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본의 고전 명작 '주신구라'의 한 장면.ⓒ자료사진
    ▲ 일본의 고전 명작 '주신구라'의 한 장면.ⓒ자료사진

    <주신구라(忠臣藏)>는 1748년 전통 민중연극 가부키(歌舞伎)의 하나로 초연된 일본의 고전 명작이다. <춘향전>을 모르는 한국인이 없듯이 <주신구라>를 모르는 일본인도 없다고 보면 거의 틀림없다.
    1702년 12월14일, 에도(江戶= 지금의 도쿄)는 하얀 눈에 뒤덮여 있었다. 이날 밤, 막부의 고관이자 미가와국(三河國= 지금의 아이치현 일부) 영주인 기라 요시나가(吉良義央)의 저택에 47명의 사무라이가 들이닥쳤다. 그들은 기라의 목을 베어 어느 절의 경내에 있는 묘 앞에 바친다. 한해 전 기라로부터 모욕을 당하여 참지 못하고 그를 죽이려다 실패, 도리어 막부의 명으로 할복한 아꼬(赤穗, 지금의 효고현 히메지)의 영주 아사노 나가노리(淺野長矩)의 묘였다.
    47명의 무사들은 주군의 원수를 갚으려 1년여 절치부심(切齒腐心)했으며, 이날의 거사로 인해 막부로부터 역시 할복자결을 명받아 16살짜리 소년을 포함한 충직한 부하들이 주군의 뒤를 따른다. 유명 작가 모리무라 세이이치(森村誠一)가 쓴 소설 <주신구라>에 의하면 단 한 명이 살아남아 천수를 누리면서 처절했던 참극의 전말을 기록으로 소상하게 남기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주신구라>의 줄거리다. 외국인의 눈에는 단순한 복수극처럼 비쳐지는 작품이 그토록 일본인의 변함없는 사랑을 독차지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지일 작가 김소운(金素雲)이 일본의 무사도를 설명하며 써놓은 한 편의 글 속에 해답이 나와 있다.

    “이 한편의 복수담 속에는 영주에 대한 충성, 그 충성을 관철하기 위해 스스로 사지(死地)를 택하는 희생정신, 동지끼리의 맹약을 끝까지 지킨 신의 등 무사도의 귀감이라고 할 모든 도의적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그럼으로 해서 후세 사람들이 ‘아꼬기시(赤穗義士)’의 이름으로 그들을 추앙하는 것이겠지만, 한편 그것이 발단에서 종국까지 어디까지나 일본적인 모럴, 일본적인 뉘앙스로 일관된 것이 일반 국민대중의 구미를 한결 돋우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다시 김소운이 남긴 <목근통신(木槿通信)>에 나오는 다른 글 한 토막.

    “떡장수 집 이웃에 가난한 홀아비 낭인(浪人)과 그의 어린 자식이 살았다. 어린애가 떡 가게에서 놀다 돌아간 뒤에 떡 한 접시가 없어졌다. 낭인의 아들인 그 어린애에게 혐의가 씌워졌다.
    ‘아무리 가난할망정 내 자식은 사무라이의 아들이다. 남의 가게에서 떡을 훔쳐 먹다니, 그럴 리가 만무하다.’
    낭인은 백방으로 변명해 보았으나 떡 장수는 종시 듣지 않고 떡값만 내라고 조른다. 이에 낭인은 칼을 빼어 그 자리에서 어린 자식의 배를 갈라 떡을 먹지 않았던 증거를 보인 뒤에 그 칼로 떡 장수를 죽이고 저마저 할복 자결해 버린다.”

    선비 사(士)로도 적는 사무라이(侍)는 배를 주릴망정 명예에 죽고 사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들에게는 충성, 희생, 신의, 염치, 예의, 결백 등의 철칙이 따랐다. 그래서 만들어진 무사도, 그 중에도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는 무사도의 극치를 일러 '하가쿠레(葉隱)' 정신이라 했다.
    사무라이에도 여러 계층이 있었다. 도쿠가와 막부 시절에는 녹봉 5백 석 이상 1만석 미만인 무사를 하타모토(旗本)라 했으며, 그 아래는 하타모토얏꼬(旗本奴)로 불렸다. 또 어디에 속하지 않은 떠돌이 무사 로닝(浪人), 즉 자식의 배를 가른 무사와 같은 낭인도 있었다. 
    그런데 상인도(商人道)는 무슨 말인가? 앞서 말한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작품에 나오는 이런 구절부터 한 번 음미해보자.

    “사무라이에게 무사도가 있듯이, 장사꾼 사이에는 상인도(商人道)가 있다. 산 말(馬)의 눈을 빼는 정도가 아니라 뇌를 뺄 만큼 날렵해야 하고, 자빠져도 그냥 일어나지 않는 근성이 있어야 한다. 무사도와 뚜렷하게 다른 점은 항상 명(名)보다 실(實)을 취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브랜드나 전통 있는 점포로서의 명성은 장사의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장사에서의 명성은 언제나 실적이라는 과일에 의해 쌓여지는 법이다.”

    한 가지 더 있다. 아무리 기업이 ‘돈 놓고 돈 먹는’ 곳이더라도 약간의 인간미는 있어야 한다는 게 나 같은 문외한(門外漢)의 생각이다. 그 점, 19세기 초에 활약한 와타나베 가잔(渡邊崋山)이라는 인물이 내린 정의가 있다. 와타나베는 화가이자 사상가였으며 개혁의 리더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궁핍한 집안 살림을 도우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뛰어난 인물화와 원근법을 도입한 산수화로 유명했다. 그는 어느 장사치의 부탁으로 다음과 같은 ‘상인의 정신’을 적어주었다고 한다.

    첫째, 종업원보다 일찍 일어날 것. 둘째, 열 냥짜리 손님보다 백 푼짜리 손님을 더 소중히 할 것. 셋째, 사간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바꾸러 온 손님은 사갈 때보다 더 정중히 대할 것. 넷째, 사업이 번창할수록 절약할 것. 다섯째, 한 푼이라도 지출이 있을 때에는 꼭 장부에 기입할 것. 여섯째, 항상 창업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지닐 것. 일곱째, 동일 업종의 가게가 근처에 문을 열어도 당당하게 선의의 경쟁을 할 것. 여덟째, 종업원이 독립하면 3년 동안 자금 지원을 해줄 것.

    이 얼마나 인간미 넘치는 장사의 8계명인가! 무사도가 박제되어 박물관으로 들어가 버린 21세기의 지금, 상인도는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걸 보면 장사치가 사무라이보다 한 수 위인가?

    도서출판 기파랑 펴냄 '일본 상식문답' 중에서
    도서 문의 : 기파랑 02-763-8996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 y2cho8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