거지’는 어떤 일을 ‘마무리’하고 ‘완성’하는 실로 위대한 일이다.

생각해 보라. 실컷 먹고 나서 설거지도 하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집안이 그야말로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아니, 나중에는 집안에서 요리도, 식사도 못하게 되고 만다. 그와 마찬가지로 비록 전임자의 과오이지만 후임자가 그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면 그 조직은 다시는 새로운 일을 벌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설거지’는 여전히 천대받는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일례로 어느 신랑이 신부를 도와 요리를 거들라치면 신부는 큰 아량이라도 베푸는 듯이 “이따가 설거지나 해!”라고 한다. ‘설거지’는 ‘요리’에 비해 매우 쉽고도 하찮은 일로 치부되는 것이다.
마치 ‘전후(戰後) 복구’는 ‘전쟁’ 자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과 같다.

과연 그런가? 나는 ‘설거지’가 요리 못지않게, 아니 요리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저분한 접시와 그릇들을 하나하나 씻어서 제자리에 놓는 것은 그 자체가 새로운 창조이다. 그저 다른 어떤 것에 부수되는 보잘것없는 일이 결코 아니다. 아내가 요리하고, 남편이 설거지할 때 그것은 단지 남편이 아내의 가사를 돕는 데 그치지 않고, 가사의 중요한 한 부분을 대등하게 담당하는 것이 된다.

사실 부엌일 자체가 오랜 역사에 걸쳐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오죽하면 사내자식이 부엌 근처에 얼쩡거리면 불알 떨어진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나도 내 고향 청송의 바로 그러한 가부장적 문화에서 모든 것을 보고 배우며 성장했다. 학창시절 어쩔 수 없이 자취생활을 할 때나 군대에서 소위 식기당번을 할 때를 제외하면 부엌일은 내 소관이 아니었다. 결혼 후 한참 지나서야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지만 그게 ‘나의 일’이며 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불과 수년 전부터이다.

예전에는 설거지보다 빨래가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대가족의 그 많은 옷가지를 다 손으로 빨았다. 상수도가 없으면 냇가까지 갔어야 했다. 비누도 신통찮았다. 그래도 여름에는 빨래를 할 만했겠지만 겨울에는 정말 고역이었을 것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한 때 피붙이 스물아홉 명이 한 집에 살았는데, 그 많은 빨래가 하도 힘들어서 정 회장의 제수(弟嫂)가 운 적이 있고, 그래서 외식(外食)을 시켜주며 달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설거지를 힘들어했다는 이야기는 그 책에 없다. 먹고 난 포만감 때문에 힘든 줄을 몰랐던 것일까? 설거지가 귀찮아 명절이 반갑지 않다고 하는 요즘 세태에 비하면 정말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설거지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쉬워졌다. 날로 더 성능이 좋은 세제가 나온다. 고무장갑을 사용할 수도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식기 건조대에 식기 세척기까지 나왔다. 나는 거품을 좋아해서 처음에는 세제를 많이 사용했으나 환경에 좋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는 가급적 세제를 적게 쓰려고 한다. 세제를 많이 쓰면 미끄러워 그릇을 자주 떨어뜨리게 되고, 그러면 다른 그릇과 부딪쳐 깨진다. 커피포트를 비롯해 여러 가지를 깨뜨린 기억이 난다. 고무장갑은 대개 사용하지만 무더운 여름철에는 맨손으로 설거지를 한다. 냉수의 시원한 느낌이 매우 좋다. 식기 세척기는 있지만 식구가 단출해서인지 아직 사용해보지는 않았다.

설거지가 많이 쉬워졌지만 여전히 그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요리와 설거지를 한 사람이 하는 것과, 둘이 분담하는 것은 천양지차(天壤之差)다. 아내가 대학의 중요보직을 맡은 두 해 동안 나는 이른바 남성전업주부가 되어 매일 저녁 요리와 설거지를 혼자 해 봤는데 먹는 시간을 포함해 총 두 시간 반이 소요됐다. 단 세 식구밖에 안 되는데도 그랬다. 요리나 설거지 중 하나를 다른 사람이 해 주면 그만큼 부엌에서 해방되어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실제로 내가 설거지하는 동안 아내는 세탁기를 돌리거나 빨래 마른 것을 갠다. 어떤 날은 내가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설거지하는데 아내와 아들은 소파에서 축구 중계를 보며 탄성과 탄식을 번갈아가며 쏟아낸다. 원래 아내가 나보다 축구 보기를 더 좋아한다. 나는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는 축구를 보지 않는다. 설거지 중에 한국 팀이 골을 넣으면 잠시 가서 그 장면을 보고는 다시 와서 설거지를 한다. 아내가 부엌에서 해방되어 축구 중계를 보며 “대한민국”을 외칠 때 나는 행복하다.

설거지는 나같이 몸은 별로 쓰지 않고 머리만 굴리며 사는 ‘먹물’들에게는 매우 좋은 활동이다. 설거지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설거지는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사랑은 동사』(Love Is A Verb)라는 영문 책자를 보면, 어느 남자가 부인과 불임클리닉을 다니며 아이를 갖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쓰지만 결국 실패하게 되는데, 그 때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면서 “나는 자칫 내 삶을 통제하지 못할 뻔 했는데 설거지와 빨래가 내 삶을 붙들어 주었다”고 고백한다. 때로는 설거지와 같은 작은 일상사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나에게 이처럼 행복한 가정을 선사한 조물주를 찬양하고 가정의 더 큰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음식물 찌꺼기도 내가 내다 버린다. 평소에 아들에게도 요리나 설거지를 시킨다. 예를 들어 아들과 내가 단둘이 라면으로 점심을 때운다면 아들에게 라면을 끓이든지 라면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든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하게 한다. 바로 그것이 교육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속한 모임에서 가족동반으로 여행 가서 밥을 지어 먹는다면 내가 팔을 걷어 부치고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한다. 내가 설거지를 할 때 집안은 평화롭다. 설거지는 행복교향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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