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농사의 추억

심양섭 | 최종편집 2010.09.18 16:31:00

  고향을 떠올릴 때, 빼놓을 수 없는 추억거리 중의 하나가 담배농사이다.
담배농사를 잊을 수 없는 것은 군대생활을 잊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둘 다 너무나 지긋지긋하기 때문이다.

  담배농사는 수많은 농사 중에서도 사람의 손이 가장 많이 가는 농사로 유명하다. 봄부터 겨울까지 사람의 손이 수십 번은 가야 끝난다. 농한기인 겨울에도 사람을 쉬지 못하게 한다. 농사 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농사인 셈이다.

  담배농사는 이른 봄, 비닐하우스 안에서 씨를 뿌려 모종을 키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모가 어느 정도 자라면 밭에 이랑을 만들고 비닐을 덮은 다음, 구멍을 뚫고 한 포기씩 옮겨 심는다. 비가 안 오면 물을 주어야 하고, 농약도 뿌려야 하며, 순도 따 줘야 한다. 담뱃잎이 다 자라서 노란 빛깔을 띠기 시작하면 노란 담뱃잎부터 차례로 따서 말린다. 담뱃잎을 새끼줄에 엮어 황초굴이라고 부르는 건조실 안에 줄줄이 매달고 문을 닫은 뒤 장작불을 지핀다. 담뱃잎이 노랗게 마르면 이번에는 새끼줄에서 그것을 하나하나 빼서 창고에 쌓아둔다.

  담배 밭에 있는 담뱃잎을 모두 따서 말리려면 이런 작업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한다. 그것으로 담배농사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벼농사를 비롯한 다른 농사가 모두 끝나고 겨울이 되면 창고에 쌓아두었던 마른 담뱃잎을 꺼내어 노란 정도에 따라 분류한 다음, 일일이 다발로 묶어야 한다. 마치 딸아이를 예쁘게 단장하여 시집보내듯 마지막 순간까지 정성을 다한다. 그래야 비로소 한 해 담배농사가 끝나고 잎담배 수매에서 좋은 등급을 받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이 담뱃잎을 따는 작업이다. 한여름에 담뱃잎이 우거진 고랑을 헤치며 담뱃잎을 따노라면 진딧물이 옷은 물론이고 머리에까지 달라붙어 끈적거린다. 땀은 비 오듯이 쏟아진다. 부모님이나 형들이 앞에서 담뱃잎을 따서 고랑에 내려놓으면 나는 그것을 한 아름씩 안고 나오는 일을 했는데 한 번은 그것이 너무 힘들어서 밭고랑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던 기억도 있다. 담뱃잎을 밭에서 황초 굴까지 옮기는 작업도 간단하지가 않다. 산중턱에 있는 밭에서부터 집 옆에 있는 황초굴까지 그것을 옮기려면 소뿐 아니라 사람도 고생께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지 중학교 1학년 때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지게에 담뱃잎을 한 짐 가득 지고, 비가 내려 홍수가 난 개천을 건너다 넘어져 한 참을 떠내려 간 적도 있다. 담배 잎사귀 따는 날은 새벽에 일어나 밤까지 일한다. 겨울에는 방안에서 마른 담뱃잎을 다발로 묶는다. 그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코가 따가울 지경이다. 그런 독초를 훗날 23년간이나 맛있다고, 멋있다고 피워댔으니 알다가도 모르겠다. 9년 전에 담배를 끊을 수 있도록 곁에서 잔소리를 단단히 해 주었던 집사람, 그리고 담배를 끊고도 전혀 금단현상이 없도록 내공의 힘을 길러준 하나님께 감사한다.

  담배농사는 워낙 일이 많기 때문에 어느 집을 막론하고 온 가족이 일 년 내내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담배농사를 짓는 집안의 소년들은 대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담배농사에 동원되었다. 일이 너무나 힘들고 일손도 많이 필요한 것이 담배농사였기 때문에, 어른들로서도 아이들을 놀릴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내 소원중의 하나가 담배농사 없는 세상에서 살아봤으면 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도 18세기에 담배농사를 지었지만, 많은 흑인 노예를 부렸던 그를 한국의 담배농가와 비교할 수는 없다. 몇 해 전 미국 연수 중에 버지니아의 마운트 버넌(Mount Vernon)에 있는 조지 워싱턴의 생가와 농장을 방문했을 때, 담배농사의 고된 추억이 떠올라 감회가 남달랐던 기억이 난다.

  내 고향 사람들도 집안 형편이 나아지면 담배농사에서 손을 털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1970년대 후반부터는 내가 살던 동네에서도 담배농사를 그만두고 고추농사로 전환하는 집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고추농사는 담배농사에 비하면 그야말로 할아버지였다. 나의 부모도 고추농사를 지었지만 내가 고추농사에 동원된 기억은 별로 나지 않는다. 고추농사가 시작되기 전에 1970년대 전반에 서울로 유학 왔기 때문이리라.

  담배는 농촌의 대표적인 환금작물(換金作物)이었다. 농가소득을 올리는 데 담배만큼 확실한 게 없었다. 담배농사의 장점은 가격이 안정된 점이었다. 생산량의 전량을 정부에서 수매할 뿐 아니라, 가격까지 보장되었으니 환금작물로서는 최고로 꼽혔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들어도 너나없이 담배농사를 지었던 것이다. 논보다 밭이 많은 청송에서 벼농사는 대개 자급자족하는 정도에 그쳤다. 가족이 먹고 남아 시장에 내다 팔 만큼 벼를 많이 수확하는 집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내 고향 사람들이 담배농사를 그만두기 시작한 것은 생활형편이 훨씬 나아지고 난 뒤였다. 담배를 대체한 환금작물로는 고추, 마늘, 양파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고추를 비롯한 새로운 환금작물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격이 안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후에 따라 풍년이 되면 과잉생산이 되어 값이 폭락하고, 흉년이 되면 공급부족이 되어 값이 폭등하곤 하였다. 그 바람에 고추가 아닌 금추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값이 폭락하여 큰 손해를 보게 되면 다음 해에는 그 농사를 짓지 않게 되는데, 그러면 이번에는 값이 폭등하여 농민들을 화나게 하였다. 나중에는 해외로부터의 수입물량 때문에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정부는 왜 수요와 공급을 제대로 예측하고 통제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농산물 유통과정 개선과 가격안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어릴 때부터 체득하였던 셈이다. 농정(農政)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도 동심 속에 이미 자라났는지 모른다.

  요즘은 사과가 청송의 명물이자, 대표적인 환금작물로 등장했다. 나는 고향을 떠나 온지가 오래 되어 언제부터 고향에서 사과농사가 유행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누군가가 선구자 노릇을 하였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살던 마을에도 사과농사를 짓는 사람이 많다. 특히 젊은 세대가 가장인 집안에서 사과농사를 많이 짓는 것 같다. 처음 투자할 때 돈이 많이 드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수입이 괜찮은 모양이다.

  청송 사과는 맛이 뛰어나다. 청송 사과를 꿀 사과라고 부른다. 청송 사과를 쪼개 보면 속에 꿀이 들어 있다. 청송은 일교차가 커서 사과가 맛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북서부지방인 시애틀 사과가 맛있다. 그 역시 일교차가 크기 때문이다. 나는 시애틀 북쪽의 한 사과 농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더 좋은 사과를 만들기 위해 온도와 습도까지 인공적으로 조절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야말로 과학영농의 현장이었다. 사과 껍질을 깎지 않고 통째로 먹는 것도 부러웠다. 청송 사과는 이제 전국적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대만 같은 해외로도 수출한다. 산 좋고 물 좋은 것에 더하여 청송의 자랑거리가 하나 더 늘어났으니, 이 어찌 향인(鄕人)의 한 사람으로서 기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고향에는 담배를 재배하는 농가가 있지만, 내가 자랄 적만큼 그 숫자가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사과의 성공사례에서 보듯이 굳이 담배가 아니더라도 농가소득을 올릴 수 있는 대체 작물이 개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농사는 그 자체가 힘들 뿐 아니라 제한된 농토에 여러 형제가 매달려서는 돈벌이도 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 둘씩 농촌을 떠나온 것이 그간의 추세였다. 나의 경우도 4남 1녀 형제자매가 모두 객지로 나왔다. 도시생활이라고 해서 쉬운 것도 아니었다. 내 바로 위의 형이 요절한 것도 따지고 보면 생활고 때문이었다. 다들 고생 끝에 이제 겨우 자리들을 잡았다. 힘든 객지생활이지만 청송에서 담배농사를 짓던 때를 생각하면 힘 든다는 말을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담배농사의 그 지독한 맛은 어머니의 갈고리 손 마디마디에 짙게 배었더니 그 어머니도 연전에 돌아가시고 이제 내 마음 한 구석에만 고향의 추억과 함께 남아 있다.
<심양섭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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