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이 퀴즈를 낸다고 치자. “동해 바다 제일 동쪽 끝에 있는 우리나라 영토로...”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개구쟁이들마저 단박에 “저요, 저요!”하며 우르르 손을 든다. 정답 ‘독도’를 모르는 어린이는 단 한 명도 없다. 똑똑한 녀석이라면 이렇게 한 술 더 뜰 것이다.

    “주소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번지에서 37번지까지, 동도가 해발 98미터, 서도는 해발 168미터이고, 전체 면적은 18.6 평방킬로미터, 그러니까 대략 5만 평가량이며...”

    이번에는 일본의 학교 교실. 일본 선생님이 퀴즈를 낸다. “시마네현(島根縣) 오키(隱岐)에서 북서쪽으로 157킬로미터 떨어진 무인도인데, 한국과의 사이에 수시로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 누군가 번쩍 손을 들고 ‘다케시마(竹島)’하고 답해주길 은근히 기대하건만 어린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로 쑥덕거릴 따름이다. “대관절 거기가 어디야?”
    독도에 관한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인지도 차이는 이렇게 컸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의 <도덕> 시간에 사진으로 독도를 가르치기 시작하여 중학의 <국사>와 고교의 <근현대사> 수업에까지 이어지고, 유행가마저 귀에 익으니 일본으로서야 족탈불급(足脫不及)일 따름이었다. 그 바람에 일본의 극우 국수주의자들이 땅을 치며 통곡했다. 그러다가 슬금슬금 작전을 꾸미고 나섰다. 무슨 수를 쓰든 여론을 환기시켜 그런 섬이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평범한 일본인들이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방법은 뻔했다. 국회 답변이나 기자회견 등을 통해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의 입에서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입니다”는 발언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동서고금을 통해 이웃나라와 영유권 분쟁이 이는 땅을 두고 “거기는 우리 영토가 아니다”고 말할 강심장 공직자는 절대로 없다. 그랬다가는 자자손손 매국노라며 돌팔매질 당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앵무새처럼 판에 박은 소리를 한다.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다!” 그러면 한국의 매스컴이 ‘망언’이라면서 뉴스를 내보낸다. 부아가 치민 열혈 한국인들이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으로 몰려가 규탄 데모를 벌인다. 이번에는 일본 매스컴이 그 광경을 보도한다. 서울발 뉴스를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통해 보고 읽으면서 영문을 모르던 보통 일본인들 가운데 “아하, 다케시마라는 섬이 있었군 그래!”라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그걸 곁눈질하면서 작당하여 일을 꾸몄던 치들이 축배를 든다. 대충 이런 시나리오이다.
    지금까지는 이 정도 선에서 그쳤다. 하지만 앞으로는 소형 선박을 몰고 독도 상륙을 시도하는 성깔 사나운 일본 우익이 나타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화끈한 여론몰이를 겨냥한 일종의 극약처방인 셈이다. 그들은 내심 독도를 지키는 한국해양경찰이 자신들을 체포해주기를 간절히 빈다. 그래야 빅뉴스가 되고, 그만큼 남는 장사라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게 틀림없다.
    그들의 수작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철저히 외면하고 무시해버리는 게 상책이다. 어차피 독도는 현실적으로 우리의 관할 아래 놓여 있는 한국영토가 아닌가. 그러니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듯한 짓거리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 정치가들이나 매스컴도 그렇다. 불난 호떡집처럼 부산하게 이 구석 저 구석 온통 들쑤시고 다니거나, 앞뒤 재지 않고 마구잡이로 뉴스 공세를 펼쳐 여론만 자극해서는 이만저만 낭패가 아니다. 정부가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대응하도록 맡겨두어야 한다. 그게 일본 우익들이 헛물켜도록 만드는 묘방인 것이다.
    일본이 이웃나라와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는 섬, 혹은 바위나 암초는 이밖에도 있다. 대표적인 현장이 중국 및 타이완과의 시비가 그치지 않는 동(東)중국해의 센카쿠제도(尖閣諸島)이다. 중국에서는 댜오위다오(釣魚臺)라고 부르는 이곳은 5개의 섬과 부속 암초로 이루어져 있다. 청일전쟁 와중에 일본이 자국령으로 귀속시켰고, 1988년에는 일본 우익 행동대원들이 섬에 상륙하여 등대를 설치하기도 했다.

  • ▲ 일본의 극우단체 ⓒ 자료사진
    ▲ 일본의 극우단체 ⓒ 자료사진

    특히 이 해역 일대에는 석유 매장 가능성이 밝혀지면서 밀고 당기는 공방전이 더 치열해졌다. 5개 섬 중 가장 큰 우오쓰리섬(魚釣島)에서 170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아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타이완 사람들이 국기 게양을 시도하다 불발로 그치기도 했다. 또 중국 공군기와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가 출격하여 서로 으름장을 놓다 돌아간 적도 있는 등 바람 잘 날 없는 영토 분쟁의 현장이다.
    다른 한 곳은 도쿄 남쪽 약 1700킬로미터 떨어진 태평양에 있는 오키노토리(沖の鳥)이다. 섬이라기보다 산호 암초라고 해야 할 이곳은 1543년 스페인 선박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가운데 버려져 있다가 1922년에 와서 일본의 측량함 ‘만주(滿洲)’가 첫 조사를 한 뒤 1931년에 일본 영토로 편입시켰다. 동서 약 4.5킬로미터, 남북 약 1.7킬로미터, 둘레 약 11킬로미터, 깊이 3~5미터의 타원형 환초(環礁)인 오키노토리는 동로암(東露岩)과 북로암(北露岩)이라 불리는 서쪽 끝 부분의 두 암초가 바다 위로 살짝 머리를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일본 정부는 국제적으로 이곳을 영토로 인정받느라 1987년부터 3년에 걸쳐 호안(護岸) 공사를 마쳤다.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파도에 의해 수면 위의 암초가 침식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1999년 6월에는 도쿄도로부터 관할권을 인수하여 국가가 직할 관리하기에 이르렀다. 오키노토리 일대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주장하기 위함임은 자명한 노릇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두 눈뜨고 바라보기만 할 리가 없었다. 중국은 거기가 섬이 아니라 공해상의 암초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임자 없는 무주공산(無主空山)에 자국 해양조사선을 파견, 가스전을 비롯한 과학탐사를 실시함으로써 일본의 격렬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두 나라의 대립은 지금껏 그칠 줄 모른다.
    이에 비해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홋카이도 위쪽 4개 섬과 부속 도서는 역사상 일본 영토임을 러시아 스스로도 인정한다. 태평양전쟁 말기, 느닷없이 선전포고를 한 뒤 밀고 내려온 옛 소련군에 의해 기습 점거된 이곳을 일본은 ‘북방 영토’라고 부르며 끈질기게 반환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러시아로서야 돌려주는 대가로 톡톡히 한몫 잡으려 든다. 그런지라 일본의 거듭된 요청에도 우이독경(牛耳讀經), 호락호락 넘어갈 눈치가 전혀 아니어서 일본정부는 애간장만 태울 따름이다.
    그야 어쨌든 독도 문제는 한일관계를 주시하는 이들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든다. 용기 있는 일본의 한 중진 저널리스트는 독도를 한국에 넘겨주자고 했다가 우익들로부터 역적 취급을 당했다. 또 한 명의 일본인 저널리스트는 한국에서는 독도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는 다케시마라고 부르는 게 어떠냐고 구렁이 담 넘어가는 말을 했다가 한국인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맞았다. 하지만 독도가 감정으로 대응하여 매듭지어질 문제였더라면, 광복 60년이 흐르도록 목에 걸린 가시로 여태 남아 있지는 않았으리라.
    우리가 진짜 신경을 써야할 것은 따로 있다. 국제법상 ‘바위(rocks)’냐 ‘섬(island)’이냐 하는 논란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외국 주요 기관과 언론사 등지의 자료에 독도가 일본 땅으로 엉뚱하게 기재되어 있는 것을 바로잡는 일 또한 여간 중요하지 않다. 내 품에 있는 내 땅을 두고 우리끼리 둘러앉아 새삼스레 ‘내 것’이라 절규하는 사이에, 일본이 살금살금 국제사회를 파고들어 제 편 끌어들이기에 열중한다면 이야말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이 아닐 수 없다.

    도서출판 기파랑 펴냄 '일본 상식문답' 중에서
    도서 문의 : 기파랑 02-763-8996
    조양욱 : y2cho8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