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과학기술 연구자 비율은 일본이 세계 1위다?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0.12.15 18:23:02

본격적인 대학 입시 레이스가 시작될 즈음이면 늘 느끼는 일이지만, 우리 청소년들은 특정 학과를 유독 선호한다. 어쩌면 그것은 청소년들 스스로의 선택이라기보다 부모의 뜻일지 모른다. 인문계는 법학과, 자연계는 의예과가 단연 인기를 끄는 것이다. 필경 판・검사가 되어 사회적인 지위를 누리겠다는 출세 지향과, 의사로서 풍족한 삶을 살겠다는 안정 지향의 표출이리라.
일본도 분명 그런 경향은 있다. 그러나 우리와는 달리 집안 대대의 가업을 귀하게 여기고, 과학 분야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점이 크게 다르다. 가업에 관해서는 이따금 “일본에서는 몇 백 년을 이어 내려온 우동 가게가 있다더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와 연관된 비근한 예로는 한 조선 도공의 사연이 있다. ‘사쓰마야키(薩摩燒)’로 불리는 도자기 유파를 이루고 있는 심수관(沈壽官) 집안이 바로 그렇다. 그의 조상은 정유재란 때인 1598년에 일본으로 끌려간 심당길(沈當吉)이라는 사람이었다. 현재의 심수관은 그 14대 손이다. 그는 사립 명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하여 정치에 뜻을 두고 국회의원 비서로 일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사쓰마 야키의 대가 끊어질 위기에 처하자 미련 없이 자신의 꿈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 가업을 이어받았던 것이다.
심수관 집안의 이야기는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소설가였던 시바 료타로에 의해 일본에도 널리 알려졌다. 그가 1968년 6월호 월간 <분게이슌쥬(文藝春秋)>에 발표하고, 나중에 책으로도 펴낸 <고향을 어찌 잊으리>라는 글, 일종의 사쓰마야키 탐방기였던 그 글이 계기를 제공했다.
1968년 봄의 어느 날, 시바 료타로는 여행으로 들른 가고시마의 여관에 묵고 있었다. 비행기 출발시간까지 4시간 쯤 여유가 있었다. 그동안 어디 둘러볼 곳이 없을까 하고 지도를 펼쳤다. 사쓰마 반도가 남쪽으로 뻗어 긴꼬만(錦江灣)을 에워싸고 있다. 바로 그 긴꼬만 해안에 가고시마 시가지가 있고, 서쪽을 가로질러 어항 구시키노(串木野)가 있으며, 그 바로 앞 구릉지대에 나에시로가와(苗代川)라는 이름의 조그만 마을이 있었다. 20년 전 어느 절에서 백자 항아리 조각을 발견했을 당시 처음 들었던 이름, 나에시로가와. 70여 가구가 사는 조선 도자기의 고향.
시바 료타로는 군말 없이 일어나 그곳으로 향했다. 심수관 가문이 대대로 이어내려 오며 도자기를 굽는 곳. 그는 <고향을 어찌 잊으리>에다 이렇게 썼다.

"야트막한 고개를 넘었다. 자동차가 앞으로 기울면서 언덕을 조심스레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앞쪽으로 펼쳐지는 풍경. 그걸 어떻게 형용해야 옳을까. 구릉은 낮은 대신 하늘이 드넓게 열렸으며 그 아래로 바다를 감춘 듯 주위가 밝았다. 길은 화산재 탓인지 색이 바랜 듯이 희고, 나무들은 일부러 그러기라도 한 듯이 푸르름이 한결같이 짙디짙었다. 그곳은 바로 조선의 산하였다.“

변죽을 그만 울리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일본의 과학은 노벨상 수상자의 숫자가 그 수준을 말해준다. 100년이 흐른 노벨상 역사에서 일본인 첫 수상자는 반세기가 지난 다음인 1949년에야 나왔다.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라는 과학자가 양자와 중성자 사이에 있는 중간자의 존재를 밝힘으로써 물리학상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첫 수상 이래 16년 동안 일본인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아마 패전의 흔적을 씻어내고 나라를 다시 세우느라 경황이 없었던 탓인지도 모른다. 이후 일본은 산업 발전과 호황으로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으나 1970년대 말까지 노벨상 수상자는 단 2명(문학상과 평화상은 제외)밖에 더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일본은 서양의 아이디어를 베껴 물건을 만드는 모방의 천재일 뿐이다”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슬그머니 부아가 치민 일본정부와 기업들은 꾸준히 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를 계속했다. 그들이 내세운 슬로건 또한 ‘과학기술 창조 입국(立國)’, 즉 새로운 과학기술로 나라는 일으키자는 것이었다. 우선 과학기술 기본법을 제정했다(1995년). 그리고 마치 경제개발계획처럼 5년 단위로 과학발전 계획을 세웠다. 제1차, 제2차의 10년 동안 38조 7천억 엔을 투자했다. 2006년부터 시작한 제3차 과학발전 프로그램에서는 5년 간 약 25조 엔을 쏟아 붓는다고 했다.
세계 주요 선진국의 과학기술 연구비를 대비한 자료도 있다. 미국이 단연 선두였다. 33조 8천억 엔. 일본은 17조 8천억 엔으로 3위였다. 단 2위는 단일국가가 아니라 EU였다(이상 2006년도 통계, 일본 문부과학성 발간 <과학기술백서(2007년판)>에서 인용). 하지만 과학기술 연구자의 숫자에서는 일본이 인구 1만 명당 64.2명, 노동인구 1만 명당 122.0명으로 세계 1위라고 했다.
전체 연구비의 10퍼센트 이상이 대학에 배당되었다. 대학에서는 그 중 절반가량을 기초연구 분야에, 나머지는 응용연구 분야와 개발연구 분야에 쓰고 있었다. 이에 비해 민간 기업들은 개발연구 분야에 전체 연구비의 상당 부분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대학과 기업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합리적으로 연구비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그렇게 공을 들인 결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2000년에 9번 째 노벨상을 거머쥔 일본은 2001년, 2002년으로 세 해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탄생시켰다. 더군다나 2003년에는 한꺼번에 두 명이 화학상과 물리학상을 각각 받음으로써 오랜 경기 침체로 우울하던 일본인들의 표정을 환하게 펴주었다.
이렇게 되자 계산 빠른 일본 매스컴들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즉 지난 100년의 노벨상 역사상 특히 노벨상 중의 노벨상이라 일컬어지는 자연과학 분야의 수상자는 미국이 200명 이상을 독차지했고, 잇달아 영국과 독일의 순이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만 따로 떼어서 계산하면 15명의 수상자를 낸 미국 다음으로 일본이 4명으로 영국과 더불어 동률 2위라는 자랑이었다. 게다가 일본정부는 2002년 4월 ‘제2기 과학기술 기본계획’이라는 것을 발표하여 “향후 50년 이내에 3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이미 세우고 있었던지라 그야말로 꿈이 현실로 눈앞에 닥친 꼴이었다.(놀랍게도 계획을 세운지 10년도 되기 전인 2008년에 3명의 일본 과학자들이 한꺼번에 노벨상을 받았다. 정말이지 허튼소리가 아니었던가?)
일본인들이 우쭐거리면서 입에 담을 화젯거리도 많았다. 화학상을 수상한 국립 도쿄대학의 명예 교수는 대학 졸업 때 성적이 꼴찌였다고 스스로 밝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간신히 졸업장을 받았지만 그 후의 노력으로 영예로운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은근한 자화자찬(自畵自讚)이나 다름없었다.
바로 이튿날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사람은 더 큰 화제를 뿌렸다. 이제 겨우 나이 43세였던 그 사나이는 유명 대학을 나와 외국 유학을 경험한 ‘박사님’도 아니었고, 관련 학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저명한 학자도 아니었다. 그는 지방에 자리한 조그만 기업의 평범한 연구원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노벨상 수상 이유는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생체 내의 단백질 분석법 개발로 세포 가운데에서 단백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규명함으로써 생명공학 발전에 기여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식품검사와 암 진단 등에 응용되고 있다.”
 
그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일류 기업을 중심으로 해외의 유능한 박사 학위 소지자 모셔오기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사회에서는 사사건건 박사만 찾고, 정작 당사자는 일단 학위를 따고 나면 모든 공부가 끝장난 듯이 책을 덮어버리는 풍토, 그래서야 노벨상의 ‘노’ 자도 꺼낼 수 없음이 자명함을 왜 다들 모른 척 하는 것일까?
기능공들이 솜씨를 겨루는 국제 기능올림픽이 있다. 꽤 긴 역사를 지닌 이 대회에서 한국은 메달을 휩쓸면서 1위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런데도 노벨 과학상 분야에서는 ‘노(NO)’ 메달인 까닭이 있을 법하다. 무엇보다 기술에서 과학으로 넘어가는 장벽이 여전히 두텁다는 점, 그리고 우수한 인재들이 법학과나 의예과 등 코앞의 실리나 챙기는 곳으로만 몰리는 탓이라는 안타까움을 떨치지 못한다.
이러니 어찌 앞서 달리는 이웃나라가 얄밉고 부럽지 않을 손가!


도서출판 기파랑 펴냄 '일본 상식문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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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 y2cho8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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