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날씨만큼 중요한 것은 사실 없다. 비단 농사짓는 일 뿐만 아니라 상업과 공업에서부터 문화예술, 심지어는 군사작전에 이르기까지 날씨가 미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도 날씨를 담당하는 관청이 생긴 것은 아주 오랜 옛날이었다. 고려 충렬왕 34년(서기 1308년)에 서운관(書雲観)이라는 곳이 생겼는데, 여기서 맡은 업무가 천문(天文)과 측후, 그리고 물시계인 각루(刻漏) 체크였다고 한다. 요즈음으로 치자면 기상청의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런데 보다 정밀하고 과학적인 일기예보가 시작된 계기는 놀랍게도 전쟁과 결부된다.  영국・프랑스・터키 연합군과 러시아가 맞붙었던 크림(Krym)전쟁(1853~56년) 당시, 흑해에 집결해 있던 연합함대가 느닷없는 폭풍우에 휘말려 프랑스 전함 앙리5세가 침몰하고 말았다. 천문학자를 동원하여 조사에 나선 프랑스 정부는 폭풍우가 이베리아반도에서 불어 닥쳤으며, 천기도를 만들면 대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로써 본격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되었다.
    흔히 일본을 두고 지진 왕국, 화산 왕국, 그리고 태풍의 나라라고 부르는데, 바로 그 태풍도 마찬가지다. 순 우리말로 ‘싹쓸바람’인 태풍을 비행기를 이용하여 공중에서 관측하기 시작한 것 역시 전시(戦時), 즉 미군과 일본군이 맞붙었던 태평양전쟁 때였다. 1944년 12월, 마닐라 주변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을 공격하려던 미 해군 구축함 3척이 태풍에 휘말려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충격을 받은 미 국방성은 이듬해부터 상공에 비행기를 띄워 태풍 관측을 벌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 와서는 10개의 기상 위성, 4천여 곳의 관측소, 7천여 척의 선박에서 보내오는 데이터를 토대로 태풍을 포함한 각종 기상관측이 행해지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2000년도에 발생한 태풍 23개의 진로 예보에서 일본 기상청이 세계에서 가장 정확했다”는 미국 해군연구소의 발표(2002년 3월)이다. 그것은 태풍의 나라 일본이 태풍 예보에서도 스승인 미국을 능가하여 청출어람(青出於藍)을 이뤘음을 의미했다.
    태풍의 어원에 관해서는 몇 가지 설이 들려온다. 가장 무시무시한 것은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튜퐁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튜퐁은 100개의 뱀 대가리를 가졌는데, 검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눈에서는 불을 뿜어낸다고 전한다.
    기상 전문가에 의하면 한 해 발생하는 태풍의 숫자는 평균 26.7개라고 한다. 일본에는 그 가운데 보통 두세 개가 상륙했다. 그런데 2004년의 경우 물경 10개의 태풍이 일본을 싹 쓸었다. 그 동안 6개가 최고였다니까 단숨에 기록을 갈아치운 셈이다. 하기야 그 해의 기상이변은 유달랐다. 여름철 기온도 그랬다. 일본어로 ‘마나쓰비(眞夏日)’--한자 뜻 그대로 ‘진짜 여름날’--는 최고기온이 섭씨 30도를 넘은 날을 가리킨다. 우리가 아는 열대야는 최저 기온이 25도가 넘을 때이다. 도쿄의 경우 2004년에 70일 동안이나 마나쓰비를 기록했다고 한다. 최고 기온도 무려 39.5도(7월20일)를 마크했다. 둘 다 일본 기상관측 역사상 최다․최고 기록이었다. 게다가 그 해 10월 말에는 진도 7에 달하는 강력한 지진까지 겹쳐 피해가 더욱 엄청났다. 그토록 자연재해에 철저하게 대비해온 일본이지만, 꼬리를 문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그저 속수무책이었다고나 할까.
    태풍피해의 측면에서만 따지면 1828년에 발생하여 1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냈던 세칭 ‘시볼트 태풍’이 최악이었다. 그 때는 태풍에 동반한 해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파도에 휩쓸려 익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담이지만 하필 이 태풍의 이름이 시볼트인 게 흥미롭다. 사연은 이랬다. 당시 쇄국정책을 펴던 도쿠가와 막부는 유일하게 네덜란드에 한해서만 일본을 들락거릴 수 있게 숨통을 터놓았다. 나가사키 앞바다에 데지마(出島)라는 인공 섬을 만들어 그곳을 거점으로 교역을 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태풍이 불어 닥칠 무렵 마침 네덜란드 상선 한 척이 데지마 인근에 정박해 있다가 난파되었다. 그런데 배에 타고 있던 독일인 의사 시볼트(Siebold)의 소지품 중에 국외 반출이 금지된 일본지도가 발견되었다. 그 바람에 태풍이 잠잠해진 뒤에 또 다른 태풍이 불어 한바탕 난리를 쳤다고 한다. 그래서 태풍 이름에 마저 ‘시볼트’가 붙게 되었다.(실제로 일본은 우리처럼 태풍에 미리 정해진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그냥 숫자로 1호 태풍, 2호 태풍이라는 식이다.)
    염려스러운 것은 자연 재앙이 비단 일본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태풍과 지진의 재앙을 겪던 그 해, 미국에서도 4개의 허리케인이 플로리다를 위시한 동부지역을 휩쓸었다. 유럽 역시 기록적인 무더위를 기록하면서 엄청난 사망자를 내는가했더니 섣달그믐을 불과 사나흘 앞두고 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 인도, 태국, 스리랑카 등지를 지진 해일 쓰나미(津波)가 덮쳐 순식간에 수십만의 아까운 생명이 휩쓸려갔다. 아무리 인간의 힘으로는 속수무책인 자연재앙이라지만 우리로서도 결코 팔짱만 끼고 남의 불구경하듯 태평스러울 수 없음을 절절하게 깨닫게 된다.

    도서출판 기파랑 펴냄 '일본 상식문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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