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곽노현 교육감 준비위원 참여  
     "청와대로 가자" 촛불난동 전환시킨 박원석氏  

  • ▲ 2008년 조계사서 농성중인 박원석씨.
    ▲ 2008년 조계사서 농성중인 박원석씨.


     참여연대의 核心(핵심) 실무자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의 취임준비위원회 준비위원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연대는 천안함 爆沈(폭침)에 대한 정부 발표에 의문이 있다는 편지를 유엔으로 보내 물의를 빚고 있는 단체이다.   
     郭당선자 취임준비위원으로 위촉된 박원석氏는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이다.  
     朴씨는 2008년 촛불난동을 주최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共同(공동)상황실장으로 참가했다. 朴씨는 2008년 5월24일 촛불시위 무대에서 『오늘 우리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청와대로 간다. 여러분도 이 움직임에 동참해줄 수 있느냐』고 선동했다. 5월24일은 촛불시위가 처음으로 광화문 우체국 앞 차도를 점거해 철야시위를 벌였던 날로서 朴씨의 선동은 촛불시위 성격을 결정적으로 전환시켰다.
     
     朴씨는 이후에도 『이제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를 용서할 수 없다...미국 대통령과 친구를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국민은 적으로 돌렸다. 국민과 돌이킬 수 없는 불화의 길로 돌아섰다(같은 해 6월26일 촛불집회)』는 등 촛불선동의 전면에 섰었다.
     
     朴씨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으로 함께 참여한 한용진氏 등과 같이 경찰의 수배자 명단에 올랐고, 이들은 이후 조계사에서 농성을 계속하다가 2008년 11월 6일 강원도 동해시 인근 모텔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朴씨 등은 2009년 4월17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朴씨는 2007년 7월27일 「정전협정 54주년 한국시민사회 평화선언」을 통해 『정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변화시키고...북한의 핵무기 폐기와 함께 한반도에 대한 핵우산 정책도 폐기되어야 한다...군사동맹 해소에 기초한 새로운 한반도 동북아 평화유지 방안 마련...국가보안법 등 反평화적이고 냉전적인 법과 제도는 개폐』 등을 주장했었다.
     
     2006년 9월18일 「평화선언」을 통해서는 『평택미군기지는 미국의 군사전략의 변화에 따른 전쟁침략기지』라며 『대추리, 도두리가 전쟁기지가 되면 한반도 전체가 전쟁기지가 됩니다. 정부의 본격적인 강제철거를 저지하고 평화를 지켜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었다.
     
     1970년생인 朴씨는 1994년 참여연대 발기인으로 참여해 이 단체에서 간사, 連帶(연대)사업국장 등을 지냈다. 동국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이던 1990년 8월 화염병을 던지는 과격시위를 벌이다,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 받았다.
     
     <연방제 결의 전국연합 간부, 광우병국민책회의 실무 책임>
     
     박원석氏와 함께 광우병국민책회의 실무를 책임진 한용진氏는 한국진보연대 대외협력위원장이다. 그는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사무총장 및 한국진보연대의 前身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의 지부인 경기동부연합 공동의장이었다. 전국연합은 2001년 9월 「군자산의 약속」을 통해 연방제 통일을 결의하는데, 연방제를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역량에 가세·결집하는 형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해석했었다.
     
     참여연대는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노무현탄핵무효범국민행동」, 「이라크파병반대국민행동」, 「평택범대위」, 「한미FTA범국본」 등 각종 범대위에 참여, 좌파적 이슈를 선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