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장면을 한 번 상상해 보자. 장소는 어느 회사 사무실. 신입사원의 책상 위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기를 집어든 신입사원의 귀청이 윗사람의 이 같은 호통에 갑자기 멍멍해진다.

  • ▲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 뉴데일리
    ▲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 뉴데일리

    “시(時) 씨! 유월일일(六月一日) 씨와 구십구(九十九) 씨를 데리고 내 방으로 빨리 오시오!”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라면 얼마든지 있을 법한 광경이다. 여기 나온 시, 유월일일, 구십구가 다 일본에 엄연히 있는 성씨이기 때문이다. 물론 읽는 방법이 다르긴 하다. 이 대목에서의 시는 ‘도키’, 유월일일은 ‘우리와리’, 구십구는 ‘쓰쿠모’라 읽는다. 그러니 정확하게는 이렇게 되는 셈이다.

    “도키 씨! 우리와리 씨와 쓰쿠모 씨를 데리고 내 방으로 빨리 오시오!”

    일본인들의 성씨는 참으로 복잡다단하다. 일본신문 인터넷 판을 매일 체크하다보면 적어도 하루에 한 개 이상씩 처음 대하는 성씨가 나온다. 가령 이런 일도 있었다. 혼미에 혼미를 거듭하던 이라크에서 두 명의 일본 외교관이 피살된 것은 2003년이었다. 뉴스를 보면서 나는 또 하나의 일본인 성씨를 알게 되었다. 한창 나이에 안타깝게 귀한 생명을 잃은 외교관의 성이 오쿠(奧)였던 것이다.
    하필 그 성이 내 눈길을 진하게 잡아끈 연유가 있었다. 10여 년 전, 일본인의 성씨에 관한 글을 쓰면서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느라 몇몇 예화를 소개했다. 우선 한국인 가운데 일본에 와서 약간 곤혹스러워 할 성씨를 들먹였다.

    “서(徐)나 허(許) 씨 성을 가진 이들은 소(蘇)와 호(扈) 씨 성을 가진 이들과 종종 다툴지 모른다. 왜냐하면 일본인들에게는 한국어 ‘어’ 발음이 어려워 싸잡아 ‘오’로 불리기 때문이다. 재일동포 3세, 4세들이 어머니를 일본어로 ‘오모니’라고 적을 수밖에 없는 것도 똑같은  맥락이다. 그러니 서 씨와 허 씨도 일본에서는 소 씨와 호 씨로 둔갑하고 만다. 또 부모로부터 감(甘)이나 옥(玉) 씨 성을 이어받은 어린이들은 자칫 또래의 일본아이들로부터 ‘껌’과 ‘부인(夫人)’이라며 놀림 당할 수 있다. 받침 발음을 제대로 못하는 일본인들에게 감은 ‘가무’, 즉 일본어로 껌이 된다. 옥은 ‘오쿠’인데, 거기에 존칭 ‘씨’를 붙여 부른다면 영락없이 ‘오쿠상’이다. 오쿠상(奧さん)은 남의 아내를 부르는 호칭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인의 성씨 중에 진짜로 ‘오쿠’ 씨가 있는 줄 몰랐다. 부랴부랴 인명사전을 뒤적여 보았더니 유명인사가 꽤 있었다. 19세기 초의 화가 오쿠 분메이(奧文鳴), 19세기 말의 여성운동가 오쿠 무메오(奧むめお), 육군 참모총장을 지내고 원수로 계급이 올랐던 오쿠 야스카타(奧保鞏) 등등.
    성씨가 얼마나 되는지는 일본인들마저 잘 모르는 듯했다. 창씨가 비교적 손쉬워 새로운 성이 자꾸 생겨나기 때문이리라. 일본가계도학회 회장이라는 사람이 쓴 책에는 줄잡아 20만 개를 헤아린다고 했다. 고작 3백 개 언저리일 한국인의 성씨와 견주자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그 숱한 성씨를 대충 5개 그룹으로 나눈다. 무사와 귀족, 그러니까 옛날 일본사회 속의 양반 계층은 후지와라(藤原) 계열로 한자 ‘등(藤)’이 들어간다. 사토(佐藤), 가토(加藤), 이토(伊藤)....... 어깨에 힘주고 살았을 신관(神官) 계열은 제사와 방울, 다리를 나타내는 글자가 들어간다. 사이토(齋藤), 스즈키(鈴木), 하시모토(橋本)가 그렇다.
    나머지 3개 그룹은 자연과 결부된다. 먼저 섬나라 일본의 가장 큰 특성인 해족(海族). 총리를 지낸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씨처럼 바다 해(海)가 들어간다. 다음은 산족(山族). 뫼 산(山) 자가 쓰이는 성씨로 야마시타(山下), 야마나카(山中), 하토야마(鳩山) 등등. 그 다음이 농부의 후예인 전족(田族). 밭 전(田) 자로 이뤄졌다. 최대 성씨의 하나로 꼽히는 다나카(田中)를 비롯하여 오카다(岡田), 우치다(內田) 등이 있고, ‘다나카 씨가 많이 모여 사는 마을(村)’이라고 해서 따로 ‘나카무라(中村)’ 성씨로 가지치기를 하기도 했단다.

  • ▲ 신사를 찾아 소원을 비는 일본인들 ⓒ 자료사진
    ▲ 신사를 찾아 소원을 비는 일본인들 ⓒ 자료사진

    이처럼 일본에 부지기수의 성씨가 쏟아진 계기는 메이지유신이었다. 새로운 모습의 근대국가를 건설하려니까 무엇보다 국민을 철저하게 통제,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도 그랬고, 장차 징병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도 그랬다. 그때까지 성씨 없이 그냥 ‘개똥이’ ‘막동이’ 식으로 살아온 평민들도 각자 성을 갖도록 하라는 명자필칭령(名字必稱令)이 1875년에 내려졌다.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들이 없던 성을 지으려니 얼렁뚱땅 넘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위의 해족, 산족, 전족이 대개 그랬다. 산 아래에 집이 있는 사람은 산하(山下), 즉 야마시타가 되었다. 밭 가운데에 살던 사람은 전중(田中), 다나카가 제격이었다. 따져야할 족보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던 그들로서야 마음 내키는 대로 지으면 그뿐이었으리라.
    그러고 보면 일본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처럼 성씨에 그다지 큰 무게를 두지 않는다. 한 번 정한 성씨를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기도 하므로 데릴사위나 양자로 갈 때에는 눈곱만큼의 거리낌도 없이 타고난 성을 갈아치운다. 두 케이스만 소개하기로 하자.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기억하는 일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농사짓는 최하급 무사였다는 그의 아버지 성씨는 기노시타(木下)였다. 물론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열여섯 나이에 웅지를 품고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라는 장수의 말단 부하로 들어가 별의별 고생을 다 겪었다. 꾀보였던 도요토미는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 33세에 부장(部將)으로 출세하면서 성을 하시바(羽柴)로 고쳤다.
    그로부터 다시 10여 년, 주군이 암살당하자 “이게 웬 떡이냐”는 기분으로 자신의 지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천하의 권력을 손아귀에 쥐었다. 그 후 가장 뼈대 있는 가문의 성씨를 빌어서 후지와라(藤原)로 개명했다. 그게 영 찜찜했던지 채 한 해도 써먹지 않고 다시 도요토미로 바꿨다. 이번에는 모양새를 갖추느라 아무 힘이야 없었으되 어쨌거나 용상에 앉아 있는 천황으로 하여금 칙허로 도요토미 성을 하사하도록 꾸몄다.
    또 하나의 케이스는 두 일본 총리 이야기다.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라는 인물은 태평양전쟁 패전 후 연합군사령부에 의해 A급 전범(戰犯)으로 체포되었다. 간신히 처형을 면하고 감옥살이하던 그가 운 좋게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라는 국제정세 변화 덕으로 감옥에서 풀려나 얼마 뒤 정계로 복귀했다. 그런 경력의 정치인이 총리 자리에까지 오르리라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1957년 여봐란 듯이 총리가 되었다.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라는 이름은 한국인 중에도 더러 들어본 이들이 있으리라.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할 때의 일본총리였고, 장장 7년 8개월이나 총리 자리를 지킨 최장수 기록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1974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실이 인상에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왜 그에게 그런 큰상이 주어졌는지 의아해하는 일본인들도 한둘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기시와 사토가 친형제간이다. 둘 다 최고 학부라던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나와 고시에 합격하여 ‘수재 형제’라는 칭찬을 들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성이 다른가? 기시가 중학교 3학년 때 다른 집안에 양자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성씨야 달라졌지만 오늘날까지 일본인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총리를 역임한 특별한 형제로 이 두 사람을 기억한다. 이쯤이면 일본에서는 “내 성을 갈겠다!”는 으름장이 전혀 먹혀들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일본사회에서는 근년 들어 성씨에 관한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여성이 결혼하면 무조건 시가 쪽 성씨로 고치도록 되어 있는 제도에 대한 반발이다(데릴사위의 경우는 거꾸로 남성이 처가 쪽 성씨로 바뀐다). 여기에도 우여곡절은 있었다. 메이지 정부가 명자필칭령을 내린 이듬해에는 ‘여성은 혼인해도 본래의 성을 써야 한다’고 내무성령으로 못 박혀 있었다. 그것이 19세기 말경 슬그머니 남편 성을 따르는 것으로 고쳐졌다.
      그로 인해 이혼과 재혼에서 여성이 겪어야 하는 불편은 여간 아니었다. 예컨대 유명한 여성 소설가가 있다고 치자. 그녀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남편과 헤어지는데, 만약 성씨를 바꾸면 그동안 나왔던 작품집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 기왕의 이름에 익숙한 독자들은 앞으로 얼마나 헷갈릴 것인가? (물론 이혼할 때 서로 합의하면 성씨를 그냥 그대로 쓸 수는 있다). 어쨌든 그런 저런 트러블이 빚어지자 차라리 애초부터 한국처럼 부부 별성으로 가자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는 형편이다.
      그 점에 관해서는 일본보다 월등히 앞서 가는 우리나라에서는 근자에 와서 부모 양성(兩姓)을 함께 쓰는 이들이 더러 눈에 띈다. 박이철수, 김전영희 식으로.... 게다가 새로운 호주제 도입까지 결정된 마당이므로 혹 일본 여성운동가들이 들으면 부러워 발을 동동 구르지나 않을까.(이 대목에서 나는 쓸데없이 한 가지 걱정을 한다. 부모 양성을 주장하는 한국인들 가운데 두 글자의 성씨, 예컨대 선우 씨와 남궁 씨가 결혼하여 낳은 자녀는 어떨까 싶은 것이다. 선우남궁길동.....?)

    도서출판 기파랑 펴냄 '일본 상식문답' 중에서
    도서 문의 : 기파랑 02-763-8996
    조양욱 : y2cho8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