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복, 처복 그리고 여난?

심양섭 | 최종편집 2010.07.16 14:54:26

여복(女福)이라는 말이 있다.
아름다운 여자가 잘 따르는 복을 말한다. 고울 염(艶) 자를 써서 염복(艶福)이라고도 한다.
어느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얼마 전 사귀던 여자와 헤어졌는데 그 공백을 틈타 세 여자가 한꺼번에 몰려들었단다. 이럴 때 “그 남자는 여복도 많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사주풀이를 해서 먹고 사는 어떤 작자는 자신을 찾아온 한 남자에게 “돈 복은 많은데 여복이 아주 없다. 여자만 잘 잡으면 인생 성공하는 것이다”라고 일견 그럴 듯해 보이는 처방을 내놓기도 한다.

처복(妻福)이라는 말도 있다.
훌륭한 아내를 맞이하게 되는 복, 또는 아내 덕분에 누리는 복을 말한다.
이를테면 “그 영감은 자식 복은 없지만 처복 하나는 타고난 사람이다”라는 식이다.
소설가 김원일은 『불의 제전』에서 “새장가까지 두 번이나 들었지만 처복이 없어 한 여자는 이태 만에 죽었고, 또 한 여자는 도망을 가 버렸다”라고 말한다. 아내를 세 번이나 맞았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헤어지게 되었으니 아내 복이 지지리도 없는 남자라는 것이다.

여복과 처복이 여자 덕분에 복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면 여난(女難)은 여자 때문에 고난을 겪는 경우에 속한다. 여색(女色)이나 여인과의 교제로 인하여 생기는 근심과 재난인 것이다.
예를 들면 “여난을 타고난 팔자인지 그는 오나가나 여자 때문에 일을 망친다”라고 한다.
소설가 박종화는 『금삼의 피』에서 “계집 때문에 혹화(酷禍)를 당한 이가 한두 사람뿐이 아니다. 이야말로 여난이다”라고 한다. 여자문제로 인해 극심한 곤경을 겪은 남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여복과 처복과 여난의 공통점이라면 한 결 같이 남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의 불행이나 고생의 책임을 여자에게 돌리는 것이다.
여자가 도망을 가 버린 것이 과연 여자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하던 시대에나 가능한 논리이다. 남녀평등, 나아가 여남평등 혹은 양성평등을 말하는 오늘날에는 그런 일방적 논리가 통할 수 없다. 여자가 도망을 갔으면 그 책임소재는 객관적으로 규명해 보아야 한다.
대개는 남녀 공히 문제가 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남자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을 수도 있다.

여난이라는 말은 더욱 조심해서 써야 할 것 같다.
남자가 여자문제로 인해 겪는 어려움은 항상 여자에게 원인이 있다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기실 남자가 여난을 겪는 것은 자신의 잘못된 처신에 근본원인이 있다. 스스로의 지나친 호색성향과 무분별한 여성편력이 부른 화를 놓고 여자에게 책임을 돌려서야 되겠는가.
소위 꽃뱀에게 물렸다고 하더라도 물린 남자에게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언어는 문화의 산물이다.
한국인이 유사 이래로 얼마나 남성중심 가부장 문화 속에서 살아왔는지는 여복과 처복과 여난이라는 말은 있는 반면에 남복과 부복(夫福)과 남난이라는 말은 없는 데서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남자가 여자나 아내를 잘 만나는 것이 복이라면 여자가 남자나 남편을 잘 만난 것도 복이고, 그렇다면 남복과 부복(夫福)이라는 말도 있어야 한다. 물론 속담 중에는 “남편 복 없는 여자는 자식 복도 없다”는 것이 있다. 시집을 잘못 가서 평생 고생만 하는 신세를 한탄하여 이르는 말이다.

남자들은 흔히 자신도 여복이 많았으면 하고 기대한다.
늘 자기 주변에 아리따운 여인들이 득시글거렸으면 한다. 심지어는 마누라가 일찍 죽고 젊은 여자에게 새장가 드는 꿈도 꾼다. 자기 나이는 생각지 않고 마누라가 사라져 주기만 하면 20대 여대생과도 결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한 마디로 이 세상에서 여복이 가장 많은 남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참으로 꿈도 야무지다.

현실은 다르다. 남자와 여자 중에서 먼저 죽는 것은 보통 여자가 아니라 남자이다.
그 점은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같다. 아니, 한국이 유난히 여자보다 남자가 일찍 죽기로 유명하다.
한국남성의 평균 기대수명은 76.5세이다. 여성평균수명 83.3세에 비해 무려 6.7년이나 짧다.
한국 남녀 간 수명 차이가 점차 줄고는 있으나 다른 나라에 비하면 여전히 크다.
예를 들어 산마리노의 남성과 여성의 평균 수명은 각각 81세와 84세로 3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미국은 남자 76세, 여자 81세로 5년 차이가 난다. 일본이 남성의 평균 수명은 79세, 여성의 평균 수명은 86세로 7년 차이가 나서 한국과 가장 비슷하다.

한국과 일본 남자가 여자에 비해 일찍 죽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아직까지도 남자들이 주로 가족부양을 책임지는데다가 과잉경쟁사회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하곤 한다. 그뿐 아닐 것이다.
한국 남자들은 유별나게 술과 담배를 많이 한다. 남자 흡연율은 OECD 국가 중 최고이다. 흡연과 과음은 암과 같은 불치병을 유발한다. 한국에서는 이른바 주량(酒量)이 역량(力量)으로 통하기도 할 정도이다.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일찍 죽는 한국적 상황에서 남자가 새장가 드는 꿈은 그야말로 헛물을 켜는 것이다. 실제로는 많은 한국 남자들이 과로와 스트레스, 술과 담배로 일찍 죽는 바람에 오히려 여자들이 ‘새시집’ 가는 일이 많다. ‘여복 많은 남자’는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여복을 지나치게 즐기다가는 여난 당하기 십상이다.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은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이혼 경력이 있는 유일한 경우다.
레이건은 3류 배우 시절 이혼의 아픔을 겪은 뒤 낸시와 재혼하고 나서는 아내 한 여자에게 모든 사랑을 바쳤다. 값비싼 보석과 명품 옷을 사준 게 아니라 마음을 다 주었다. 떠돌이 강사로 아내와 떨어져 지낼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온 맘을 담아 편지를 썼다. 그것도 화려한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쓴 것이 아니라 호텔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것을 사용했다. 평범한 종이였지만 거기에 순정을 담았기에 아내를 감동시킬 수 있었고 백년해로할 수 있었다.
그는 3류 배우였지만 인품은 일류였다. 여복 많은 남자가 아니라 여복을 스스로 창출한 사나이였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도 손꼽힌다.

남자들은 흔히 아내와 함께 길을 걸으면서도 딴 여자에게 한 눈을 판다.
오입질을 하거나 바람을 피기도 한다. 그렇게 만나는 여자들이 주는 기쁨은 일시적일 뿐 아니라 뒤끝이 허망하여 오히려 고통이 된다. 달콤하지만 금방 말라버리는 샘에 비유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아내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아무리 길어 올려도 마르지 않는다.
그 참맛을 음미하면 그보다 더 달콤한 물은 있을 수가 없다. 아내는 가정의 행복 샘이다.
숙녀를 귀히 여길 줄 아는 남자가 여복이 있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가 가장 여복 많은 남자이다.
처복은 아내를 사랑할 때 비로소 생긴다.

남자들이여, 여난을 당하지 않으려면 아내를 사랑하라.
“네 샘을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얻은 아내를 즐거워 하여라.”(잠언 5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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