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1테러와 부시 지지 90%급상승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납치된 비행기의 자살 폭격으로 주저앉고, 펜타곤 국방부 청사가 공격당한 사건으로 3천명이 사망하고 6천여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부시대통령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어린이들과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공격당했다는 보고를 받은 부시 대통령은 대통령의 신변 보호를 위해 즉시 백악관을 떠나 비밀 장소로 옮기고 그날 저녁 국민들에게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9일 뒤에는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 참석해서 기립박수를 받으면서 사건 진상을 보고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90%로 치솟고 미국 국민들은 저마다 성조기를 집에 걸거나 자동차에 달았습니다. 미국의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 물결 속에 성조기가 파도처럼 나부끼고 거기서 미국인들의 결연한 애국심이 솟구쳤습니다.

    미국 정부는 두 가지를 병행했습니다.
    공격당한 월드 트레이센터에 묻혀있는 희생자들을 구조하는 일과 테러범이 누구인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구조작업 현장을 방문하고 줄리아니 뉴욕 시장이 마스크를 쓰고 진두지휘를 했습니다.

    미국 FBI는 특별 조사팀을 구성하고 7천여 명의 요원들을 동원해 진상 규명에 들어갔습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처음에 이락의 사담 후세인을 지목했으나 FBI는 알 케이다 테러리스트의 소행이고 그 배후에 오사마 빈 라덴이 있는 것을 알아내고 곧바로 빈 라덴의 통화를 도청했습니다.
    뒤 이어 FBI는 비행기 납치범들의 사진을 공개하고, 미국 정부는 9.11 사건이 발생한지 26일 뒤 빈 라덴이 은신해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습니다.

    9.11 사건과 그 사건을 처리하는 미국 정부, 그리고 국민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다른 얼굴의 미국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일처리가 일사불란하고 국민들이 결연하면서도 숙연하고, 희생자 가족들은 슬픔 속에서 조용히 흐느끼고, 국민들은 희생자들을 영웅으로 추모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90%로 뛰어 오르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 오래 살았지만 한국적인 의식이 많았던 저는 이 사건의 책임이 부시 대통령에게  있고, 사전에 공격 정보를 입수하지 못해 비극을 초래한 것이 정부인데 책임을 져야하고 비판을 받아야 할 대통령의 지지도가 어떻게 90%까지 치솟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책임이 있는 장관이나 정보책임자들을 인책하는 해임 건의안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를 않았습니다.
    이것이 위기를 해결하는 미국의 국격이었습니다.

    역시나...한국은 예상했던대로...

    이번에 한국에서 발생한 천안함 참극을 보면서 저는 미국의 9.11을 생각했습니다.
    국가적 위기를 처리하는 정부나 거기에 대응하는 정치인, 언론, 국민들의 태도가 미국과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국민들은 여전히 편을 갈랐고, 편 가르기에 색깔 있는 언론과 지식인들이 앞장을 섰고, 언론이 황색적으로 흥분했고, 국회의원들이 망둥이처럼 뛰었습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야당 국회의원들은 국방 장관과 해군참모총장에 대해 해임안을 거론했습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좌파들은 이 사건의 배후에 북한이 의심받아서는 안 된다고 조바심을 쳤고, 우파들은 심증이나 정황으로 북한이 배후에 있는데 왜 몸을 사리느냐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한나라당 최고위원 공성진 의원과 어느 목사는 순국한 한주호 준위 빈소 앞에서 관광객처럼 기념 촬영을 하는 쇼를 연출했습니다.
    일부 국민들은 국방부에 천안함 임무와 일지, 교신 내용, 항해 기록을 내 놓으라고 떼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무슨 원수진 사람들처럼 증오와 원한이 사무친 극한 용어를 휘두르면서 무자비한 언어 살인 전쟁을 하고, 국민들은 서로 헐뜯고 물어뜯는 이전투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휘날리는 태극기의 애국심이나 충절한 조국애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있는 어느 언론계 선배가 이메일을 통해 "어쩌면 좋지요? 정부도 국민도 언론도 추악한 3류로 전락해 버린 현실을 재확인해야 하는 이 노릇을 어쩌면 좋은가?" 하고 개탄했습니다.
    이 선배의 탄식이 제 가슴을 아프도록 찔렀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천안함 사건을 다루는 한국인들 모습은 형편없는 3류 국민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에 의연함이나 절제력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들 입에 거품을 물고 자기주장을 하기에 정신이 없고,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질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격이 어디 있느냐고 묻기도 민망스러울 정도로 나라와 국민들의 품위와 품격이 바닥입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간간히 인터넷 댓글에 국민들이 이성을 되찾고 침착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정부를 믿고 기다리자는 호소도 있고, 침묵하는 다수의 양식이 있지만, 날뛰는 꼴뚜기들의 흙탕물이 워낙 거세서 이지와 양식의 소리가 파묻혀 버리고 맙니다.
    탁류는 맑은 물을 순식간에 탁류로 만듭니다.

    사람 잡는 인터넷...정부 잡는 정치권

    한국의 인터넷에는 사람 잡는 선무당과 돌팔이 의사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선무당과 돌팔이 의사는 사람을 살려보려다 실력 부족으로 사람을 죽이지만 인터넷에 깔려있는 선무당과 돌팔이들은 악의와 적의를 가지고 염치도 체면도 없이 사람의 인격과 인성을 난타 하고 사실을 조작 왜곡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대한민국의 국격을 난도질하고 있습니다.
    허무맹랑한 인터넷 소문을 인용하는 것도 부끄러운데 언론은 이런 악성 루머를 비판하는 척 하면서도 이런 소문이 나오는 것은 군 당국이 사건 정황을 정확히 발표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악성 소문을 두둔하고 있습니다.

    군 당국이 신뢰감을 받도록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면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질타당하고 있는 것이 사건 발생 시간이 자꾸 틀리는 것입니다. 실수는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실수에 대해 신문 사설이 질타하고, 야당이 공격하고, 국민이 악을 쓰는 것을 보면 한국인들은 약하게 된 사람을 물어뜯고 매질하는 가학성 병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비상 시국에 말입니다.

    이 급박한 시간에 야당이 천안함 사건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요구한 것도 희극입니다.
    험난한 파도와 악천후와 고투하면서 실종자 구조 작업에 정신이 없는 마당에 아무것도 모르는 국회의원들이 무슨 감사와 조사를 하겠다는 것입니까?
    군 작전 중에 일어난 사건은 군이 해결하고 진상을 규명하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 기본 예의이고 상식입니다. 거기에다 국방장관과 군 책임자를 국회에 불러서 바쁜 시간을 정치 말장난에 이용하는 것도 한심한 일입니다.

    자유선진당의 박선영 의원은 정운찬 총리의 답변이 만족스럽지 않자 "총리가 군대에 안 가서 그렇다"고 질타했습니다. 이 사건과 군 복무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그러면 군대에 가지 않은 지도자는 이런 문제에 답변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고, 군대에 가지 않는 여성은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까? 이 질문을 한 박선영 의원은 군대에 안 간 여성이었습니다.
    국가가 어려울 때는 정치인들은 말을 아끼고 국민들과 함께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합니다.

    미국 정치권, 대통령 욕하지 않고 성원

    한국에서 9.11 같은 사건이 발생했으면 야당은 아마도 대통령 사임이나 탄핵을 요구했을 것이고, 지지율이 곤두박질 쳤을 것입니다.
    미국 정치인들은 부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격려와 성원을 했습니다.
    9.11 같은 비극을 막지 못한 대통령에게 유비무환도 모르느냐고 욕하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느냐고 질타하지 않고, 국민들은 지지율 90%라는 놀라운 성원을 보냈습니다.

    한국인들의 국격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미국의 국격입니다.
    이 말에 사대주의 친미주의가 있다고 욕하겠지만 이것이 미국과 한국의 엄연한 차이입니다.

    비상 시국에는 지도자가 부족한 것이 있고 못 마땅한 것이 있어도 지지하고 격려해 줄 수 있는 아량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국가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는 전쟁터로 가는 장수의 말을 바꾸거나 장군의 지휘봉을 빼앗지 않습니다. 위기의 시대에는 비난보다 격려가 필요합니다.

    천안함 사건을 처리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처신도 만족스럽지가 않습니다.
    사건 현장으로 달려간 것은 잘한 것이지만 사건을 다루는 지혜와 결단력이 부족했습니다.

    사건이 나자마자 대 국민 특별 성명을 통해 사건 경위를 설명하고 국민들의 인내와 이해를 호소하고, 여야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치해 자세한 정보를 나누면서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입니다.

    경솔하고 나약한 MB '통수권자' 모습 아쉬워

    이런 시기에는 대통령도 말을 아껴야 합니다.
    대통령이 여당 의원들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내가 배를 만들어 봐서 아는데 파도에 배가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쉽게 부러질 수 있다" 면서 사고의 가능성을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이런 말은 아주 경솔한 것입니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도 아직 사건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대통령의 짧은 지식으로 "내가 아는데..." 하는 발언은 자기도취에 빠진 인터넷 댓글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점검하고 있지만 북한이 개입됐다고 볼만한 증거는 아직 없다... 국내적으로만 보지 말고 국제적으로 보라. 북한과 국제 사회가 주시하고 있다... 어느 하나로 몰고 가며 추측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섣불리 예단하지 말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로 말해야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청와대 대변인이나 여당 당직자는 "북한 소행 가능성은 낮다... 과거에 한국이 설치한 기뢰에 부딪쳤을 가능성도 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대통령의 말이 일견 타당한 것으로 보이면서도 군 최고 통수권자의 발언으로는 미흡합니다. 결연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점검하고 있다는 말과 섣불리 예단하지 말라는 말은 맞는 것이지만 대통령이나 청와대 표현에는 이미 결론이 예단된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청와대 말 중에는 북한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냄새가 있고 조금 심하게 해석하면 북한이 개입되지 않기를 바라는 듯 한 오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의 말이 몇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말의 뉘앙스가 변질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의 이런 표현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고, 군통수권자의 단호한 의지를 허약하게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국민 앞에 이런 의지를 천명했어야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이런 의지를 천명해야 했었습니다.
    "저는 빠른 시일 안에 이번 사태의 원인을 규명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로서는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놓고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이번 사건이 외부의 소행일 경우 저는 결연하게 대응책을 강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은 성급한 예단을 하지 마시고 정부를 믿고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외부 소행 가능성에 대해 대통령이 단호한 의지 표명을 해야 하는 것은 한국은 분단 상황이고,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 이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고, 대통령은 국가 안보를 책임진 군 최고 통수권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우파 세력은 북한의 소행인 것처럼 단정하면서 확고한 결단을 내리고 행동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의도적으로 북한 개입 가능성을 축소 배제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좌파측은 북한 연계설은 설득력이 없다면서 북한이 이번 사태에 개입되지 않았기를 바라는 것 같은 인상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이 개입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북한이 이 일을 저질렀을 경우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정치적 군사적 행동에 자신이 없기 때문일 수가 있고, 좌파측 사람들의 북한 불개입 희망은 북한에 대한 애정과 신뢰 때문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북한 소행을 심증으로 단정하는 우파의 무모한 과잉을 수용할 수도 없고, 이명박 정부의 유약한 정치적 계산도, 좌파의 친북적인 성향도 용인할 수 없습니다. 국민들은 다만 진실 된 실상을 원하고,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정치나 이념이 개입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종자 가족들의 태도에도 지나친 모습이 있습니다.
    남편과 아들과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형언할 수 없겠지만 슬픔이 너무 감정으로 격앙되어 순국 영령들의 정신을 희석시키고 있습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한주호 준위같은 분은 살신성인으로 구조에 뛰어 들었는데 가족들의 야유와 통곡과 아우성이 이성을 잃은 면이 있습니다.

    "나라 위해 몸 바친 내 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군인이 나라의 부름을 받고 목숨을 바치는 것은 최고의 희생입니다.
    저는 미국에 수십 년 살면서 수천 명의 군인들이 성조기에 쌓여 전쟁터에서 순국의 희생자로 돌아 올 때 땅을 치면서 통곡하는 유가족을 보질 못했습니다. 

    "내 아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아버지는 눈물을 가슴으로 삼키고 그 옆에서 어머니는 눈물을 닦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함께 눈시울을 적십니다.
    이것이 순국 영령을 추모하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격입니다.
    여기서 새로운 애국심이 전승되고 유전됩니다.

    지금은 모든 국민이 숙연한 마음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인내를 가지고 정부의 진상 규명을 기다려야 합니다. 정부는 추호의 정치적 계산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엄정하고 결연한 자세로 진실 규명을 하면서 국민들이 인내할 수 있는 신뢰감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단호하고 적절한 행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