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6군단 쿠데타, 진상은 이렇다

정치위원 등 장성들, 설득 실패한 군단장 살해김정일, 김영춘 급파해 진압...군단 통째로 해산

온종림 | 최종편집 2010.09.19 18:23:30

<북리뷰>주성하 지음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1994년 1월 2일. 북한 주민들이 설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이날 함경북도에 주둔하고 있는 북한군 6군단 군단장이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이날 함북 청진시 라남구역에 위치한 6군단 사령부 상공에서 헬리콥터들이 굉음을 울렸다. 
그리고 1년 뒤 6군단 정치위원을 비롯한 장성 및 고위 군관들이 무리로 처형되고 군단 산하 사단들이 강원도와 함경남도 주둔군과 교체됐다.
이때쯤 북한에는 소문이 돌았다. 6군단 장성들이 쿠데타를 기도했다는 것이었다.

진상은 이러했다. 6군단 정치위원(중장)이 쿠데타를 꿈꾸고 동지를 규합했다. 군단 보위부장도 정치위원과 의기투합했다.
이제 군단장만 남았다.
북한 군단을 움직이려면 무력 통솔권을 장악한 군단장, 정치책임자인 2인자 정치위원, 군단 감시를 담당한 보위부장 이렇게 3명이 뜻을 모아야 한다.
이들은 군단장을 끌어들이기 위한 기회로 1994년 설날을 잡았다. 상관을 찾아가 세배를 할 수 있는 설날은 장성들이 자연스럽게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였다.
이들은 군단장의 의사를 타진하고 거절할 경우 암살한다는 계획도 세웠다고 한다.
군단장은 쿠데타를 거절했다. 그리고 계획대로 수하들에게 암살됐다.

1994년 초 6군단에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을 때 김정일은 당시 군수총국장이었던 김영춘 대장을 6군단에 급파했다.
김영춘은 파견되자마자 정치위원 등 주도자들은 회의를 한다는 구실로 함남 리원 비행장에 유인한 뒤 그 자리에서 체포했다.
정치위원은 의심을 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리원에 갔다가 포박돼 평양에 끌려올라갔다. 수십 명의 군인들이 차에서 내리는 그를 덮쳤을 때 그는 체포될 것을 각오하고 있었던 표정이라고 한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사람은 훗날 정치위원이 “이놈들아~”하면서 고함을 치다가 복부에 주먹을 맞고 질질 끌려갔다고 말했다.
6군단 뿐 아니라 함경북도당 조직비서 등 군 장성들과 결탁했던 당, 행정 간부들도 체포됐다. 이들은 가혹하게 처단됐고 가족들은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졌다.
그리고 반역의 대명사로 된 6군단이라는 이름은 북한군에서 사라졌다. 6군단은 9군단으로 새로 개편됐다.



이 얘기는 북한 김일성대학 출신의 주성하씨가 자심의 블로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그의 블로그는 불과 생긴 지 2년도 안돼 방문자가 1000만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막강한 파워 블로거인 그의 글은 다른 탈북자와는 색다른 시각과 매끈한 글솜씨를 자랑한다. 동아일보의 수습기자 공채에 정식으로 응시해 당당히 합격할 정도로 그의 실력은 녹녹치 않다. 남한에서 언론사 기자로 활약하는 탈북자가 더러 있지만, 주씨처럼 정식 수습과정을 거친 경우는 처음이다.

블로그와 같은 이름의 이 책은 블로그 글 가운데 일부를 추려 실었다.
그의 글은 좌우나 보수-진보에 따라 크게 엇갈리는 북한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잘못됐음을 깨닫게 해준다.
남한사람이 ‘의례 그러려니...’하고 넘겨온 북한에 대한 사실들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이 글들이 ‘기자 주성하’가 아니라 ‘탈북 지식인 주성하’로서 머리 아닌 가슴으로 쓴 글이라는 것에 있다.
두고 온 고향과 고향사람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가 고향을 떠나야 하도록 만들었던 체제에 대한 아픈 한이 행간에 넘쳐난다.

기파랑 펴냄, 378쪽, 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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