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정당 가운데 공산당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 한국인들도 어지간히 안다. 한 시절 북한과 아주 가까웠던 예전의 일본사회당을 공산당으로 착각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일본공산당은 폭탄 테러와 납치 등을 이유로 1983년 북한 로동당과 단절을 선언한 이래 여태 교류가 없다.

  • ▲ 일본 공산당의 선거유세 모습ⓒ자료사진
    ▲ 일본 공산당의 선거유세 모습ⓒ자료사진

    2005년 삼일절을 전후하여 한국 사회에서는 또 한바탕 '독도 태풍'이 불었다. 시마네현 지방의회가 독도의 일본식 호칭을 내세운 ‘다케시마의 날’ 제정에 나선 데다가, 주한 일본대사가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 자리에서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 영토’라고 발언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독도’ 이야기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일본의 정치가나 외교관, 공직자 중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외칠 사람은 우선 없다. 그랬다가는 자기네 나라에서 매국노로 영원히 매장 당하거나, 심하면 우익들에게 살해당할 가능성마저 있다. 그런데 여기 딱 한 군데, 분명히 공당(公黨)임에도 일본공산당은 약간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다케시마는 예로부터 일한 양쪽의 문헌에 등장합니다만, 오랫동안 어느 나라의 영토로도 확정되지 않은 채 무인도로 있었습니다. 1905년에 일본이 다케시마를 시마네현에 편입한 뒤로는 국제적으로도 일본 영토로 다루어지게 되었고, 현재는 시마네현 이키에 속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편 한국은 1905년의 일본 영유 절차 자체가 무효이고, ‘독도는 엄연한 한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일본의 천황제 정부가 조선의 식민지화를 추진하던 시기이기도 했으므로 이와 같은 주장에는 검토해야만 할 문제도 있으리라 봅니다.”

    일본공산당 홈페이지에 나오는 ‘Q&A’에 게재된 내용의 일부였다. 당원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나 누군가가 ‘다케시마는 어느 나라 영토이냐?’고 물은 데 대한 일본공산당의 답변이었다. 한 마디로 한국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한국을 거들고 나선 셈이었다. 그것은 일본이 중국 등과 영유권 다툼을 하고 있는 또 다른 두 곳, 센카쿠제도(= 중국명 댜오위다오)와 산호 암초 오키노토리에 대한 일본공산당의 태도와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센카쿠제도에 관한 해석은 이렇게 똑 소리가 난다.

    “센카쿠제도는 분명한 일본 영토이다. 일청(日淸) 전쟁 결과 타이완 등을 할양 받은 것은 일본 측의 부당한 영토 확장에 틀림없지만, 센카쿠제도는 그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일본공산당이 독도문제에서 은근히 한국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1922년 7월15일 창당을 선언하면서 내세운 슬로건이 ‘침략전쟁 반대’ ‘남녀평등’ ‘노동자의 생활 향상’이었기 때문이다. 침략전쟁에 대한 반대는 당연히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대로 연결되고, 을사조약으로 한국의 외교권을 뺏은 뒤 독도를 편입한 행위에 찬성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일본공산당의 기본자세는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 (일부 역사교과서가)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하여 피해를 당한 아시아 각국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로써, 이를 내정간섭이라고 비판해서는 안 된다.”

    일본공산당. 2007년 7월 현재 자칭 40만 명의 당원이 있고, 일본 각지에 2만4천 개의 지부가 있단다. 현역 국회의원은 중의원 9명, 참의원 7명이다.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비하면 3분의 1 가량이나 의석이 줄어들었다.
    미국에도 말뿐인 공산당이 있다고 들었지만, 일본공산당의 지나온 궤적을 훑어보노라면 서방세계에서 공산당 노릇하기가 예사롭지 않음을 증명한다. 우선 창당한지 10년만인 1932년에는 중국공산당과 손을 끊었다. 그쪽이 어른 행세를 하며 자꾸 간섭하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중국공산당과의 관계는 60여 년 세월이 흐른 다음인 1998년에야 회복되었는데, ‘대등, 평등, 상호불간섭’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니 왕년의 간섭이 어지간히 몸서리쳐졌던가 보다.
    태평양전쟁 패전에 이은 연합군의 점령정치,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일본이 다시 주권국가가 되고 난 다음 ‘자본주의 틀 내에서의 민주적 개혁’이라는 당 기본방침을 1961년에 제정했다. 이후 1997년 가을의 제20차 당 대회에서 결정된 강령은 ‘21세기의 빠른 시기에 민주적 연합정부 수립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공산당을 들먹이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이다. 1928년에 창간되어 다른 어느 여야 정당의 기관지보다 고참이고, 발행부수도 1등이다. 더구나 주간지가 아니라 일간이다. 그나마 한창 전성기이던 1980년대에는 어지간한 유명신문 뺨치는 355만 부이던 것이 이제는 절반 이하로 대폭 줄어 하루 평균 170만 부(2005년 통계, 일요판 포함)를 발행한다.
    일간지답게 베이징, 하노이, 워싱턴, 런던, 파리, 베를린, 뉴델리, 멕시코시티, 카이로 등 9개 도시에 10명의 상주 특파원을 파견하고 있다. 평양에도 특파원을 두었으나 북한 로동당과의 관계 단절 이래 철수시켰다.
    이 <아카하타>가 사실은 일본공산당을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본공산당은 당 방침에 따라 일본정부가 각 정당에 나눠주는 국고 보조금을 거부해 왔다. 그렇다고 기업체들로부터 정치헌금을 받는 것도 께름칙하다. 기대느니 오로지 당원들이 내는 당비와 <아카하타> 구독료뿐인 것이다.
    앞으로 일본공산당이 어떤 길을 걸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들의 희망대로 연립정권이나마 세울 수 있는 날이 올지 말지 누구도 섣불리 단언하지 못한다. 그래도 그들은 지방의회의 경우, 무당파(無黨派)를 제외한 정당별 의원 숫자에서 약 4천 명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공산당이 제1당이라는 자랑을 잊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말 희망이 있는 것인가.......?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도서출판 기파랑 펴냄 '일본 상식문답' 중에서
    도서 문의 : 기파랑 02-763-8996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 y2cho8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