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정권+從北단체 주도
     "Corea는 6.15선언 이행, 민족 공조, 외세 개입 차단, 反민족적 정치세력 제거 위해 필요" 

     6.15선언 실천에 앞장서 온 박인주 청와대 시민통합수석 내정자가 참가한 또 다른 활동은
    소위 「C-코리아 되찾기」 운동이다.
     
     <북한정권과 종북단체의 Corea 국호 변경 선동>
     
     「C-코리아 되찾기」 운동은 대한민국의 국호인 Korea를 Corea로 바꾸자는 주장이다.
    이는 2002년 6월 월드컵 당시 T-셔츠에 Corea 문구가 잠시 등장한 뒤 같은 해 말 북한정권과 국내 從北(종북)단체 선동으로 본격화됐다. 북한정권과 從北(종북)단체는 대한민국이 한반도 내 唯一(유일)합법정부라는 정통성 부정 차원에서 Corea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해왔다.
     
     남북한 좌익의 최초 大衆(대중)선동은 2002년 9월7일 「남북축구대회」였다. 「통일연대」와 「실천연대」라는 단체는 이날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 남북축구대회에서 「One Corea」가 새겨진 하늘색 티-셔츠와 한반도기를 준비해 소위 시민들과 거리응원을 벌였다.
     
     「실천연대」는 북한의 지령을 받아서 反국가활동을 벌이다 지난 해 利敵團體(이적단체)로 판시된 단체이다. 「통일연대」는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철폐·한미동맹파기·615선언 실천』을 주장하며 2005년 9월11일 인천 맥아더동상파괴 亂動(난동)을 벌였던 단체이다.
     
     통일연대를 이끌었던 한상렬은 현재 密入北(밀입북) 상태이며,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한충목은 북한의 지령을 받아서 『주한미군철수』,『맥아더동상파괴』 등을 기도한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이 단체 사무처장 민경우는 間諜(간첩) 혐의로 두 번이나 실형을 살았다.
     
     <北, 남한에 Corea 국호 개정 토론 제의>
     
     從北(종북)단체를 통해 변죽만 울리던 북한은 2002년 12월27일 직접 선동에 나섰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일본은 식민지였던 「조선」이 국제무대에서 일본(JAPAN)보다 뒤에 있어야 한다는 「고약한 심보」 아래 국호의 영문표기 첫 글자 C를 K로 바꿨다』며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문 표기인 「KOREA」를 「Corea」로 정정하는 문제를 다룰 공동토론회를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조선중앙방송은 하루 전인 26일 『국호의 영문표기를 바로잡기 위한 북한 언어학학회, 역사학학회 연합학술토론회가 인민문화궁전에서 개최됐다』며 토론회 참가자들은 『국호의 영문표기를 바로잡는 것은 일제에게 짓밟히고 억눌려온 우리 민족의 역사를 되찾고 일제의 식민지 잔재를 청산해 민족의 존엄을 지키는 중대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再犯(재범)간첩, 『6.15이행 강력히 촉구할 수 있는 운동』>
     
     2003년 들어서도 북한정권과 從北(종북)단체의 Corea 선동은 계속됐다.
     
     2003년 3월9일 북한 평양방송은 『Corea라는 국명 표기가 20세기 초 日帝(일제)가 조선을 강점할 때 KOREA로 바뀌었다』며 『여기에는 일본 특유의 교활하고 고약한 심보가 작용했다』고 반일감정을 부추겼다.
     
     통일연대는 2003년 4월25일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해 9월29일 과천시민회관 등지에서 Corea 국호변경을 촉구하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사무처장 민경우는 인권委(위) 행사에서 『단일기(한반도기)와 아리랑보다 1민족 1국가 철학을 확산시키는 데는 Corea 사업이 현재적 의미가 있다』며 특히 『6.15선언 이행의 관점에서 민간 통일운동이 강력히 촉구할 수 있는 운동으로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경우는 2003년 8월27일 「Corea 되찾기 운동에 참가하자」는 통일뉴스 기고문에서 「Corea 되찾기 운동은 『일제가 조작한 영문 표기, Corea를 되찾고 이를 대중적으로 확산하는 운동은 가장 강력한 6.15선언 이행 운동』,『민족 공조의 이념을 간명하게 집약한 대중운동』 및 『외세의 개입을 차단하고 반민족적인 정치세력을 제거하는 운동은 6.15 공동선언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민경우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間諜(간첩) 혐의로 두 번이나 실형을 살았던 인물이다. 再犯(재범)간첩의 해석에 따르면, Corea 국호 변경 운동은 6.15선언 이행과 소위 민족 공조, 외세 개입 차단, 反(반)민족적 정치세력 제거를 위해 필요하다는 요지이다.
      
     2003년 5월14일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는 「일제잔재 청산과 영문 국호 Corea 되찾기 청년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단체는 利敵團體(이적단체)로 판시된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였다.
     
     발제자로 나선 김상일 한신대 교수는 『더 이상 우리는 일본과 미국의 질곡에 시달릴 수도 필요도 없다』며 이른바 反외세를 주창하면서 다음 번 國號(국호)는 『영어로는 Corea, 우리 말로 「韓(한)연방고려공화국」을 국호로 정할 것을 제안했다.
     
     한청의 간부인 송현석은 『통 큰 대담한 사업과 일상 사업이 병행돼야 한다』며 『당면해서 북측과의 청년 교류 테마로 청년들이 국호 Corea를 민족공조 측면에서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양 김일성대학에서 남북한 토론회 개최>
     
     2003년 8월21일에는 평양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소위 「국호 영문표기 문제 남북 학술토론회(공동준비위원장 강만길 상지대 총장. 문영호 조선언어학회 위원장)」가 열렸다.
     
     이날 남북한 참가자들은 토론회 후 「남과 북, 해외의 학자들과 온 겨레에게 보내는 공동호소문」을 발표, 『긍지롭고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영문 국호 Corea가 일제에 의해 농간질 당했다』며 『온 겨레가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굳건히 지켜 나가는 데 앞장설 것』을 호소(?)했다.
     
     <2004년부터 박인주 내정자도 참가>
     
     2004년 들어 Corea 국호 변경 선동에 박인주 사회통합수석 내정자도 참여한다. 
      朴씨는 2004년 5월29일 경희대에서 열린 「통일국호 Corea 되찾기 연대회의 제1차 포럼」에서 『Corea 국호개정운동은 남과 북이 통일이후 구호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운동이며 남·북·해외를 아우르는 8천만 민족의 한민족 공동체를 구성하여 통일뿐만 아니라 문화공동체, 역사공동체로서 이 지구촌에 민족적 자존심을 드높일 수 있는 운동이다』고 설명했다.
     
     2005년 이후 Corea 국호변경 문제는 종북단체의 맥아더동상 철거 난동, 평택범대위 반미 폭동 등으로 이슈에서 밀려났다. 놀라운 偶然(우연)은 북한정권의 문제제기가 사라지자 남한 내 從北(종북)단체도 일제히 침묵해버린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