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총리와 꽃제비

김성욱 | 최종편집 2010.10.29 15:56:22
김황식 총리는 꽃제비들에 마음 아파 보았나?
 
 
 "왜 꽃제비라고 부르지?"..."꽃이 피는 따뜻한 곳을 찾아 날아다니는 제비처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니까요"
金成昱   
 
 
 북한의 ‘꽃제비’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꽃제비는 북한에서 장마당이나 역전 등을 헤매며 음식을 구걸하거나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는 어린이들을 가리킨다.
 
 탈북자 문제를 다룬 미국인 제프 탈라리고는 ‘다시 그 강가에 서다’라는 책에서 주인공의 입을 통해 압록강 옆 한 탈북여성에게 이렇게 묻는다.
 
 “왜 꽃제비라고 부르지?” ···
 
 “왜냐하면 그 애들이 꽃이 피는 따뜻한 곳을 찾아 날아다니는 제비처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니까요. 체구가 작고 가냘픈 건 성장이 멈춰서 그렇지요”
 
 실제 꽃제비는 유랑, 유목, 떠돌이라는 뜻을 가진 러시아어 ‘꼬체비예’(кочевье)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제비처럼 날아들어 꽃제비라 부른다는 탈북자들 말 속엔 어원(語源) 이전의 한 서린 슬픔이 가득 배어 있다.
 
 굶주리는 꽃제비들을 시·군마다 설치된 2·13수용소, 9·27수용소 등에 수감된다. 2·13, 9·27의 숫자는 김정일이 꽃제비를 잡아 가두라 지시한 날이다. 김정일의 말 한마디로 만들어진 2·13, 9·27수용소 등에는 죄도 없이 끌려온 아이들이 일상적 폭행에 시달린다. 아파도 치료받지 못한다. 400명 정도가 수용됐던 한 수용소에서 벗어나 2003년 탈북 한 한 소년은 이렇게 증언한다.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파 약을 달라고 하면 약 한 알이나 꽃 같은 것을 먹으라고 주는 정도였다. 한 달에 1~2명 정도씩 죽었는데 일곱 살 정도 아래는 굶어서 죽고, 그 이상은 맞아서 죽었다. 허약(영양실조)에 걸려 있으니 각목으로 머리를 한 대만 맞아도 고꾸라져 죽기도 한다. 아이들이 죽으면 안전원들은 자기들이 꾸며낸 문서에 영양실조로 사망했다고 쓰고 안전부 도장을 찍어 처리하는데 시체는 사체실로 보낸다. 사체실에 시체가 쌓이면 차로 바깥으로 옮겨 산에 가져가 구덩이에 모두 묻는다.》
 
 <일곱 살 아래는 굶어 죽고, 그 이상은 맞아 죽었다>
 
 남한에서 사는 것도 녹녹치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자유(自由)가 있다. 그러나 열 살 남짓 아이들마저 제비처럼 떠도는 북한의 모습은 가슴을 찌른다.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직업을 가진 기자는 수많은 ‘적(敵)’들을 만든다. 누구도 좋아하지 않은 얘기, 이른바 좌파(左派)는 물론 기득권에 집착하는 자칭 보수정치권도 달가워하지 않는 게 북한해방과 자유통일의 논리이다. 한국 교회 대부분이 이른바 ‘인도적 대북지원’에 천착하면서 기독교 주류(主流)도 기자 같은 부류를 기피해 버린다. 기독교인에 대한 비판은 특히 극렬한 반대를 부른다. 그 동안 간첩(?)의 공갈·협박은 받지 못했어도 목사들의 공갈·협박은 숱하게 받아왔다.
 
 10년 동안 매우 독특한 직업을 가지며 전직(轉職)을 꿈꾼 적이 많았다. 북한정권을 옹호하는 세력으로부터 억 대의 고소·고발을 또 다시 당한 뒤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체념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극장에 들렀다. ‘크로씽’이라는 영화가 상영 중이었다.
 
 기자는 감상적(感傷的)이지 못하다. 눈물을 보이면 조롱당하는 삼형제 속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깨진 무릎 붙잡고 터뜨렸던 울음이 기억 속에 흐릿하다. 크로싱은 호기심 가는 영화도 아니었다. 북한에 관한 이야기, 대충 알고 항상 쓰고 계속 말해 온 것들이었다.
 
 장마당에 꽃제비, 변방의 구류장, 몽골의 탈주로까지...다 알고 있던 그곳을 보는데 두 눈은 엉망이 됐다. 감당 못할 눈물에 당혹스러웠다. 낮 시간, 큰 극장에 서너 명 밖에 없다는 핑계로 실컷 울었다.
 
  ‘저들을 구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누구에 대한 미움이 아니었다. ‘죽어가는 동족을 살리고, 갇힌 자를 옥(獄)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는 선(善)한 동기의 사랑이었다. 간절히 간구해왔다. 원치 않는 적(敵)을 만든 나의 글과 말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주인공 차인표의 대사는 들리지 않았다. 배우의 눈빛에 공명했다. 아들 ‘준이’에 대한 애끓는 부정(父情)은 나의 마음이었다.
 
 지금도 수많은 용수(차인표 扮)의 절망은 대륙에서 반복된다. 꽃제비로 떠도는 숱한 준이의 죽음이 끝없이 이어진다.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침묵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악(惡)에 대한 방관이기에 앞서 악(惡)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황식 총리는 30일 총리 인사청문회에서 “대북 쌀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완벽한 모니터링을 통해 (流用을 막을) 확실성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해서 인도적 지원을 주저한다면 가혹하다. 부분적으로는 속더라도, 일부 流用(유용)되더라도 동포를 돕는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김황식氏는 “동포를 돕기 위한 대북 쌀 지원” 운운했지만 북한에 주는 쌀은 어떠한 경우도 가련하고 불쌍한 꽃제비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 黨(당)과 軍(군)이 독식한 뒤 남은 10% 미만의 쌀은 배급표를 받은 ‘충성스런(?)’ 주민들에게 돌아갈 뿐이다. 그리고 북한의 폭압체제를 지탱시키는 체제유지비가 된다.
 
 쌀 지원은 동포를 돕는 게 아니라 저 가련하고 불쌍한 꽃제비들의 고통을 연장시키는 악마의 흉기다.
 
 김황식氏가 알고 한 말인지 모르고 한 말인지 중요치 않다. 양심이 굳어버렸건 지식이 없건 총리로서는 결격사유다. 동포들은 울부짖는데 속절없이 시간만 간다.
<김성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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