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B(좌석 번호), 빈정 상해 죽겠어!" "맞아. 그 승객 밥맛이야." 기내(機內) 화장실 옆 좁은 공간에서 승무원들이 소곤소곤 나누던 귓속말입니다. 곱상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말투에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빈정 상하다'… 그 승무원이 언어구사를 제대로 못하고 있구나 생각하며 자리에 돌아와 안사람에게 물어보니 "그것도 모르냐"는 투로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말"이며, '기분 나쁘다' '맘이 상해 몹시 언짢다'라는 뜻이라네요. 내 참! '빈정 상하다'를 아무리 되뇌봐도 어색하고 낯설기만 한데~.

    많은 사람이 이 말을 사용한다면…, '빈정대다' '빈정거리다'만 성립하는 줄 알았던 내가 잘못 알고 있구나싶어 집에 돌아와 국어사전들을 들춰보았습니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 동아새국어사전(두산동아), 엣센스국어사전(민중서림) 어디에도 '빈정 상하다'는 올라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daum 지식'에 어느 네티즌께서 "비위에 거슬려 기분이 몹시 언짢다. 혹은 비위에 거슬려 아니꼽게 생각되다 를 의미하는 전라도 사투리"라고 올려놓았더군요.

    대부분 국어사전에는 '빈정-거리다'(동) ≒ '빈정-대다'를 표제어로 올리고 '비웃는 태도로 자꾸 아니꼽게 굴다' '남을 은근히 비웃는 태도로 자꾸 놀리다' '은근히 비웃으며 남을 놀리다'등으로 풀이해 놓았을 뿐입니다.
    '빈정대는' 말투가 마음에 안든다. 그의 말을 '빈정거리지만' 말고 귀 기울여 잘 들어 보아라. 그는 나에게 겨우 그런 학교에 입학했느냐고 '빈정거리면서' 은근히 무시하였다.

    국립국어원 정희창 학예연구관의 주장을 옮겨봅니다. "국어에서 '빈정'은 '빈정거리다'와 '빈정대다'의 어근(語根)이다. 어근에는 의미는 지니고 있지만 의존적이라서 혼자 나타날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빈정'이 바로 이러한 경우다. '빈정이 상하다'와 같이 '빈정'을 자립적으로 쓸 수가 없다. 게다가 '빈정 상하다'의 '빈정'은 '빈정거리다'의 '빈정'과 의미 면에서도 맞지 않는다."

    언어는 어떤 특정 계층이 사용하기 시작하면 한동안 혼동을 일으키다 그것이 널리 퍼지면 마침내 표준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사회의 일부 계층에서 사용할 뿐이고, 좀 널리 퍼졌다고 모두 공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그 용어가 현재 쓰이고 있는 말과 의미나 조어법상으로 맞지 않는 말이라면 삼가야겠습니다. '빈정 상하다'는 언어 소통에 지장이 많은 말이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