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상과학의 세계에서나 등장함직한 일들이 어느 결에 현실로 닥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오늘날 산업 현장 곳곳에 널려 있는 로봇이 그 좋은 예이다.
    체코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였던 카렐 차페크가 <인조인간(R・U・R)>이라는 작품을 발표한 것은 그의 나이 32세 때인 1920년이었다. 이 작품 속에 당시로서는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았던 로봇이 처음 등장했다. 원래 ‘로보타’라는 말은 체코어로 강제 노동을 뜻한다는데, 차페크가 이 말을 살짝 비틀어 ‘로봇’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로봇에게 억지로 일을 시킨다는 뜻이었을까?
    그런데 그런 단어가 생겨난 지 불과 몇 해가 지나지 않아 진짜 인조인간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한 전기공이 만든 ‘텔레복스’는 말을 하는 로봇이었고, 그냥 ‘로봇’이라고 이름 붙인 영국제 인조인간은 무선 조종으로 움직이도록 되어 있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로봇이 나타난 것은 1928년이었다. 교토에서 열린 박람회에 ‘학천칙(學天則)’이라는 이름표가 달린 인조인간이 출품되었던 것이다. 학천칙은 하늘의 법칙을 배운다는 뜻인데, 이 로봇은 서양의 로봇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우선 얼굴 생김새부터가 상당히 철학적(?)이었다. 세계 인류 화합의 심벌로 삼겠다는 제작자의 뜻에 따라 여러 인종의 미적 특징을 한데 모은 탓이었다. 또한 이 로봇은 미소를 짓거나 고개를 주억거릴 줄 아는 이른바 생각하는 로봇이었다.
      그러니 어쩌면 동양의 인조인간이 서양의 인조인간보다 한 걸음 앞선 로봇이었을지 몰랐다. ‘학천칙’은 나중에 독일로 팔려가기 직전에 식민지였던 한반도로 건너와 조선 대박람회에 선보였다고도 한다.
    ‘학천칙’을 만든 니시무라 마코토(西村眞琴)는 예사 괴짜가 아니었다. 그는 히로시마 사범학교를 나와 국립 홋카이도 대학 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한편으로 도쿄대학에서는 이학박사 학위를, 그리고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는 엉뚱하게 철학박사 학위를 땄다. 그리고 로봇을 만들 당시 그의 직업은 저널리스트(<마이니치신문> 과학 담당 논설고문)였다.
    니시무라는 1910년대에 금강산을 뒤지고 다닌 적이 있었다. 만주에서 시작된 생태계 조사의 일환으로, 특히 뱀과 개구리를 연구했다. 이 때 그는 희귀한 개구리 한 마리를 채집하여 관찰기록을 세밀하게 정리한 뒤 뉴욕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에서는 이 개구리를 한국 특산의 무당개구리로 판정 내렸다고 한다.
    로봇과 마찬가지로 공상과학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 화성에 산다는 화성인이 아닐까 싶다. 이쪽은 뭐니 뭐니 해도 영국 작가 허버트 웰스가 선각자다. <타임머신>을 비롯하여 1백여 편의 공상과학소설을 발표한 그는, 19세기 말에 쓴 <우주전쟁>에서 ‘머리가 크고 눈과 입이 두드러지며 낙지처럼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화성인’을 그려 놓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화성인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의 탐사선이 화성을 훑었지만 생명체의 존재는 여전히 불투명한 실정인 것이다. 어쨌거나 화성 이야기를 하자면 또 한 명의 괴짜 일본인을 들먹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우리의 봉이 김선달처럼, 1천8백 명의 일본인에게 화성의 땅을 팔아먹은 일본판 봉이 김선달이었기 때문이다.
    때는 1950년대 초, 하라다 미쓰오(原田三雄)라는 사람이 일본우주여행협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국립 도쿄대학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과학이라는 꿈을 파는 계몽주의자’로서의 길을 걸었던 그는, 아마도 우주로 눈을 돌린 사상 첫 일본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우주여행협회를 만든 뒤 1955년에는 일반인들로서는 생소하기만 했던 우주박람회를 열기도 했다. 옛 소련이 인류 역사상 첫 인공위성을 발사하기 2년 전의 일이었으니 상당히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었던 셈이라고나 할까.
    바로 그 하라다가 일본우주여행협회의 이름으로 단돈 200엔에 화성의 토지 10만 평을 판 것이 1956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한국의 ‘떴다방’과 같은 부동산 투기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도 일본에 남아 있는 화성의 땅문서, 이름하여 ‘화성 토지분양 예약 접수증’이 그런 사실을 증명해준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다가오는 장래에 본 협회에서 계획 중인 화성 개발 사업이 성공할 시에는 귀하의 예약을 우선적으로 존중, 사업부지 내에 10만 평의 토지를 분양할 것을 증명하며 이 증서를 교부합니다.”

    게다가 화성인이 되기 위한 심득 사항이라고 하여 ‘과학존중・예술애호・관대・무욕・우애・남녀초월・평화준수’라는 7개 항목을 명시하고 있다. 2년에 걸쳐 진행된 이 화성 토지 분양 이벤트에는 결국 5천 명 이상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분양가가 1천 엔으로 올랐다는 증언도 있다. 특히 유명 인사들이 여기에 적극 참여했다. 일본 탐정소설의 토대를 구축한 작가 에도가와란포(江戸川乱歩)를 비롯하여 배우, 만담가, 만화작가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수두룩했다. 에도가와란포는 원체 미국 작가 에드가 알란 포(Edgar Allan Poe)를 좋아하는 바람에 발음을 흉내 내어 지은 히라이 타로(平井太郎)의 필명이다. 
    하라다는 좀 더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화성 지주(地主) 대회’라는 행사도 개최했다. 1956년 섣달 그믐날, 도쿄 히비야(日比谷)공원 근처에 있는 건물 옥상에 20대의 대형 망원경을 설치하여 “화성 어디쯤 내가 산 땅이 있나?”를 찾아보게 했던 것이다. 평생을 과학 보급에 몸 바친 하라다는 자칫 희대의 사기꾼으로 몰릴 수도 있는 그 같은 이벤트를 벌인 이유에 대해 “일본인들의 관심을 우주로 향하게 만들어 속 좁은 섬나라 근성을 뜯어고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덕분인지 일본은 1998년 7월, 진짜로 화성 탐사위성을 쏘아 올렸다. 거기에는 27만 명의 보통 일본인들이 화성과 화성인에게 쓴 편지가 마이크로필름에 담겨 함께 실려 갔다. 잇달아 달 탐사위성을 발사하는가 하면(2007년 9월), 미국의 스페이스셔틀에 일본인 우주비행사를 동승시켜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전용 유인 실험실까지 마련했다. 다다미 넉 장 반 크기의 실험실 이름은 ‘KIBO’, 희망을 뜻하는 일본어다. 그에 비해 달 탐사위성은 ‘가구야’, 일본 고대설화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이다. 대나무에서 태어난 가구야는 다섯 귀공자의 구애를 뿌리치고 한가위 달빛을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단다.(가구야는 달의 상공 100킬로미터를 돌면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2009년 6월, 달 표면에 내려앉았다.)
    마침내 2008년 봄, 일본은 여야 만장일치로 우주 기본법이란 법률을 제정했다. 이로써 그들은 군사 목적을 내포한 우주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설 만반의 기술적․제도적 태세를 갖춘 셈이라고나 할까.
    이제 내리나마나 한 결론 한 마디, 하라다와 같은 왕년의 괴짜 일본인들이 묵묵히 척박한 황무지를 개간하고 열심히 씨를 뿌렸기에 오늘의 과학기술대국 일본이 영글었다!


    도서출판 기파랑 펴냄 '일본 상식문답' 중에서
    도서 문의 : 기파랑 02-763-8996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 y2cho8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