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을 여행한 미국인들과 한국에 대한 인상을 이야기 하다 보면 두 가지 상반된 의견을 듣게 됩니다. 한국인들은 친절하고 겸손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많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한국인들은 불친절하고 무례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로 나눠집니다.

    어느 민족이나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고 상반될 수가 있지만 한국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평가는 그런 일반적인 현상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무엇이 미국인들로 하여금 이렇게 극명하게 대조적인 한국인 모습을 만들고 대칭적인 인상을 각인시키는 것일까를 생각하다가, 이들에게서 공통적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국에 특별 초청을 받아서 갔다 온 사람들과 개인 방문자들, 한국에 살다 온 사람들에 따라 의견이 극명하게 갈라진다는 사실입니다.

    한국 정부 기관이나 단체, 회사, 학교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국을 칭찬하고 한국에 좋은 인상을 가지면서 친한적인 미국인들이 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나 여행사를 통해 여행을 한 사람들은 고개를 젓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가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번의 경험으로 족한 곳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국에 살다 온 사람들과 이야기 하면 한국인들은 배타적이고 편협하고 차별적이라고 말합니다.
    각자의 사회적 위치와 한국 방문 형태에 따라 한국에 대한 인상이 큰 차이를 이루는 것은 이들을 대접하고 안내하는 한국인들의 태도와 의식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 기관의 초청을 받고 방문했던 학교 교장이나 정치인들, 기업인들, 문화인들이 한국을 극구 칭찬하는 것은 그들이 한국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 정부나 단체의 공식 초청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대접 문화는 한국이 첫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뛰어납니다. 한국의 음식과 예술과 산업 시설을 골고루 즐기고 무엇보다도 한국인들의 예의바르고 정이 넘치는 친절을 듬뿍 받고, 거기에다 선물까지 받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간 사람이나 여행사를 통해 간 사람들은 한국의 바가지 문화를 경험하고, 길을 물어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고, 무뚝뚝한 불친절을 경험하고,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 무례함을 경험합니다.

    한국에 살다 온 사람의 경우에는 공식 초청을 받아 큰 대접을 받고 온 사람들의 칭찬과, 개인적으로 방문해서 불쾌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비판과의 중간 정도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이 처음에 무뚝뚝하게 보이지만 서로 알게 되고 가까워지면 깊은 정을 주는 사람들이고, 낮선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지만 아는 사람에 대해서는 특별히 배려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의견들을 종합해 보면 한국인들은 아는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고 배려를 잘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불친절하고 배려를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런 상반된 평가는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들에게도 나타납니다.
    한국은 아름답고 긍지를 느끼게 하는 모국이고, 한국인들은 친절하고 정이 많다고 하는 2세들과, 한국인들은 무례하고 억지를 잘 쓰고, 안하무인이고, 차별하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하면서 더 이상 한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2세들이 있습니다.

    한국에 오래 살다가 온 한인 2세의 경우는 긍정적인 평가보다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숫자가 훨씬 많습니다. 방문해서 잠시 놀기는 좋은 나라지만 거기서 살기는 어려운 나라라고 말하기도 하고, 한국은 '놀기 좋은 지옥'이라고 풍자하기도 합니다.
    이런 평가는 문화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은 2세들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와 한국사회의 의식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을 방문한 한국인들에게 미국과 미국인들에게 어떤 인상을 받는지를 물어보면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고 공중도덕심이 많다는 평가를 많이 합니다.
    부정적인 평가는 이런 친절과 배려가 가식적인 것 같고, 정이 느껴지지 않고, 냉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인들 친절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길을 가르쳐 주는 태도입니다. 길을 잃고 물으면 아무리 바빠도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가장 인상적이고 좋았던 것이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습니다. 눈이 마주치면 하이! 하고 눈인사나 미소를 짓고, 건물을 들어 갈 때 뒤에 사람이 따라 들어가면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가 먼저 들어가지 않고 문을 열어 주면서 "After you!"(먼저 들어가세요) 합니다. 이런 생활 태도가 몸에 배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의 친절과 배려가 갈수록 전보다 못해지고 있습니다.
    30년 전 다르고, 10년 전 다르게 오늘의 미국인들은 점차로 거칠어지고 무례해 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자동차 운전을 느리게 한다고 뒤에서 경적을 울리거나 욕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나 최근에는 신경질적으로 헤드라이트의 하이 빔으로 불빛을 번쩍이면서 불만을 표시하거나, 심하면 앞질러 가면서 가운데 손가락으로 F 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국 친절의 격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거칠고 무례한 사람들은 거의가 젊은 사람들과 이민자들입니다. 나이든 미국인들은 여전히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지만 새로운 세대와 이민자들의 문화는 미국 문화를 다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무례하고 불친절한 현상은 큰 도시일수록 심하고, 큰 도시에서도 교외지역 보다는 도심지가 심하고, 안정된 동네 보다는 낙후된 동네가 심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현상을 지나치게 일반화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생활 수준과 교육 수준으로 사람을 분리하고 차별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가 피부로 늘 겪는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은 미국에만 국한 할 수 없는 인간의 공통성이기도 합니다.

    교육을 받아서 교양과 인격이 향상되고, 여유가 생겨서 조급하지 않아도 되고, 치열한 경쟁이 없어서 마음이 푸근하면 인간은 이웃과 나눌 여유도 생기고,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크게 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미국의 친절과 배려가 전만 못하지만 지금도 작은 도시나 시골에 가면 여전히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미국이 부정적으로 변해가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공중도덕은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길에 담배 꽁초를 던지고, 가래침을 뱉고, 새치기를 하는 한국인들이 많지만 그래도 과거 보다는 현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전철역에도 줄을 서는 모습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젊은 사람들이 나이든 사람들 보다 친절하고 공중도덕을 잘 지킨다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면 생소한 것이 많아지고 물을 것이 자꾸 생깁니다.
    가장 많이 물어야 할 것은 길입니다. 가게에 가서 길을 물으면 귀찮다는 표정으로 "몰라요" 하거나 "이리로 쭉 가세요" 하면서 얼굴 턱으로 가리킵니다. 얼굴 턱으로 가리키는 곳으로 가도 찾는 곳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길을 물을 때 나이든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이나 대학생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묻고, 그중에도 가능하면 여성들에게 묻습니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묻는 길을 모르면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해 서툰 한국어나 영어로 길을 물을 때  친절을 베푸는 것이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가장 큰 효과 중에 하나입니다. 서툰 한국어로 길을 물을 때 웃거나 "이 사람 무슨 소리하는 거야?"하고 불평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길을 가르쳐 주는 정성을 보여야 합니다.

    미국에 처음 와서 길을 물을 때 영어를 잘 못 알아들으면 종이를 꺼내 그림을 그려서 길을 가르쳐 주고, 어떤 사람은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하면서 길을 안내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친절을 받고 난 뒤의 고마움은 말할 수 없습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길을 물을 때 말이 안 통해도 손짓 발짓으로 몸짓 언어를 사용하고 그림을 그려서 길을 가르쳐 주면 그 사람을 통해 수십 명 수백 명의 외국인들에게 아름다운 한국의 이미지를 심을 것입니다.

    친절이나 배려만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큰 힘도 많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친절과 배려에는 가식도 많고 형식적인 것도 많습니다.
    미국을 방문한 한국인들의 지적처럼 미국인들이 겉으로 이렇게 친절해도 냉정하고 쉽게 정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형식적이고 가식적이라고 해도, 친절한 것이 친절하지 않는 것 보다 몇 십 배 몇 백배 바람직합니다. 인사 잘하고 친절하면 인생의 반은 성공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만큼 상대에게 신경을 쓰고 배려를 하는 것이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데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국가의 이미지나 품격을 높이는데 친절과 배려는 막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외국인 방문객이 급증하고 있는 한국에서 친절문화를 정착시킨다면 한국의 격은 높게 격상될 것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맹인박사 강영우씨가 성공적인 삶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노력이 주된 것이었지만 그것 못치  않게 그에게 길을 안내해 준 리차드 손버그씨의 친절과 인간적 배려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필라델피아 거리에 강영우씨가 서 있을 때 자동차를 타고 가던 당시 펜실베니아주 연방 검사였던 손버그씨가 차를 세워서 태워준 것이 인연이 되어 강씨는 미국 정계의 고위층과 줄을 잇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손버그씨는 닉슨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냈습니다. 길을 잃은 동양인 맹인에게 차를 태워준 손버그씨의 친절은 소박한 인간의 친절이었지만, 그 친절이 한 동양인 장애자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한국을 찾는 한 사람의 외국인에게 정성으로 길을 가르쳐 주고 친절을 베푸는 것은 친절을 받은 사람과 한국과의 관계를 다르게 만들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 사람을 통해 한국의 이미지를 크게 신장시킬 것입니다.

    친절할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만 친절하고, 잘 아는 사람에게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진정한 친절이 아닙니다. 정부나 기관 단체의 초청을 받고 온 사람들에게 극진히 대접하는 한국의 친절문화를 일반 방문객에게도 확대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불친절로 인해 한 사람의 방문객을 잃고, 한 사람의 한인 2세에게 모국을 외면케 하는 것은 한 사람을 잃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 더 큰 것을 잃게 되고, 나라의 이미지를 손상시킵니다.

    친절은 기하급수적인 긍정의 전파력을 가졌고, 불친절은 부정적으로 급속하게 전염됩니다.
    길을 몰라 쩔쩔 매는 외국인에게 친절히 안내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고 자신의 인격을 높이고 나라의 품격을 높이고 국위를 선양하는 것입니다. 친절과 배려는 국격의 바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