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즈음 한국의 청소년 가운데 단기(檀紀)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니,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들도 단기의 뜻이야 알지 모르나 정확한 연대는 숫자 2333을 더하고서야 계산해낸다. 그러니 젊은 세대들이야 오죽 하랴. 군소리 접고 곧장 들어가자.
    서력 기원, 즉 서기가 예수의 출생을 기점으로 햇수를 셈하는 것인데 비해 단기는 단군 할아버지가 나라님으로 즉위했다는 기원전(BC) 2,333년에서 출발한다. 일본에서는 그것이 황기(皇紀)다. 비록 신화에 근거한 것이로되, 천황 가문의 뿌리에서부터 따진다고 해서 ‘황’ 자를 넣어 황기인 것이다. 이쪽 역시 출생이 아니라 초대 천황의 즉위를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사실이 서기와는 다르다.
    당연히 보통 일본인들은 올해가 황기로 몇 년인지 모른다. 구태여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사는 데 아무 불편이 없다는 뜻이리라. 그렇지만 이 자리에서는 내친걸음에 한 번 귀동냥이나 해보기로 하자.
    일본의 초대 천황은 그 이름이 진무(神武)이다. 우선 일본의 가장 권위 있는 사전 <고지엥(廣辭苑)>이나 유명 출판사 산세이도(三省堂)가 발간한 <콘사이스 인명사전(일본 편)> 등을 종합하여 정리하면 이렇다.

    “<고지키(古事記)>와 <니혼쇼키(日本書紀)>의 기록상으로만 전해오는 제1대 천황. 이름은 간야모토이와레비코(神日本磐余彦). 전승에 의하면 우가야후키아에즈노미코토(草葺不合尊)의 넷째 아들로, 어머니는 다마요리히메(玉依姬)라고 한다. 휴가(日向= 지금의 미야자키현)에서 태어나 궁궐인 다카치오노미야(高千穗宮)에서 살다가 동방의 아름다운 나라 야마토(大和)를 정복하고자 대군을 이끌고 뱃길을 헤쳐 나가 공격을 감행했으나 그 지역 토호 나가스와비코(長髓彦)의 드센 저항으로 실패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남쪽으로 크게 우회하여 구마노(熊野)에 상륙했지만 이번에는 곰으로 둔갑한 그곳 수호신이 퍼트린 독에 의해 군사들이 죄다 쓰러졌다.
    그러나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가 내려준 신검(神劍)이 위력을 발휘하여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나가스와비코와의 마지막 결전에서 고전하고 있을 때, 금빛 솔개 한 마리가 날아와 눈부신 황금빛을 사방에 뿌림으로써 승리를 거두었다. 신유년(辛酉年) 야마토의 가시하라노미야(橿原宮)에서 천황으로 즉위했다고 한다. <일본서기>는 그 해를 기원전 660년으로 적고 있다. 이에 따라 메이지유신 이후 이를 국가의 기원 원년으로 정했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건국설화야 비슷하다지만, 일본의 기록들 또한 이 같은 구수한 옛이야기 같은 사실을 전하면서 말미에 이렇게 솔직한 단서를 달아둔 것이 눈에 띈다. ‘전설적인 색채가 강한 인물이어서 실재성은 의심스럽다. 설화로 전해지는 내력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하여튼 오랜 세월 거들떠보지 않았던 황기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쳐진 것은 메이지 시대에 접어든 이후임에 분명하다. 새로운 근대국가를 세우려던 일본 지도층들은 이제까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던 천황을 전면에 내세워 제국주의의 길로 치달았던지라 황통(皇統)을 미화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자니 자연 창고 속에서 먼지만 잔뜩 뒤집어쓰고 있던 황기를 끄집어낸 것이리라. 그때까지 대다수 국민들의 몸에 배인 음력을 칼로 무 베듯이 단숨에 잘라버리고 양력을 도입했던 메이지 정부였던지라 난데없는 황국 기원의 설정은 어째 앞뒤가 어긋나 보였다. 그것은 달리 어떤 속셈이 있었음을 암시하고도 남았다.
    그 후 대동아 공영권을 외치며 아시아를 유린하던 일본 군부는 기발한 곳에 이 황기를 써먹는다. 다름 아닌 새 전투기의 기종, 말하자면 신상품의 브랜드에다 황기를 끌어들였던 것이다. 일본의 기술력으로 자체 개발한 최첨단 전투기였는데, 탁월한 성능으로 인해 하와이의 진주만 기습 공격 이후 전쟁 말기에 이르기까지 미군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는 이 신형 전투기의 이름이 ‘레이센(零戰)’, 일명 ‘제로센’이었다.
    한자로 영(零)과 전(戰)이니까 뒤쪽 글자 ‘전’은 누구라도 알만했다. 전투기의 ‘전’에서 따온 것임에 틀림없었다. 문제는 앞 글자 ‘영’이었다. ‘영’, ‘제로’.... 비밀은 황기를 알아야 풀린다. 전투기가 선보인 해가 서기로 1940년, 황기로는 2600년이었다. 신무기 탄생을 축하할 해가 마침 황국 기원으로 2600년, 끝 두 자리가 영이니 영전, 즉 레이센이라 명명했던 것이다.
    하지만 장막 뒤의 조종자들에 의해 신의 자리에까지 떠밀려 올라갔던 천황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인간으로 되돌아오면서 황기의 기억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21세기로 넘어간 지금, 일본에서 황기를 들먹이는 한 움큼도 되지 않는 치들은 천황제 신봉자, 극우 행동대원이라고 보면 얼추 들어맞는다.
    이처럼 잊혀진 용어 황기에 비해 엄연히 살아 숨 쉬는 왕조의 용어가 일본에는 있다. 연호(年號) 혹은 원호(元號)라고 불리는 것이다. 우리도 조선왕조 시절에는 연호를 썼다. 이번에도 일단 연호에 관한 일본 사전의 정의를 먼저 읽어보자.

    “해(年)에 붙이는 칭호. 중국에서 황제가 시간까지 지배한다는 사상에 의거하여 한무제 때(서기 BC 140년) ‘건원(建元)’이라고 붙인 게 시작이었다. 일본에서는 서기 645년에 ‘다이카(大化)’라고 칭한 것이 최초였다. 천황이 제정 권한을 쥐고 있다. 옛날에는 신유년(辛酉年), 갑자년(甲子年) 외에도 천황이 즉위하거나 상서로운 일이나 재난이 닥칠 때에도 수시로 바꿨다. 그러나 메이지 이후로는 1세1원(一世一元)으로 굳어졌다. 1979년에 공포된 원호법(元號法)도 황위 계승이 있을 경우에 한하여 개정하도록 못 박았다.”

    다른 항목에서도 다뤘지만 일본 천황은 성씨가 없다. 황족들도 다 마찬가지다. 이름만 있다. 예컨대 대다수 한국인들이 잊으래야 잊지 못하는 히로히토 천황이 있었다. 못 잊는다함은 그가 1921년에 아버지이던 다이쇼 천황의 섭정이 되었고, 5년 뒤인 1926년에 즉위했으므로 한반도 강점기의 절반 이상이 그의 치세였던 탓이다.
    히로히토 천황이 역사상 가장 긴 64년 동안 왕위에 있을 때의 연호가 쇼와(昭和)였다. 그런데 막상 천황이 타계하면 생전에 통용되던 이름마저 역사의 책갈피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연호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히로히토 천황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이제 그의 이력을 사전에서 찾으려면 ‘히로히토’ 대신 당시의 연호를 붙여 ‘쇼와 천황’을 뒤져야 나온다(하기야 불경하다는 생각에서인지 생시에는 인명록에 등장하지조차 않는다.)
    신화에서 출발한 초대 천황으로부터 따져 제125대 째인 지금 천황의 이름은 ‘아키히토’이다. 그가 1989년 1월8일 왕위에 오르면서 정해진 연호가 ‘헤이세이(平成)’이다. 연호는 왕실을 담당하는 궁내청(宮內廳)을 비롯한 일본정부, 그리고 관계 전문가들의 밀실 논의를 통해 정해진다. 헤이세이는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 나오는 ‘내평외성(內平外成)’과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의 ‘지평천성(地平天成)’에서 뽑아낸 말이라고 한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으나 아키히토 천황이 재위하는 한 이어질 연호 헤이세이. 놀랍게도 나이가 지긋한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연호가 서기보다 더 잘 통한다. 이런 식으로....
     
    “뭐라고, 서기 2010년? 그러니까 헤이세이 22년이란 말씀이렸다!”

    고지키(古事記).   712년에 오오노야스마로(太安萬侶)가 43대 겐메이(元明) 천황의 명을 받아 편찬한 일본 최고(最古)의 역사서. 3권으로 엮어져 있다. 상권은 천지개벽에서 시작되며, 중권이 초대 진무천황에서 15대 오진(應神) 천황까지, 하권은 16대 닌토쿠(仁德) 천황에서 33대 스이코(推古) 천황까지를 다루었다. 신화와 전설에다 가요(歌謠)까지 섞여 있어 역사서라기보다 이야기책에 가깝다.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최고의 여신이자 태양신으로 일컬어진다. 일본 왕실이 조상신으로 떠받든다. 하느님의 명을 받아 일본이라는 나라를 만든 뒤  여러 신을 낳은 이자나기노미코토의 딸로 되어 있다.

    도서출판 기파랑 펴냄 '일본 상식문답' 중에서
    도서 문의 : 기파랑 02-763-8996
    조양욱 : y2cho8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