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嘔吐(구토)가 나오는 對北쌀지원 주장  
     정작 죽어가는 자들의 비명엔 귀 닫은 채 "人道的"운운하는 데 역겨움을 금할 수 없다.  
     
     
     북한주민 살려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한나라당 類(류)의 對北쌀지원 하자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반대할 명분이 弱(약)해 보인다.
    그럼에도 對北쌀지원 주장은 한없이 철없고 한없이 역겹게 들린다.
     
     철없는 이유는 북한을 모르는 탓이다. 政權(정권)에 전달된 쌀은 住民(주민)에 가지 않는다. 커가는 市場(시장)을 죽이고 약해진 統制(통제)를 살릴 뿐이다. 김정일은 軍糧米(군량미)로 쓰고 남는 쌀을 굶주린 주민들 통제에 쓴다. 쌀을 움켜쥔 김정일은 인민들에게 풀었다 줄였다 반복하며 이들을 獨裁(독재)의 奴隸(노예)로 부린다. 결국 가증한 선군정치의 통치자금이 되는 것이다.
     
     對北쌀지원 하자는 이들은 북한이 亡(망)했다고 말한다. 이미 망했으니 중국에 앞서 先占(선점)하잔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북한의 경제가 망한 건 武器(무기)를 만들고 수입한 결과다. 대남赤化(적화)공작에 돈을 쓴 결과다. 북한은 무력을 동원한 한반도 적화에 체제의 명운을 걸어왔다. 인민경제는 수탈의 대상일 뿐이다. 김정일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북한과 좌익의 선전에 속아 북한이 다 망한 양 「달러」 주고 「물건」 주고 「쌀」까지 퍼 준 결과는 軍事力(군사력)과 대남赤化능력의 提高(제고)로 정확히 돌아온다.

    인도적이라니? 북한주민도 못 살리고 남한국민 죽이는데 쓰이는데 무슨 人道(인도)가 있는가?
     
     對北쌀지원에「인도적」이란 수식어를 붙여선 안 된다.
    북한동포는 동물원 짐승이 아니다. 그들에게 줘야 할 것은 「쌀」이 아닌 「자유」다.
    북한의 人道(인도)에 그토록 관심 많은 이들이 어째서 自由(자유)는 말하지 않는가? 북한이라는 恐怖(공포)의 大감옥에 신앙의 자유가 있는가?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는가?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는가?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가 있는가? 김일성 초상화에 낙서를 했다고 정치범수용소에 온 가족이 끌려가고, 남한 행 탈북을 시도했다고 공개처형당하는 곳이 북한 아닌가?
     
     북한의 人道(인도)에 관심이 있다면 중국에서 떠도는 수십 만 탈북여성부터 구해야 한다.
    그녀들은 강제송환 후 영아살해·강제낙태 그리고 저주스런 자궁검사와 뽐쁘질 온갖 끔찍한 고통에 노출된 가련한 이들이다.

    人道(인도) 운운하려면『살려달라』 외치는 저들을 죽이지 말라는 말부터 해야 하지 않은가? 수단도 많다. 정 쌀이 주고 싶다면 탈북자 강제송환 중단의 조건이라도 붙여라!
     
     강제송환 후 탈북여성이 겪는 고통은 秘密(비밀)이 아니다. 『운동장 100바퀴를 돌리게 하여 60바퀴를 돌다 실신하여 유산한 여성』,『영아를 조산시킨 뒤 죽이라고 명령하자 정신착란을 일으킨 여성』,『강제로 약물을 주입해 6개월 된 태아를 죽인 경우』,『아이를 출산한 뒤 비닐로 덮어서 죽인 경우』,『임신여성을 운동장을 돌게 해 배를 발로 차서 낙태시킨 경우』...수많은 증언이 정부가 펴 낸 북한인권백서에 기록돼 있다.
     
     『임신한 여성의 배를 걷어차는 일은 일상적』 이라는 탈북여성들의 증언은 반복된다. 그러나 이것이 탈북한 여성의 고통뿐일까? 남자들이 겪는 고통은 이보다 적을까? 꽃제비로 유랑하는 아이들은 또 어떤가?
     
     정작 죽어가는 자들의 비명엔 귀 닫은 채 『人道的(인도적)』 떠벌리는 데 역겨움을 금할 수 없다.
    북한주민 2400만 人權(인권)을 물건 삼아, 남한국민 4700만 安全(안전)을 인질 삼은 생색내기는 위험하기도 이만 저만 아니다.

    7천 만 민족의 생명을 걱정하는 지도자가 없다.
    政治(정치)에 正義(정의)란 찾을 길 없으니 이 땅이 이 모양 이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