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꾸 그러면 호랑이가 와서 물어 간다!”
    옛날 우리의 어른들은 칭얼대거나 떼를 쓰는 아이에게 이런 말로 겁을 주었다. 그만큼 호랑이는 무서운 존재였다. 지금은 우리나라 산 어디에고 호랑이가 없다지만 말이다.

  • 아소산 분화구 ⓒ 자료사진
    ▲ 아소산 분화구 ⓒ 자료사진

    일본의 어린이들에게는 4가지 무서움이 있었다고 한다. 지진, 벼락, 불, 그리고 아버지. 일본은 워낙 지진 왕국이니까 첫 번째 것은 달리 설명이 필요 없겠다. 벼락 또한 한국에 견주자면 강수량이 훨씬 많은 일본인지라 천둥 벼락도 잦으리라. 불은 사실 지진에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무로 지은 목조 가옥이 흔한 일본에서는 일단 화재가 발생했다 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마을이 송두리째 타버리기도 했단다. 그러니 무서울 수밖에....
    마지막으로 아버지에 대해서는 약간 토를 달아야겠다. 우리도 예전에는 집안의 어른인 아버지가 무서운 존재였다. ‘아버님의 한 말씀’은 곧 지상명령 같았고, 심지어는 어머니조차 참견하지 못하는 금역(禁域)이었다. 부계(父系) 사회인 일본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언하건대 요즈음 와서 아빠 겁내는 일본 어린이는 없다. 한국 어린이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지진을 무서워하는 일본인들이 어째 화산 분화에는 다소 무디다는 사실이다. 알다시피 일본에는 군데군데 하얀 연기(정확하게는 가스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를 뿜어내는 활화산이 눈에 띈다.
    학창시절 우리는 화산의 종류를 활화산, 휴화산, 사화산으로 배웠다. 지금은 달라졌다. 구분이 애매하여 그냥 활화산과 그 외의 화산으로 나눈단다. 그래도 ‘과거 대략 1만년 이내에 분화한 화산 및 현재 활발한 분기활동이 있는 화산’을 활화산으로 친다니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규정대로라면 잠잠하기만 한 일본의 최고봉 후지산(富士山, 3천776미터)도 아직 활화산에 속한다.
    어쨌든 일본에는 108개를 헤아리는 활화산이 있다. 전 세계 활화산의 10%에 육박한다.  그러니 일본은 지진 왕국이자 화산 왕국이기도 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진보다 화산 폭발을 덜 두려워하는 까닭은 아마 빈도(頻度)의 차이에서 온 것으로 짐작된다. 즉 지진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며, 대략 수십 년에 한 번 꼴로 큰 피해를 안긴다. 그에 비해 화산 분화는 자주 생기는 일이 아니고, 더구나 화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는 사람들로서야 ‘남의 일’로 여길 만도 한 것이다.
    문제는 화산이 몰고 오는 피해가 지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다는 데 있다. 실제로 1792년에 남부 시마바라반도(島原半島)의 화산이 폭발하면서 해일까지 닥쳐 1만5000여 명이 익사했다. 또 2000년 여름에는 도쿄에서 뱃길로 3시간 여 떨어진 태평양의 섬 미야케지마(三宅島)의 화산이 꿈틀 몸을 뒤틀었다. 그 바람에 일본정부는 3000여 명의 섬 주민을 몽땅 육지로 실어내어 몇 해째 피난생활에 시달려야 했다. 그 중에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의 학생 440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서 잠깐 화제를 돌려보자. 어느 나라이건 그 나라가 처음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자랑하는 ‘건국 신화’라는 게 있다. 당연히 후대에 와서 꾸며낸 이야기라는 사실쯤은 누구나 안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건국 신화는 <삼국유사>에 이렇게 적혀 있다.
     
    “환인(桓因= 천제, 즉 하늘의 제왕)의 아들 환웅(桓雄)이 늘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탐구했다. 이에 환인은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인간세계로 내려가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갔다. 이때 곰과 호랑이가 나타나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쑥과 마늘을 먹고 동굴에서 참고 견딘 곰은 여자로 태어났다. 바로 그 웅녀(熊女)가 환웅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니 이름이 단군 왕검이다.”

    일본의 건국 신화도 맥락은 대동소이하다. 다만 거기에는 다소 재미있는 현상이 나온다. 즉 신(神)이 우선 국토를 만드는 과정이 등장한 뒤, “나라를 다스려야 할 남동생이 방탕에 빠지자 누나인 태양의 신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는 화가 나서 동굴로 숨어버린다. 그러자 세상이 암흑으로 덮여버린다”는 구절이 그것이다.
    재미있다고 한 이유는 이 대목을 화산 폭발과 연관시키는 일본인이 얼마 전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직업이 의사인 그는 취미로 화산 연구를 시작, 전문가 뺨치는 지식을 쌓았다. 그가 발간한 가상 소설 <사도(死都) 일본>에는 ‘세상이 암흑으로 덮인 것은 어마어마한 화산 폭발로 화산재가 태양을 가렸기 때문’이고, 용암(정확하게는 화쇄류․火碎流)이 흘러 바다에 섬이 만들어지는 등의 지각 변동이 ‘신이 국토를 만드는 과정’으로 설명되었다는 주장이었다.
    그야 어쨌거나 이 소설에는 컴퓨터를 비롯하여 동원 가능한 온갖 첨단장비들로 지진과 화산 분화를 예측하려는 일본 과학자들의 안간힘이 ‘실제상황’처럼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대자연의 재앙 앞에 속수무책인 인간들, 그래서 이탈리아의 휴양도시 폼페이를 완전히 매몰시켜 버렸던 서기 79년의 베수비어스 화산폭발보다 더 무서운 천재(天災)가 닥친다니 이를 어쩔 것인가? 아무래도 일본인들이 4대 무서움에서 ‘아버지’를 빼는 대신 ‘화산’을 넣을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도서출판 기파랑 펴냄 '일본 상식문답' 중에서
    도서 문의 : 기파랑 02-763-8996
    조양욱 :
    y2cho8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