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정 드라이브’라는 새 말이 나왔고 이 신조어의 제조자는 이명박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통령이 지난 5일 “공정한 사회를 위하여 사회지도급, 특히 기득권자의 솔선수범을 요구하고 나섰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공정한 사회를 위해 가진 자가 노력해야 하고 정부·여당이 먼저 고통과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내용의 말씀을 하였다기에 나로서는 좀 어안이 벙벙합니다.

    왜 내 마음이 불편한가 하면, 지금까지 이 대통령께서 해 온 일이 ‘공정한 사회’를 지향한 일이었다고 믿고 있었는데 왜 갑작스레 ‘공정한 사회’를 들고 나오시는 것인지, 그 점이 의아스럽고, 또 유명환 외교의 사퇴와 그의 딸 특채 과정의 부정이 있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해도 그것은 지극히 미미한 비리라고 할 수 있는데 왜 이 일로 ‘사정의 칼’ - 서슬이 퍼런 ‘정의의 칼’을 뽑아들고 대한민국 정부의 고관대작을 모조리 질타하시는 것일까, 잘 이해가 안 됩니다.

    ‘공정한 사회’는 어떤 사회입니까.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가 실천·궁행되는 사회이면 족하지 않습니까. ‘가진 자’를 말씀하시는데, 누구를 ‘가진 자’라고 하시는 겁니까. 돈 있는 사람, 그리고 권력 가진 자를 지칭하신 것이라면 대한민국 4700만 인구 중에서 가장 돈을 많이 쓸 수 있고 가장 큰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 말고 또 누가 있습니까. 물론 대통령이 이건희·정몽구 같은 재산가는 아니지만, 그리고 2~3백억 사유재산을 몽땅 사회에 환원하여 개인적으로는 빈털터리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솔직히 말해 봅시다. 오늘 이명박 대통령만큼 큰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누가 있습니까.

    월남 이상재가 구한국 말에 총무국장 자리에 있을 때 하루는 3상중 한 분이 그의 사무실에 들려, “요새 전국에 탐관오리가 들끓고 있으니 여덟 놈의 목을 쳐야겠어” 그의 뜻은 부정과 비리를 척결하기 위하여는 8도의 감사(도지사) 목을 잘라야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월남 이상재는 태연한 말투로, “여덟까지 갈 것 있소. 셋이면 될 텐데” 그 말을 들은 높은 분이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몰라서 어안이 벙벙하다가 마침내 그 뜻을 깨닫고 얼굴이 허예졌다고 합니다. 월남의 뜻은 8도의 감사들 목을 치기 전에, 매관매직에 눈이 어두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세 놈의 목을 먼저 치는 것이 옳다는 뜻이었습니다.

    전직 대통령들의 불법·탈법·탈선은 조사하다 도중에 포기한 그런 정권의 책임자가 과연 ‘사정 드라이브’를 할 자격이 있습니까. 앞서 대통령 노릇을 한 두 대통령이 국장과 사회장을 치를 만한 위대한 지도자였다면, 정권의 교체는 불필요한 과정이었고, 2012년 대선에서는 그 두 대통령의 정신을 받들고 이어나가겠다는 오늘의 민주당의 승리는 불가피하다고 나는 믿습니다.
    <김동길 /연세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