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플' '선플'...말도 안되는 합성어들 

    꽤 오래 전에 저는 한국 신문에서 '악플' 이란 큰 제목을 보면서 이 말이 무슨 뜻일까를 생각했습니다. 물론 의미상으로는 나쁜 댓글이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왜 '악플' 이라고 하는지 궁금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한국과 미국에 있는 몇몇 사람에게 물었으나 '악플'의 어원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악플'이 '악성 리플'의 합성어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영어로 '리플'이면 'ripple'(물결)인데 왜 나쁜 '물결'이 나쁜 댓글일까 생각했으나 여기서 '리플'은 'ripple'이 아니라 '리플라이''(reply)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합성어는 '악플'에서 그치지 않고 '무플'(댓글이 없는 것)을 낳고, 다시 '선플'(좋은 댓글)까지 낳았습니다.
    어떤 젊은이들은 사랑의 댓글 달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선플 캠페인'까지 하고 있습니다.

    한글과 영어가 합성되는 새로운 언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뽀샵질', '졸팅', '눈팅'을 만들기도 하고, 유식한 지식인들이 글 솜씨를 뽐내기 위해 '헝그리 정신'이란 표현도 나오고, 가장 잘 쓰는 표현 가운데 하나로 '휴대 폰'이 있습니다.
    졸면서 채팅을 하는 '졸팅' 이나 눈으로 보기만 하고 댓글을 안 다는 뜻을 가졌다는 '눈팅' 같은 말은 아직 일반화 되지 않는 인터넷 상에서 젊은이들이 주로 쓰는 말이라고 하지만, 세월이 가서 널리 사용되면 '휴대 폰'처럼 저항감 없이 사용될 것입니다. '휴대 폰' 보다는 '휴대 전화'란 말이 훨씬 격조 있고 합리적인 언어인데 '휴대 폰'이 '휴대 전화'를 누르고 있습니다.
    기자들이나 지식인들이 '헝그리 정신' 이라고 하면 청소년들이 아주 멋있는 언어처럼 생각하고 맨주먹 정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을 '헝그리 정신'이라고 흉내 낼 수 있습니다. 이 단어 하나만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의식과 방법을 흉내 낼 것입니다.
    합성어는 합성어로 하나로 그치지 않고 이것을 만들어 내는 의식구조와 연관이 됩니다.

    영어에 걸신들린 나라...한글 '자기상실' 어쩌려고

    여기에 본질적으로 대두되는 문제가 자기 상실입니다.
    아름답고 놀라운 과학성을 가진 한글을 두고 영어를 걸신들린 사람처럼 사용하는 것은 자기 것에 대한 애정과 긍지가 부족한 것이고, 그것은 결국 남의 것을 숭상하고 무조건 따라가는 것입니다.
    한국 미디어를 접하면 범람하는 외래어로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외래어를 무조건 배격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세계가 한 울타리로 되는 시대에 세계인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통의 외래어를 사용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이 그랬던 것처럼, '인터넷'이나 '이메일' '블로그'를 한국어로 고쳐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문제는, 어쩔 수 없어서 영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로 번역해야 할 언어들은 물론, 기존하는 좋은 한국 어휘를 두고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소호' 라든지 '옴부즈맨' 같은 전문 용어는 한국어로 번역을 해서 통일 시켜야 할 언어들입니다. '옴부즈맨'은 미국 사람들도 뜻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전문 용어이고, 한국인들도 '소호'(SOHO)란 말을 쓰면서 소호가 'Small Office Home Office' 뜻을 가진 소규모 가정 사무실이란 뜻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는 한국 신문에서 '소호'란 말을 읽으면서 뉴욕 맨해튼 거리에 있는 전위 예술 동네인지, 런던의 외국 음식점 거리인지 어리둥절해야 했습니다.
    '지명하다'는 한국어를 누고 '노미네이트'(nominate)라고 쓰고, '의식'이란 단어를 두고 '세리모니'(ceremony)라고 쓰고,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SKY라고 쓰는 의식구조는 한참 잘못 된 것입니다. 언론이 이런 언어를 버젓이 쓰는 것은 독자에 대한 오만, 오도이고, 한국 언어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현재 한국의 표준 국어 대사전에 수록된 어휘 가운데 약 8%가 서구 외래어라고 합니다만 이것은 이미 통용되는 외래어를 말하는 것이고 현재 널려진 외국어는 이것보다 몇 배가 많을 것입니다. 

    영어권서 이해 못하는 '파이팅' '웰빙'

    한국에서 가장 잘 쓰는 '파이팅'(fighting)이란 말도 영어 뜻과는 다르게 사용되는 왜곡된 영어입니다. 미국인들은 서로를 격려할 때 싸우자는 뜻이 담긴 "파이팅"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이 만든 한국식 영어입니다. 영어에 그런 말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고 주장하면 할 말이 없지만 사기를 진작시키는 한국어가 많을 텐데 왜 영어를, 그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 영어를 고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유행어처럼 많이 쓰는 '웰빙'(well-being)이란 말도 원래의 뜻과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건강과 행복,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행동을 '웰빙'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영어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묘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한국인들의 자유지만 왜 언어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남의 말을 유행어처럼 사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웰빙'이란 말 보다 더 좋은 한국어가 얼마든지 있을 텐데 말입니다.

    일본이 수출한 일본어들 '닌자' '사무라이' '사시미'...

    미국인들 가운데 '가미가제' '쓰나미' '닌자' '사무라이' '사시미'란 일본 말을 모르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가미가제'와 '쓰나미'는 전쟁과 재해의 산물이지만, '사시미'나 '사무라이', '닌자'는 일본인들이 수출한 언어입니다.
    음식을 통해 '사시미'를 영어로 만들고, 영화나 만화를 통해 일본인들은 미국에 '사무라이'나 '닌자'란 말을 영어로 정착시켰습니다.
    '닌자 터틀'(Ninja Turtle)이란 영화와 만화를 통해 일본은 '닌자'란 일본어를 미국에 상륙시키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했습니다. 미국에 언어 하나를 수출하려면 많은 노력과 자본이 투자되어야 합니다.
    한국어로도 '태권도'나 '김치' 같은 말은 영어로 정착되고 최근에는 '삼성'이나 '현대'가 영어 고유명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국을 위해서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미국에 정착되는 한국말 '태권도' '김치' '삼성' '현대'...

    태권도나 김치, 삼성, 현대란 말이 영어 속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의 땀과 헌신이 있었고, 이 언어는 한국의 위상을 높게 만들고 국력을 신장시키고 있습니다.
    태권도를 배우는 미국인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향해 허리 굽혀 절하고 태권도 도복에 태극 마크를 부착합니다. 태권도를 배우고 김치를 먹고 현대차와 삼성 휴대 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스포츠와 음식과 자동차와 전화를 통해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을 인식하고 한국어를 배웁니다.
    언어는 정신과 감정으로 연결됩니다. 모국어를 수출하기도 어렵지만 한번 잘못 수입된 외래어를 교정하는 것도 아주 힘듭니다. 왜곡된 외래어를 교정하고 청소하기 위해서는 몇 십 배의 노력을 투입해도 힘듭니다. 우리는 일제 식민지를 거치면서 '쓰메끼리', '다쿠앙', '다마' 같은 일본어를 '손톱깎이', '단무지', '구슬'로 순화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을 허비해야 했습니다.

    한국인만 아는 영어 합성어, 사람도 국가도 '천박' 낙인

    사람의 인격이나 품격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쓰는 어휘나 말투나 억양이 중요한 평가 자료로 사용되는 것처럼 국가의 품위와 격을 평가할 때도 그 나라를 지배하고 언어의 흐름을 중요시하게 됩니다.
    자기 언어를 두고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국가에 위엄과 긍지가 있어 보이질 않습니다.

    개인끼리 대화할 때 외국어를 자주 섞어 쓰는 사람을 대하면 산만해 보이고 잘난 체하고 으스대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나라의 언어에 지나치게 외래어가 많으면 언어와 문화의 격에 무게가 없고 천박스럽게 보입니다. 모국어 어휘가 부족하고 역량이 없어서 외국어를 차용하는 것이 자기 언어를 풍부하게 하고 언어 개발을 위해 필요하다면 몰라도, 한글처럼 세계 어느 나라 언어보다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언어를 영어로 오염시키는 것은 자랑스러운 자기 유산을 훼손시키는 것입니다.

    지구촌 시대의 선도자가 되려면 영어를 잘 할수록 훈련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동시에 한국어를 더 깊이 터득하고 아름답게 연마해야 합니다.
    지구촌 시대를 맞아 영어 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한국어가 더 이상 외래어에 침략당하지 않게 보호하고 가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린 시절에 영어에만 치중하다 보면 한국어의 중요성을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정부와 언론계, 교육계가 협력해서 영어가 더 이상 한국 언어를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방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캠페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것을 방치하면 한국어가 훼손되면서 한국 정신이 마모되고 한국 의식이 자기 정체성과 주체성을 상실할 것입니다.
    영어는 세계 무대로 가는 도구이지, 자기 것을 버리고 남의 것, 특히 강한 나라 강한 사람의 문화와 사고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자기 침식과 자기 상실의 도구가 아닙니다.

    '어뢴쥐' 욕하면서 더 망발 남발...문화식민지 되려나

    한국인들은 유달리 자기 것에 아집하고, 자랑스럽지도 않은 것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으면서, 정작 지키고 자랑스러워해야 할 자기 것은 소홀히 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지나칠 정도로 열광하고 감격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정신적 요체가 될 언어를 훼손하고 영어로 오염시키는 것은 민족에 대한 긍지와 열광이 허구라고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오렌지를 '어뢴쥐'로 발음하자는 의견에 대해 민족을 상실한 영어 사대주의라고 흥분하는 사람들이 그보다 더 본질적인 한국어 오염에는 무심하고, 그들이 그 오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영어 남용을 통해 유식한체하고 겉멋을 부리는 지식인들이 정작 미국에 와서는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예가 허다합니다.

    영어는 제대로 배우고, 쓸 때와 쓸 데를 구별해야 합니다.
    자기 언어를 오염시키고 외래어를 범람시키는 것은 정신적 문화적 식민지가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선혈의 눈물과 희생으로 지켜진 모국어를 아름답게 가꾸어 그 언어를 세계 속에 심는 것이 문화의 땅을 넓히는 것이고 국가의 격을 높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