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심양섭 객원논설위원 | 최종편집 2010.10.29 15:54:22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심양섭

지난 주 금요일이 결혼기념 22주년이었다.
몇 가지 일에 골몰하다가 그만 결혼기념일을 깜빡하고 말았다.
집에서 아내와 단둘이 저녁을 먹다가 아내가 알려줘서 알았다. 다행히 아내가 저녁 식사 후 교회 집회에 간 덕분에 그 틈을 이용해 꽃바구니를 배달시키고 감사카드도 쓸 수 있었다.

마누라 자랑하면 팔불출이라고 했지만, 오늘은 그런 소리를 듣더라도 아내 자랑을 좀 해야겠다.
결혼 22주년 선물로 값비싼 보석 대신 헌사(獻辭) 한 편을 쓰겠다는데 그마저 이해 못할 세상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나의 표현력을 탓하는 것까지 말릴 생각은 없다.

10년 전쯤 일이다.
아내를 향해 “당신은 애교가 없다”고 불평한 적이 있다. 아내의 반응은 뻔했다. 한 마디로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나는 실로 ‘간 큰 남자’였다. 요즘 같은 여성우위시대에 언감생심 그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같으면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더라도 참을 것이다.

애당초 내가 아내를 택한 것은 그녀가 애교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작은 몸매임에도 강하고 당돌한 면이 맘에 들어 눈여겨보다가 마침내 구애한 것이다.
아내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지도력이 있다는 평을 듣는다. 때로는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다는 지적도 받지만, 그런 만큼 잘 가르치고, 행정력이 뛰어나고, 정치력도 있다. 같은 여성들에게서도 “씩씩하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 어느덧 엄마보다 키가 훨씬 더 커버린 사춘기 아들이 엄마 앞에서는 여전히 꼼짝 못하는 것도 아내의 그런 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와 아내는 예나 제나 닭살 부부는 아니다. 오히려 스스럼없는 친구 사이에 가깝다.
정치, 사회, 신앙, 모든 면에서 대화가 통한다. 목욕하고, 걷고, 영화 보고, 책 읽는 취미가 같다. 지금은 나와 아내 둘 다 술을 거의 안마시지만 한창 때는 술친구이기도 했다.
아내는 내게 마치 매일 먹는 밥처럼, 늘 입고 다니는 옷처럼 편하다. 아니, 살아볼수록 나한테는 딱 안성맞춤이다. 천생연분이라고나 할까.

아내가 매력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내는 손, 발, 얼굴, 몸이 다 작아서 예쁘고 깜찍하다.
옷을 입으면 맵시가 난다. 사진발은 더 잘 받는다. 보조개는 그야말로 백만 불짜리다. 아내가 축소지향형의 매력이 있고 보조개가 정말 예쁘다는 사실을 삼 년 전에야 새삼 깨달았다.
<아버지학교>에 참석해 “아내가 사랑스러운 스무 가지 이유”를 쓰다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아내의 매력 포인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결혼 20주년을 한 해 앞두고 아내를 재발견한 것이다.

어떤 외설 작가는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책을 쓰기도 했지만, 내 아내는 야한 여자와는 거리가 멀다. 아내는 화장을 요란하게 하지 않는다. 내가 비싼 옷을 사준 적이 없어 그런지는 몰라도, 옷도 화려하게 입지 않는다. 동네 할인매장이나 중저가 제품을 파는 백화점을 애용하며, 그것도 특별할인 판매할 때 주로 옷을 산다. 그러면서도 불만이 없다. 사치하거나 허영을 부리지 않는다. 사치를 즐기고 허영심에 빠진 마누라 때문에 평생 고생하는 남자들이 적지 않은 걸 생각하면, 아내의 검약(儉約) 이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복 받은 남자인지 모른다.

아내를 꽃에 비유한다면 장미보다는 개나리나 코스모스에 견주고 싶다. 이른 봄에 잎보다 먼저 피는 샛노란 개나리꽃이 길옆으로 만발한 길을 거닐다보면 내 마음까지도 맑아진다. 푸른 하늘 아래 희고 붉은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들길을 걷노라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내 아내가 풍기는 매력이 바로 그러하다. 화려함보다는 밝음과 청순함인 것이다. 처음엔 눈길을 확 끌었다가 금방 식상해지는 그런 틀에 박힌 미모가 아니라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는 그런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아내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그만의 아름다움, 즉 개성미가 있다. 제 눈에 안경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돌이켜보면 아내에게 감사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내는 내가 군에 있는 동안 3년 동안 변함없이 모든 걸 뒷바라지해 준 조강지처이다. 나는 원래 딸을 키우고 싶었는데 아내는 그 대신에 멋진 아들을 낳아주었다. 나의 그간의 삶은 나이에 비해 퍽 파란만장했다. 그런 ‘잘 난 남자’를 만난 덕분에 아내는 고생도 많이 했다. 특히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럼에도 지난 22년을 하루같이 잘 참아주었다. 결혼 초기에는 내가 아내의 공부를 도왔는데 지금은 아내가 나의 공부를 돕는다.

내가 아내에게 다른 무엇보다도 감사해야 할 일은 나에게 참 신앙을 갖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마치 부나방처럼 자기 몸이 타는 줄도 모르고 권력의 불길을 향해 질주하던 나를 멈추게 해 준 것도,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부패와 타락의 깊은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가던 나를 건져준 것도 신앙이었다. 신앙이 내게 권력이나 재산이나 명예를 직접적으로 갖다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런 것 없이도 즐겁게, 기쁘게, 감사하며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사건이다.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고귀한 선물을 나는 아내 덕분에 공짜로 받았다고 생각한다.

아내에게 미안한 일도 많다.
나는 아내에게 비싼 옷도 사주지 못했지만 비싼 보석도 사주지 못했다. 그럴 능력이 있을 때에도 그러지 않은 것이 지금으로서는 후회막급하다. 아내에게 직접적인 폭력이나 폭언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독설은 뱉은 적이 있으며, 이래저래 마음의 상처를 많이 주었다. 지금은 술 담배를 하지 않지만 결혼 후 14년 동안은 나의 술 담배로 인해 아내가 큰 고통을 겪었다. 아내 앞에 나는 죄인일 뿐이다. 지금이라도 용서를 빈다.

최근에 나는 이런 ‘진리’를 터득했다. 여자와 싸우는 남자는 졸장부이며, 더욱이 여자와 싸워 이기는 남자는 졸장부 중의 졸장부이다. 남은 생애 동안 아내는 물론이고 어떤 여자와도 싸우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잔소리나 불평은 여자의 특권이다. 남편은 아내의 말에 상처받지 말아야 한다.

나는 아내를 잘 몰랐고 지금도 잘 모른다.
단적으로, 아내가 학창시절 국어를 좋아했고 잘했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 아내는 책을 좋아했고, 조숙해서 일찍부터 각 분야의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만 알았는데 글쓰기도 좋아하고 잘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기회가 온다면 아내가 문단에 등단하는 것을 돕고 싶다. 시든 소설이든 아내가 글을 쓴다면 나는 마구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고 지원해 주고 싶다.

내가 아내에게 바라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죽는 날 내 곁에서 임종 기도를 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죽는 날까지 함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으면 한다.
나는 날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다만 아내에게 큰 짐이 되지 않는다면 좀 더 함께 살고 싶다. 나에게는 묘비도 필요 없고, 따라서 묘비명도 필요 없다. 그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다 간 남자로 아내가 나를 기억해주기만을 바란다.

나는 중국 아니라 미국을 준다 해도 아내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심양섭 /객원논설위원, 숙명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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