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올림픽이 팡파르를 울리기 직전인 1988년 봄, 일본에서는 대역사(大役事)의 완공을 축하하는 축포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일본 본토와 북부 홋카이도 및 남서부 시코쿠(四國)를 연결하는 두 교통망의 완성이었다. 하나는 두더지처럼 바다 밑을 파헤쳐서 뚫은 해저터널이었고, 다른 하나는 철도와 자동차도가 위아래로 나란히 달리는 2층 다리였다. 이로써 4개의 커다란 섬으로 이뤄진 일본열도는 말 그대로 사통팔달, 하나로 이어졌다.
    본토 북부 아오모리(靑森)와 홋카이도 쪽 하코다테(函館)를 연결하는 세이칸(靑函) 터널은 착공한지 근 30년 만에 개통되었다. 최대 수심 140미터, 그 아래 100미터를 뚫은 세이칸 터널은 해저(海底) 부분 23.30킬로미터를 포함하여 총 연장 53.85킬로미터인 세계 최장 해저터널이다. 터널의 크기는 높이가 7.85미터, 폭이 9.7미터로 3층짜리 건물이 들어앉을 만한 공간이라고 했다.
    시시콜콜 따질 것도 없지만 재미 삼아 훑어보니 공사에 사용된 시멘트가 151만 입방미터, 화약이 3000톤, 철강재가 16만 8000톤이었다. 그만한 양의 철강재라면 높이 333미터인 도쿄 타워 42개를 세울 수 있다고 했다. 또 터널을 뚫으며 파낸 흙으로 바다를 매립하여 새로운 땅 18만여 평방미터가 생겨났다고도 한다.
    일본이 이 해저터널을 계획한 것은 태평양전쟁 패전 직후인 1946년이었다. 당시 철도 당국은 전쟁 중에 군부가 극비리에 제작해둔 측량도를 바탕으로 터널 건설을 구상했다. 그러나 엄청난 공사비를 마련할 방도가 없어 포기하고 말았는데, 뜻하지 않은 태풍으로 인해 접어두었던 꿈을 실현시킬 수 있게 되었다.
    1954년 9월26일에 일본을 휩쓴 태풍은 흡사 술 취한 주정뱅이와 같은 행보를 보였다. 기상청의 예보로는 분명 일본열도를 벗어나야 했을 태풍이 방향을 틀어 다시 들이닥쳤던 것이다. 아오모리와 홋카이도 사이를 운항하던 4300톤급 여객선 도야마루(洞爺丸)는 예보를 믿고 출항했다가 정통으로 태풍을 얻어맞아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무려 1200명의 희생자가 났고, 그것은 타이타닉호 참사에 이은 사상 두 번째 해난사고였다. 그 바람에 여론이 터널 건설 쪽으로 기울었고, 힘을 얻은 철도 당국에 의해 대역사의 첫걸음이 놓여졌다.
    일본 본토와 시코쿠 섬 사이의 잔잔한 바다는 한국의 한려수도와 같다. 세토 내해(瀨戶內海)로 불리는 이 물길은 일본이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곳이기도 하다. 이 세토 내해 위에 놓여진 다리가 세토대교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토 내해의 5개 섬을 이은 3개의 현수교(懸垂橋), 2개의 사장교(斜張橋), 1개의 트러스교(truss橋) 등 이른바 연육교(連陸橋) 가운데 하나가 세토대교이다.
    1조 엔이 넘는 공사비를 투입하여 10년 간의 공사 끝에 완공된 세토대교는 총 연장 12.3킬로미터에 바다 위 부분만 9.4킬로미터이다. 연육교 전체로 따지자면 총 연장이 자동차도 37.3킬로미터, 철도 32.4킬로미터라고 한다. 이 다리가 개통된 뒤 본토와 시코쿠를 연결하는 두 개의 루트가 더 생겨났다.
    그 중 하나가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로 일컬어지는 아카시(明石)대교이다.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와 가까운 고베(神戶) 앞 바다 아카시해협은 원래 물살이 세고 깊기로 유명하다. 여기에 탑 사이의 거리 1991미터인 현수교(총 연장 3911미터)가 1999년에 놓여진 것이다. 이 다리는 풍속 80미터에 견디며, M8.5의 최강 지진에도 끄떡없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밤이면 다리에 장식된 1천 개가 넘는 색색가지 조명등이 밤바다를 아름답게 수놓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 ▲ 일본이 자랑하는 고속철도 신칸센.ⓒ자료사진
    ▲ 일본이 자랑하는 고속철도 신칸센.ⓒ자료사진

    일본 공영방송 NHK가 방영하여 인기를 끈 프로그램 중 ‘프로젝트 X’라는 것이 있었다. 역사에 남을 위대한 발명이나 시설물을 조명한 다큐멘터리였다. 거기에 세토대교와 세이칸 터널이 소개되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모두가 순수 일본 기술에 의한 결실이었다.
    알다시피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해저터널도 그 후 개통되었다. 도버해협의 바다 밑을 뚫은 유로터널인데, 해저 부분의 길이만으로는 세이칸 터널보다 긴 37.9킬로미터로 세계 1위이다(총 연장 50.49킬로미터). 이 유로터널 공사는 두 나라의 이해가 얽혔던 만큼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지부진했다.
    결국에는 대처 영국총리와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사이에 극적인 합의가 이뤄짐으로써 재추진되었고, 일본 자본과 기술이 공사에 투입되었다. 우리 돈으로 약 15조 원에 달하는 공사비의 4분의 1을 일본은행이 융자했고, 세이칸 터널 건설로 기술력을 쌓은 일본 가와사키(川崎)중공업이 공사를 거들고 나섰던 것이다.

    일본은 지금 한창 초고속열차 신칸센의 마지막 노선 건설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세이칸 터널을 통과하여 아오모리에서 홋카이도의 삿포로(札幌)까지 360킬로미터의 철도를 까는 것이다. 이미 세이칸 터널을 포함한 80여 킬로미터는 신칸센이 달릴 수 있도록 건설되어 있다. 대략 1조6000억 엔을 들여 2015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개통되면 삿포로에서 도쿄까지 4시간에 주파할 것이라고 한다.
    일본은 도쿄올림픽 개최에 발맞춰 도쿄와 오사카 사이의 신칸센을 1964년에 개통했다. 당시로서는 시속 200킬로미터가 넘는 고속열차가 신기하기만 했다. 그래서 ‘꿈의 초특급’이라고 불렀다. 심지어는 어느 왕족이 신칸센을 시승한 것이 뉴스가 될 정도였다. 그런 신칸센이 꾸준히 노선을 확장하여 동해 바다 쪽 니이가타에 이어 남쪽 끄트머리 규슈(九州)에까지 닿았다. 이제 삿포로로 들어가기만 하면 신칸센을 이용한 열도 종단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신칸센을 두고 서슴없이 ‘전후(戰後) 고도경제성장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개통 40년을 맞았던 2004년 7월말까지 주행거리가 지구를 3만 8000번 도는 15억 킬로미터, 이용 인원이 41억 6천만 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객이 희생당한 사고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시속 210킬로미터에서 출발한 이래 점점 스피드가 올라가 2008년에는 최고 300킬로미터에 달했고, 현재 시속 360킬로미터 주행 시험이 거의 완료단계에 들어섰다고 했다. 그러니 맨 처음 신칸센을 깔면서 내세웠던 ‘주요 구간을 시속 20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주행할 수 있는 간선철도’라는 규정도 이제 슬슬 손질할 때가 왔는지 모른다.
    일본경제의 심벌 신칸센, 그리고 건설 기술력의 상징 세이칸 터널과 세토대교.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으나 쓰시마(對馬島)를 중계기지로 삼아 대한해협에도 해저터널을 뚫을 날이 오지 않을까? 일본의 자금력과 기술력, 한국의 우수한 건설노동력이 합쳐진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리라.
    아차, 그런데 KTX와 신칸센의 궁합을 무슨 수로 맞춘다? 하기야 도버해협을 이어놓은 유로터널에서도 서로 상극인 영국의 좌측통행, 프랑스의 우측통행 문제를 극복한 걸로 봐서 우리도 그때 가서 머리를 맞대면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아직은 일장춘몽(一場春夢) 같은 아득한 먼 훗날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지만.
    도서출판 기파랑 펴냄 '일본 상식문답' 중에서
    도서 문의 : 기파랑 02-763-8996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 y2cho8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