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격랑속으로 ②
     
     이시다 일행이 언덕길을 넘어가고 있다.
    그 뒷모습을 보고 선 내 가슴이 울렁거린다.
    이시다 주우로(石田十郎), 그가 알려준 이름이다.
    미곡상이라고 했는데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다닌다는것도 신기했다.

    당당한 행차가 지나면 슬슬 피하는 조선인들만 보다가 빤히 바라보고 선 내가 그쪽도 신기 했으리라. 길게 숨을 뱉은 나는 다시 발을 떼었다.
    문득 통역의 얼굴이 떠올랐으므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호가호위(狐假虎威)다. 그런데 왠지 밉지가 않다.
    떠날 때 이쪽을 향해 공손히 절을 했는데 얼굴에 진정이 배어나 있다. 충실한 모습니다.
    바로 저것이 지금 조선 백성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나는 걸음을 멈추고 길가의 바위에 앉는다.
    12월 초의 쌀쌀한 날씨였다.
    그러나 조선 땅은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지경에 놓여져 있다.

    올 3월, 전라도에서 일어난 동학교도들의 난은 이제 겨우 수습되었지만 조선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 벌린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다.
    조정은 개화파와 수구파로 나뉘어 극심한 갈등에 휩싸여 있었는데 근래에 들어 왕은 강력해진 일본 세력에 시달리는 중이다.
    러시아, 미국, 영국, 프랑스 저마다 제 잇속을 차리려고 조정을 압박하고 서로 결탁하는 동안 조선 땅은 진흙탕이 되어간다.

    그런데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작년에 과거가 폐지된 후부터 진로(進路)를 잃었다.
    과거가 무엇이냐? 관로(官路)로 나아가 벼슬쟁이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더냐?
    양녕대군의 16대 손이며 6대 독자라는 족쇄가 나를 묶어 놓은 것 같다.

    다시 내 눈앞에 조금 전의 통역 얼굴이 떠올랐다.
    단발에 양복 차림이었으나 상민 출신일 것이다.
    내 나이 이제 스물, 이 난세(亂世)를 어찌 헤쳐나갈 것인가?
    힘들게 몸을 일으킨 나는 다시 발을 뗀다.

    내가 집에 들어섰을 때 마당에서 일하던 복례가 다가오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서방님, 개화당 서방님이 오셨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내가 사랑방으로 다가갔다.
    개화당 서방님이란 바로 도동서당때의 친구 신긍우를 말한다.
    신긍우는 나보다 세 살 위였지만 서로 친구처럼 지냈고 집안끼리도 친숙하다.

    헛기침을 한 내가 사랑방으로 들어서자 벽에 기대 앉아있다 신긍우가 상반신을 세웠다.
    「오래 기다렸나?」
    마주앉은 내가 물었더니 들고있던 일본어 책을 방바닥에 놓는다. 일본어 교재였다.
    신긍우는 일본어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내 시선을 받은 신긍우가 대답 대신 용건을 꺼내었다.

    「한번 가 보기라도 하자니까 그러네. 그럼 자네 생각도 달라질꺼야.」
    그리고는 서두르듯 말을 잇는다.
    「자네 재능을 이렇게 썩히면 안되어.」
    「가세.」
    불쑥 내가 말했더니 신긍우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내가 웃음을 짓고 말을 잇는다.
    「그래, 영어 한가지라도 배워야 되겠네. 그래서 통역 일이라도 똑바로 해야지.」
    「정말인가?」
    기쁜 나머지 와락 상반신을 내 쪽으로 기울인 신긍우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지금 당장 가세.」

    신긍우가 가라는 곳은 배재학당이다.
    북감리회 선교사인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가 세운 배재학당은 1886년 2월 고종이 배재학당 교명을 하사했는데 배양인재(培養人材)의 줄인 말이다.
    신긍우는 여러차례 나에게 배재학당 입학을 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신긍우의 분위기에 이끌려 따라 웃는다.
    그러나 가슴은 무겁다.
    나는 이제 격랑(激浪) 속으로 뛰어 들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