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KBS가 6.25 남침과 관련하여 스탈린과 김일성 사이에 오갔던 비밀자료를 공개했다.
    김일성의 남침에 소극적이었던 스탈린에 대한 그 뉴스를 보니 내가 북한에서 봤던 내부 비밀 자료가 생각나 이 글을 쓰게 된다. 필자는 2000년 “김조실록”조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김정일이 이씨 조선시대에도 이조실록이 있었는데 위대한 김일성 시대에 “김조실록”이 없다는 것은 죄악이라며 편찬을 지시한 것이다. 

    사회과학원이 아닌 통전부 필진에 이 업무를 맡긴 이유는 외부에 알려진 김일성 신격화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역사사실들을 열람해야 하는 관계로 보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김조실록”조는 통전부 필진 8인으로 구성되어 평양시 대동강구역 청류동 문수초대소에서 근 2년동안 집필했다. 조선노동당역사문헌고에서 실려 온 수많은 과거 자료들은 당시 흔적이 역역한 그대로였다. 

    기관들의 도장이 새겨진 문서들과 가끔 김일성의 자필 문서도 있었는데 한문과 로어를 섞어가며 쓴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중 1976년 경 외무성에서 기록 정리한 김일성의 교시가 있었는데 북한 정권의 친소정책만을 알았던 나에겐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김일성의 그 교시란 것은 스탈린에 대한 분노로 일관된 내용이었는데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려고 한다. 

    “내가 조국전쟁 이후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그 다음에 농업과 경공업을 다 같이 발전시키자는 정책을 내놓았는데 그 이유가 뭔지 아는가? 스탈린 때문이었다. 스탈린은 우리나라의 조국통일을 방해하고 가장 치명적 상처를 남긴 제일 나쁜 사람이다. 내가 늘 남조선을 해방시킬 수 있었는데 하고 가슴 치며 통탄하는 것이 바로 서울점령 3일이었다. 그때 우리가 서울에서 3일 동안 쉬지만 않았어도 그 기세로 쭉 밀고 나가 미국놈들의 생각도 바꿔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소련에서 주겠다던 무기를 주지 않았다. 그때 가진 것으로 밑에까지 쭉 내려가기엔 도무지 타산이 맞지 않았다. 소련놈들은 서울이 그렇게 빨리 점령당할지 몰랐다고 후에 변명을 했지만 그것도 새빨간 거짓말이다. 애당초 스탈린은 미국이 무서워 줄 생각을 안했다. 그 무기를 기다리며 3일 동안 서울에서 엎어져 있는데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스탈린은 장사꾼이다. 전쟁 이전에 준 무기들도 사실 우리 무장력을 그냥 지원한 것이 아니다. 일본 놈들이 남기고 간 발전소, 제철소, 주요 설비들과 설계도면을 대신 다 가져갔다. 심지어는 철도 레루(레일)까지 뽑아가겠다는 것을 내가 안 주었다. 조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친 그 3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밤잠을 자지 못한다. 내가 그래서 자주국방공업만이 조국통일이라고 생각하고 국가 제일정책으로 밀고 나갔던 것이다.” 

    김일성이 말한 것처럼 과연 서울에서의 3일 때문에 진 전쟁이었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KBS가 단독 공개한 기밀문건처럼 스탈린이 김일성 때문에 세계3차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김조실록은 공개 범위 안에서 신격화 부분만을 골라 지금도 북한 TV에서 “김일성(김정일)동지의 혁명실록을 펼치며”라는 제목으로 매일 소개된다.
    (이글은 장진선님의 블로그에서 전재한 것임: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