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이 더 아름답습니다'

    이른 아침에 산책을 하다가 아주 재미있는 푯말을 보았습니다.
    “나는 겉보다 속이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집을 팔겠다고 내 논 것인데 앞뜰의 잘 손질된 잔디며 자그마한 꽃밭도 정성껏 가꾼 것이 보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도 정돈이 잘 되어 있는 집인데 속은 얼마나 아름답기에 저런 푯말을 내걸었을까?
    오래 전, 미국에 왔을 때 인상 깊게 들은 몇 몇 가지 말이 떠올랐습니다.
    직장을 구하러 갔을 때, “아는 게 별로 없지만 채용해 주신다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든가 또는 사람을 집에 초대해놓고 “차린 게 별로 없지만 맛있게 잡수십시오.” 이런 식의 말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본인 스스로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람을 누가 채용할 것이며, 사람을 불러놓고 차린 게 별로 없다고 말하는 건 실례가 아닌가고.

    “내가 오늘 나의 최선을 다 해 음식을 장만했으니 맛있게 잡수십시오.” 또는 “저는 이 직위에 제가 적임자라고 자신합니다.” 이런 식의 자신만만한 자기소개가 서양식 문화인가 싶을 정도로 서양 문화에서는 정도 이상으로 지나친 겸손이나 겸양은 위선 또는 비굴함으로 간주되기 쉽습니다.

    겉보다 속이 아름답다고 자신만만하게 말 할 수 있는 집.
    그 집 안에 들어가 보고 싶은 호기심이 절로 일었습니다.
    한국에 갈 때마다 속보다 겉이 훨씬 더 아름다운 집을 종종 봅니다. 겉은 대리석으로 으리으리한데 안에 들어 가보면 벽지 여기저기에 곰팡이가 나 있고 화장실에는 퀴퀴한 냄새가 배어있습니다.

    "나는 겉보다 속이 더 아름답습니다." 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아침 산책을 할 때 본 사람입니다.
    조금 떨어져 앞서 가는 사람이 봉지를 들고 걸으면서 가끔 등을 굽히고 뭔가 봉지에 담았습니다. 길에서 무엇을 줍는 걸까? 궁금증이 발동해 걸음을 독촉해 그녀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녀는 길에 버려진 휴지 같은 것을 주어 담으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늘 비슷한 시간에 호수에서 오리들에게 먹이를 주는 여자가 있습니다. 아침 햇살이 막 퍼지기 시작한 새벽에 오리들에게 먹이를 주는 여자. 그녀는 사람들이 먹다 남은 찌꺼기 빵을 가지고 와 오리들에게 주는 게 참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빵부스러기가 호수를 오염시킨다고, 그녀는 애완동물 가게에서 먹이를 사다 주는 것입니다. 
    한 시간 이상 산책을 해도 두어 사람 만날까 말까 한 한적한 동네이기에 사람을 만나면 서로 반갑게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곤 합니다.

    산책을 하면서 길에 버려진 휴지를 줍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골프장에서 퍼팅 그린에 호박씨를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퍼팅 그린에 콩깍지 같은 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 터인데,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호박씨를 까먹으며 그 자리에 그냥 버리는 것입니다.

    이상한 것은 외국 여자들은 골프를 하면서 군것질 하는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는데 한국 여자들은 과자 과일 정도가 아니라 떡이며 김밥까지 싸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골프장에서 무엇을 먹는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먹고 난 후, 뒤처리를 깨끗하게 하지 않을 경우, 그들의 수준이 고스란히 들어납니다.
    공공장소에서 기본 매너조차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아무리 고급 골프채에 비싼 옷을 입었다 해도  아름다움이 추함으로 변해버립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고 간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한국 고속도로 휴게실에 있는 화장실에서 본 고운 말입니다.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해달라는 당부인데 극장을 비롯해 대형 마트나 대형 식당 등, 여성 화장실이 눈살 찌푸려지도록 지저분한 곳이 많습니다. 예쁘게 멋을 낸 여성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화장실 사용 후, 손 씻은 종이를 쓰레기통에 버리기 전에 수도꼭지 주변에 질척하게 젖어있는 물기를 한 번만 닦아주고 버리는 작은 배려가 아쉽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두 사람이 한 방을 사용할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먼저 화장실을 사용한 사람이   세수 대와 샤워 실의 물기를 말끔하게 닦아놓고 나오는 건, 기본 매너입니다. 이런 행동이 몸에 밴 사람이라면 공중 화장실 사용 후에도 저절로 물기를 닦아놓고 나오게 될 것입니다.

    화장실 문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품, 또는 문화의 척도는 그가 얼마만큼 문학이나 음악을 비롯해 예술에 조예가 깊은가 그런 것으로 분별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각 개인의 취향일 뿐 문화의 잣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행동 가짐. 일상생활에서의 매너. 이런 것이야 말로 그 만의 인품, 문화 수준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문화 수준이란 사실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식당이나 가게, 또는 빵집 같은 곳에서 차례를 지키는 것.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들어대지 않는 것, 치사하거나 야비한 짓은 스스로가 허락하지 않아 할 수 없는, 이런 기본 생활양식이 한 인간의 문화수준입니다.

    얼마 전 한국 뉴스시간에 본 것입니다.
    한강 불꽃축제가 끝난 후, 사납게 흩어져 있는 쓰레기는 참으로 볼썽사나웠습니다. 캄캄하니까, 아무도 보지 않으니까, 내가 버리는 건 아주 작은 것이니까, 내버린 것들입니다. TV 화면에 나와서 쓰레기가 너무 많아 기막히다고 말하는 젊은 남녀들을 보면서, 과연 어떤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렸을까 의아했습니다.
    아무리 보는 사람이 없다 하여도 휴지든 담배꽁초든 절대로 길바닥에 버릴 수 없는, 그런 인품이 되어야 진정 '속이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미국의 TV 앵커였던 Walter Cronkite이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그를 평하기를 "He was a  man of the highest integrity."라고 평했습니다.
    Highest Integrity.
    성실함, 진실함, 고결함. 이 모든 것을 총괄한 '최고 최대의 인격'을 뜻한다 하겠습니다.
    세상에는 정계, 학계, 예술계, 종교계, 언론계 등등, 분야마다 지도급 인사들이 많지만 사람들에게 '최고의 인품'이라는 찬사를 듣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 않은가 싶습니다. 흔히 저명한 사람들의 뒷면이 밝혀질 때 최고의 인격은커녕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기본조차 안 돼 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말 따로 행동 따로 인 경우, 그런 사회 속에서 성실함이 삶의 기본 양식으로 자리매김하기 힘듭니다. 성실함이 결여된 사회는 불신과 냉소주의가 팽창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덕과 윤리가 비웃음이 되지 않는 사회.
    오만하지 않고 불손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사회.
    겉보다 속이 더 아름다운 집처럼 겉보다 속이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한국의 문화 수준은 저절로 올라 갈 것입니다. 
     
    김유미 재미작가의 홈페이지 www.kimyum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