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미팅이 있었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몇몇 친지와 찾아간 곳이 한정식집 '산수갑산(山水甲山)'. 음식 이름도 '산수갑산대나무통밥한정식'.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삼수갑산(三水甲山)이 맞을텐데…', '이렇게 큰 음식점에서… 무슨 이유가 있겠지'하고 모른 체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곧바로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산수갑산'을 음식점 등의 상호로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런 경우 입싼 분들은 "'삼수갑산'을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가리키는 말로 잘못 알고 간판을 틀리게 달았구먼."하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집주인의 무지를 입방아에 올립니다. 지레짐작이 그래서 위험하지요.
    흔히 만나게 되는 '비아그라→바이에그르' '○○써비스센타→○○서비스센터' '누네띠네→눈에 띄네'같은 상품명이나 상호들은 모두 표기법 등과 상치되는 줄 알면서도 발음편의나 고객들 눈에 쉽게 띄게 하려고 그리 이름붙인 줄로 압니다.
     
    과천 산수갑산 측의 변(辨)입니다.
    "처음에 심산유곡의 풍광 이미지가 좋아 '삼수갑산'으로 지었다. 그러나 '삼'자 발음이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삼수갑산'의 깨끗한 이미지를 살리면서 발음하기 수월한 용어 '산수갑산'으로 상호를 바꾸게 된 것이다."
    그렇습니다. 상호나 상표는 시각적인 효과와 더불어 부르기 편해야하기 때문에 때로는 일부러 다르게 적는 경우가 있습니다.
     
    '삼수(三水)'는 함경남도 북서쪽 세 개의 큰 물줄기가 합류하는 곳입니다. 대륙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철 온도가 평균 영하 16~18도까지 내려가고,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험한 오지(墺地)라고 합니다. '갑산'은 함경도 북동쪽의 개마고원 중심부의 '큰 산이 겹겹이 쌓여 있는' 곳이랍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춥고 험한 산골로 조선시대 때부터 대표적인 유배지로 꼽혔던 이 두 곳은 주로 중죄인을 귀양보내는 곳이었답니다. 한 번 가면 살아오기 힘든 곳으로 인식되었던 곳이지요.
     

  • ▲ 김충수 전 조선일보 부국장 ⓒ 뉴데일리
    ▲ 김충수 전 조선일보 부국장 ⓒ 뉴데일리

    '삼수갑산을 가다'라는 말,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바뀌어 “일이 매우 힘들게 되었거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으며, 주로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어떤 무모한 일을 하겠다는 반어법으로 많이 쓰고 있습니다.
    <예> 병원에 입원한 간 큰 환자가 문병 간 친구에게 하는 말, "담배 한 대만 줘. 나중에 삼수갑산엘 가더라도 한 개비 피워야겠어."
     
    '산수갑산'은 분명 잘못된 표현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착각을 일으키게 할 수가 있으므로 그 사용을 자제해야겠습니다. 하지만 "원래의 이미지를 살리면서 보기 좋고 부르기 편한 이름"으로 상호나 상표 이름을 '다르게' 표기하는 '상술'을 무식의 소치로 몰아붙일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일반 언중이 말하고 쓸 때에는 '삼수갑산'으로 정확히 표현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