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북자가 쓴 북한 급변 사태 시나리오>
     
     北독재가 붕괴됐다고 해서 외과수술식 방법으로,
    혹은 풍부한 상상력과 돈으로 북한을 점령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 

     김정일 사후 북한은 어떻게 변할까? 그리고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지금껏 많은 시나리오들이 제기됐지만 탈북자인 내가 보기엔 북한 체제의 특수성을 과연 얼마나 고려했는지 의심이 든다.
    미국이 무력으로 이라크를 점령했지만 평화의 전쟁에선 지금도 피를 흘리고 있는 이유가 체제의 속성과 그 제도권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을 다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우리와 한 지맥을 잇고 있기도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인접한 곳으로 이 두 대국의 전략적 지역이기도 하다.
    더욱이 다른 독재와 달리 일인 신격화 독재이며 주민들 또한 거기에 세뇌되어 변화(!) 이 말이 얼마나 힘 있고 아름다운 것인지 아직, 그리고 앞으로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북한 독재가 붕괴됐다고 해서 외과수술식 방법으로, 혹은 우리들의 풍부한 상상력과 돈으로 북한을 쉽게 점령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김정일이 죽어도 그 독재하에서 팽창된 기득권이 남아있는 한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을 찾을 것이며 중국의 동북아전략과 맞물려 새로운 독재가 만들어질 것이다. 

     또한 설사 자유통일이 된다 해도 현재 북한 주민들의 속성과 정서를 인정한 기초 위에서 단계적인 설득과 접근, 포옹이 없다면 또 다른 분열이 발생될 것이며 온갖 이해와 탐욕이 충돌하는 과정에 더 큰 화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탈북자의 시각에서 본 김정일 사후 북한 급변사태 시나리오를 적어보려고 한다.
     
     1. 김정일 사후 돌발적 권력공백
     
     북한 급변사태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해볼 수 있다.
    첫째, 김정일의 급사로 인한 돌발적 권력공백,
    둘째, 김정일의 병 악화로 통치능력을 상실했을 때 후계정권이 서둘러 준비되는 불안정한 권력과도기, 셋째, 김정일 사후 이해집단간의 무정부적 권력충돌이다.
     
     나는 일부에서 거론하는 루마니아식 인민봉기는 있을 수가 없다고 본다.
    수령의 주체만 있고 개인의 주체는 철저히 빼앗긴 북한 주민들은 아무리 분노해도 자기 손으로 감히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는 의식과 행동을 할 수 없다. 더욱이 북쪽에 중국이라는 퇴로가 막혀있는 한 개인들의 분노심은 준비됐다 해도 3대멸족 공포 연장선에서 조직화되기는 어렵다.
     
     다만 김정일 사후 권력층 각 계파들이 민심을 의식할 수 밖에 없고, 또 민심에 호소하는 산발적 행동들도 유발되는 등의 계기로 주민들이 자기들의 존재감을 인식하는 정도일 것이다.

    첫째 경우인 김정일 급사 이후 권력공백에 대해 예단하기전에 우리는 김일성 사망 시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아마 김일성의 죽음은 일인체제인 북한에 새로운 정권교체경험을 하게 한 유익한 기회가 됐을 것이다. 수령이 죽었을 때와 그 혼란을 예방하는 방법, 주민들에게 무엇으로 유도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정권이양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김일성은 7월 7일 죽었는데 북한 정권은 하루가 지난 7월 8일 오후 12시에 중대발표를 통해 이 사실을 알렸다.  
     그 하루 사이에 김정일은 돌발상황에 대비하여 사전에 모든 감찰 보안 및 무력기관들에 24시 비상 대기령을 비밀리에 명령하고, 계승통치를 김일성의 유훈으로 조작할 수 있었다.
    이 뿐만 아니다. 전국에 충성검증의 애도정국을 강요하는 한편 남한과 미국의 북침 위협에 대응 한다며 전시상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이렇듯 신속한 권력절차들이 가능했던 것은 김일성의 주석권한이란 상징적 의미일 뿐 1980년대 중반부터 이미 모든 권력이 완벽하게 김정일에게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북한의 절대 신인 김일성이 죽었음에도 주민들이 수령공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 ▲ 김정일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은.
    ▲ 김정일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은.

     
     
  • ▲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 
    ▲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 
    그 이유는 당선전선동부의 감성권력으로 수십년 세월 김정일 신격화를 주입시킨 결과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을 김일성의 대체인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런 착시효과가 없었다면 아무리 김정일이라도 피의 전쟁없는 정권계승이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북한 사정은 조금 다르다.
    김일성 때처럼 기나긴 세습권력과정도 없으며 설사 지금부터 후계선전을 한다고 해도 그 몇 년의 세뇌는 김정일의 죽음이란 충격에 산산히 깨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배급제 붕괴 이후 지금의 북한 주민들은 시장에 적응하는 과정에 이념가치보다 물질가치에 더 체질화 되어 굳이 실패한 지도자를 모방하려는 3대세습을 자기들의 현실로 인정하기 힘들어 할 것이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후광을 자기 대에 다 지워버린 것만큼 김씨 우상화도 더는 남아있지 않다.
    이런 형편에서 김정일이 어느 날 갑자기 급사하면 시간을 최대한 벌기 위해 북한 정권의 중대발표는 김일성 때보다 더 늦어질 것이다.
    아니 사망날짜를 조작하면서까지 아예 몇 달 동안 숨기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때의 권력공백을 알고 지킬 그 몇 사람에 의해 북한은 새로운 과도정부가 구성될 것이다.
     
     일부 북한학 학자들은 집단지도체제 가능성도 운운하지만 틀린 말이다.
  • ▲   장성택.
    ▲   장성택.

    북한은 중앙과 지방 말단 기관에 이르기까지 일인체제로 집중됐고 간부들이나 주민들의 사회적응심리도 마찬가지다. 만약 집단지도체제가 작동될 경우 시작하는 순간부터 김정일 사망을 압도하는 국가적 혼란과 부작용이 터져나올 것이다. 집단지도체제란 표면상 일인체제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권력계파의 충성심판에 의해 즉석에서 처형될 수도 있다. 신격화 끈이라도 부여잡고 일명 김정일 암살 명분으로 쿠데타를 시도하려는 무장세력도 속출할 수 있다.
     
     결국 김정일 아들 중 하나를 중심으로 극히 제한된 핵심일부가 과도정권을 구성할 것인바, 그 몇 사람이란 장성택, 오극렬, 당조직부 제1부부장 김경옥, 황병서, 강관주와 같은 한정된 인물들이 아닐까 싶다. 장성택은 김정일 후광을 후계자에게 조명시키는 한편 정책결정과 권력실무를 대리전담,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당조직부 제1부부장 김경옥, 황병서는 군통제 및 감시 지도기능, 강석주는 재빨리 중국의 지원과 협조를 구애하는 외교역할로 분담될 것이다.
     
     이 중 가장 선두적 핵심 역할을 담당할 인물은 오극렬이다.
  • ▲     오극렬.
    ▲     오극렬.


    왜 굳이 오극렬인가는 북한 무력기관들의 속성과 구조적 문제를 알면 그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먼저 사회질서와 감시를 맡고 있는 인민보안성과 국가보위부는 장성택 지도 영역에 있지만 유사시 권력기관들을 상대로 무력으로 대응하기엔 역부족이다.
     
     호위사령부는 육해전 전투능력을 보유한 일개 군단무력이지만 김정일을 위해 존재하는 부대로서 구심점이 사라질 경우 정체성을 잃고 만다. 설사 후계자 호위부대로 신속 개편된다 해도 시간적으로도 문제지만 김정일 암살설까지 난무할 그 시점에 그동안 김정일 친위대로 자부했던 최고의 권력부대가 장성택 지휘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하리라는 담보도 부족하다.
     
     평양시 위수경무부는 단순 평양시내에서의 군인질서와 단속 부대로서 그 역량이 너무 보잘 것 없다. 수도방어사령부는 예전에 장성택 형인 장성우가 사령관으로 근무할 당시에는 별도로 중앙당 직속 부대로서 파워가 대단했지만 3군단장으로 옮겨진 이후 현재는 조선인민군총참모부 산하로 편입됐고 주화력이었던 포사령부마저 분산되면서 축소됐다.
     
     일각에선 북한군부 내 무장 쿠데타 가능성도 제기하는데 그것은 북한군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인사권과 지휘권 모두 당 조직부에 장악되어 허울 뿐인데다 군 고유의 수직명령 체계가 아닌 말단 부대에 이르기까지 부대장, 정치위원 두 권력이 상호 감시 및 견제하는 이중명령체계에 구속돼 있다.
    또한 김정일 외 다른 개인우상화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3년에 한 번꼴로 바뀌는 지휘관순환제는 개인결심에 의한 무장동원력을 원천적으로 말살시켰다.
     
     그러나 오극렬인 경우 7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 자리를 지켜 부대장으로서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의 당 작전부는 침투뿐 아니라 유사시 남한에 선제 공격할 수 있도록 도시 게릴라전과 테러에 훈련된 7000명의 살인병기들을 갖고 있다. 이라크 전쟁 이후 도시전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금은 그 숫자가 더 확대됐는데 이 인원만 가동시킨다면 권력 핵심 인물들에 대한 장악과 강제성은 충분히 확보될 수 있다.
     
     장성택정권이 김정일 사망을 발표하기 전 반드시 한반도 내 전쟁이 발발할 경우 중국이 자동개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항미원조조약부터 복원하려 할것이다. 이 조약발표는 대내외적인 억제효과도 있지만 중국의 우선 개입을 담보로 저들의 정권 합법성을 주장하고 미국과 남한의 간섭을 초기에 차단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면 지금 북한 급변 사태 시나리오대로 북핵, 인권, 자유총선거 문제로 미국이나 유엔이 들어갈 수 있는 명분은 사실상 얼마나 될 것인가?
    그때의 북핵은 더는 김정일 신격화 수단이 아니다. 굳이 6자회담 틀에 구속되지 않고도 정권담보에 이익이 된다면 친중 과도정권은 중국의 대외정책에 힘을 실어주면서까지 북핵을 포기할 수도 있다. 북한 주민들도 역시 향후 달라질 중국식 개혁개방에 기대를 갖고 정권을 지켜볼 것이며 그러는 사이 중국의 영향력은 더 커지는 반면 우리 남한의 영토주장, 민족주장은 공허한 울림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내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