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년만에 처음 정부 주관으로 열린 전쟁기념관에서의 제2연평해전 8주년 기념식을 남다른 감명으로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장편소설 ‘연평해전’의 작가 최순조씨. 그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바친 제2연평해전 용사들의 이야기를 그 소설에서 사실적으로 그려 넣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일본 NHK와 KBS 1TV에서 특집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 ▲ 작가 최순조씨 ⓒ 뉴데일리
    ▲ 작가 최순조씨 ⓒ 뉴데일리

    최씨는 해군 부사관으로 11년2개월동안 근무했다. 그의 마지막 근무지가 연평도 해군고속정전진기지였다. 80년대 말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는 세탁소, 기계회사, 라디오방송국 등에서 일했다.
    그러던 그가 안정된 미국에서의 삶을 떨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단지 제2연평해전 용사들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기 위해서였다.

    “제2연평해전 소식을 뉴욕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사건이 있던 날은 우리나라가 터키와 월드컵 3, 4위 자리를 놓고 다투던 날이었어요. 거리가 월드컵 응원으로 온통 붉은 색이었지요. 붉은 티를 입고 붉은 두건을 쓰고 얼굴에 태극기와 축구공을 그린 젊은이가 TV에 나왔습니다. 기자가 ‘오늘 오전에 연평도에서 북한군과 싸우던 우리 해군이 전사했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하고 물었어요. 그 젊은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거요? 낮에 뉴스 봤는데요, 그거 군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젊은이는 그렇게 대답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다시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쳐댔습니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거기다 해군장이라는 이유로 소위 해군참모총장 위 분들은 장례식장에 단 한 명도 얼굴을 나타내지 않았고, 대통령은 나 몰라라 하고 일본으로 축구경기 구경 갔습니다. 정말 나라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씨는 “그 잘못 된 것을 말하고 싶어 소설 쓸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글과 거리가 멀었던 것이 고민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을 거들떠보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았어요. 글공부를 해서라도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 ▲ 연평해전 ⓒ 뉴데일리
    ▲ 연평해전 ⓒ 뉴데일리

    최씨는 뉴욕에서 2년에 걸쳐 작가수업을 받고 귀국했다. 단지 제2연평해전을 글로 남기기 위해서였다. 유족들과 참전 용사, 해군 관계자들을 망라한 취재 끝에 지난 2007년 ‘서해해전’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집념은 결실을 맺었다. 2008년 7월엔 증보판인 ‘연평해전’도 나왔다.
    책이 나오자 여러 일들이 생겼다. 국군군의학교에 새워진 고 박동혁 병장 흉상제막식 행사 때 비석에 새겨 넣을 비문을 부탁받기도 했고 박 병장의 모교인 안산 경안고등학교에서 해마다 갖는 추모식에 추모사를 4년 째 하고 있다.
    3년 전엔 신기남 의원과 유삼남 해양연맹총재를 도와 ‘사단법인 서해교전 전사자 후원회’를 발족하는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대선 때는 이명박 당시 후보가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해와 전쟁기념관에서 만났다.
    “그 자리에서 ‘서해교전’ 명칭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해전’으로 바꾸어 줄 것과 제2연평해전 행사를 국가가 주관해야 마땅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결과는 반신반의 했는데, 대통령 당선된 뒤 약속을 지키셨어요. 오늘 첫 정부주도 행사를 보니 마음이 뿌듯합니다.”
    하지만 정작 국내 언론들은 냉랭할 만큼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몇몇 라디오 방송에서 몇 마디 물어 본 것과 KBS 1방송국 시사 프로그램 ‘쌈’에서 잠깐 다룬 게 전부. 이웃 일본 NHK 방송국에서 특집방송을 포함하여 두 차례 방송한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제2연평해전은 한마디로 치밀한 계획아래 감행한 제1연평해전 복수극이었습니다.”
    김정일은 사건이 있기 약 2달 전인 5월1일, 약 300여명의 수행원과 함께 해군사령부를 순시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때 제1연평해전 패전 장군인 북한 서해함대사령관 김윤심은 숙청되지 않고 해군사령관(해군참모총장)으로 진급해 있었고, 한국의 승전 장군 해군2함대사령관인 박정성은 진급은커녕 좌천되어 한직에 머물고 있었다. 박정성 제독이 좌천된 이유는 북한의 요구 때문이라는 사실은 비밀 아닌 비밀이 되었다.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에 대해 당시 대통령과 정부는 젊은 군인들을 죽음으로 내 몰고도 애도하지 않았고, 국민은 월드컵 함성에 도취해 까맣게 그들을 잊었습니다. 월드컵이 끝나자 정부와 정치인은 대선 준비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국민은 효순이-미순이를 추모한답시고 촛불을 들었어도 제2연평해전 전사자에 대해 눈물은커녕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이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자국 군인에게 저지른 무례함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최씨는 “국군통수권자가 나라를 수호하다 전사한 군인을 버린 나라, 국토방위를 위해 목숨을 던진 용사를 외면한 정부, 국민의 안녕을 지켜낸 용사들의 희생을 무관심으로 보답하는 국민, 더 이상의 홀대가 또 어디 있겠나”라고 분노했다.

    최씨는 천안함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천안함 사건이 가뜩이나 기우뚱거리던 대한민국 사회통합을 침몰직전으로 몰고 갔습니다. 일부 언론은 국방부 발표를 ‘불편한 진실’로 여론몰이 기사를 냈고, 국회의원 중엔 북한 노동당 대변인 같은 발언으로 북한개입설을 차단하려는데 정신을 판자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는 우리 해군의 핵심장비 성능과 대북 잠수함 작전능력, 해군전술지휘통제체계(KNTDS), 서해 경계 작전계획, 초계함 대잠장비 성능 등을 북한에게 까발렸고, 우리가 북한 잠수함과 잠수함기지 간 교신내용을 감청하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고자질하고 만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최씨는 “따뜻한 가슴이 없는 언론이 두터운 입술로 말을 늘어놓거나, 양심이 없는 국회의원이 명석한 머리로 당의 이익을 셈하면서도 유가족들의 살갗 떨리는 고통을 불구경했다”고 지적했다. 천안함 사건은 언론과 국회가 제 기능과 역할을 못하고 있음을 만천하에 알린 사건이라는 것이다.

    “2002년의 서해바다가 어떤 바다였습니까? 대전 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참수리357 6용사의 희생으로 지켜 낸 우리의 바다입니다. 그 바다가 지켜졌기에 우리의 강토가 온전할 수 있었고, 우리는 온전한 강토에서 월드컵을 온전하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6용사들은 젊음과 함께 장대한 꿈을 미처 펴보지 못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들의 몸을 바쳐야만했습니다.”
    최씨는 “아들을 잃은 부모의 고통, 지아비를 잃은 아녀자의 아픔, 아버지를 잃은 자식의 불행은 단지 유가족들만의 일이 아니라 분단된 조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누어야 할 짐”이라고 강조했다.   
    “안타깝게도 최근 일부 정치인과 일부 단체가 나라를 위하다 전사한 분들을 멸시하는 풍토가 있어 매우 유감스럽고 걱정스럽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나라를 위해 전사한 분들을 매도하거나 폄하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최씨는 “전사자들의 넋이 고혼이 되느냐 영혼이 되느냐 하는 것은 바로 살아있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에 달린 문제”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