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격랑속으로 ①

     일본군 다섯이 다가오고 있다.
    앞에 선 장교는 칼을 찼고 뒤를 따르는 넷은 둘씩 나란히 서서 어깨에 신식 소총을 매었다.
    어깨를 쭉 편 채로 힘차게 팔을 흔들며 걷는다. 그야말로 보무당당한 자세, 일본군 앞쪽에는 두 사내가 걷고 있다.
    하나는 양복 차림에 머리에는 모자를 썼다.
    옆을 따르는 사내는 단발 한 머리에 양복을 걸쳤지만 후줄근하다. 통역이다.
    일행의 뒤를 조무래기 대여섯이 따르다가 싱거워졌는지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간다.
    이제 그들과의 거리는 열걸음 사이쯤으로 가까워졌다.

    길가에 선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때 모자를 쓴 사내와 시선이 마주쳤다.
    한낮이다. 이곳은 남산 인근의 도동(桃洞), 지나던 행인이 황급히 일본인 일행을 비껴갔다.
    그때 두걸음쯤 앞으로 다가선 중절모가 우뚝 발을 멈췄으므로 병사들의 발짝 소리도 그쳤다.

    중절모의 시선이 나에게서 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입가에는 엷게 웃음기가 떠올라 있다. 나는 어금니를 물었다.
    왜인, 개화된 일본인에게 악감은 없다.
    그러나 무슨일인가? 가슴이 세차게 뛴다.

    그때 중절모가 옆에 선 통역에게 말했고 긴장하고 있던 통역이 귀를 기울였다가 머리를 쳐든다.
    「이보시오. 보아하니 양반 같은데 왜 뚫어지게 보느냐고 이시다님께서 물으시오.」
    통역이 꾸짖듯 말했을 때 옆을 지나던 상민 둘이 서둘러 발을 뗀다.
    병사들의 시선도 모두 나에게로 모여져 있다. 내가 헛기침을 하고나서 중절모를 바라보았다.
    나이는 나보다 열 살쯤 연상인 서른살쯤 된 것 같다.

    「뚫어지게 보다니, 그럼 내 눈에서 총탄이 나간단 말이오?」
    내가 중절모에게 말했지만 통역의 두 눈이 치켜떠졌다. 그러더니 목청을 높여 중절모한테 통역했다. 마치 고자질하는것같다.

    그때 중절모가 웃음 띈 얼굴로 말했다.
    「미안하오.」
    조선말이다. 나도 놀랐지만 통역은 더 놀란 것 같다.
    입을 꾹 다물더니 커다란 목젖이 오르내렸다.
    다시 중절모가 조선말로 말을 잇는다. 유창하다. 조선인 같다.
    「내가 처음에 물은 말은 혹시 나를 아시느냐고 했소이다.」
    쓴웃음을 지은 중절모가 모자를 벗더니 나에게 가볍게 머리를 숙여보였다.
    「그랬더니 그렇게 통역이 되었고 대답이 거칠게 오는 것은 당연하지요.」

    「조선말을 잘 하십니다.」
    긴장이 풀린 내가 말하자 사내는 이를 드러내고 웃더니 제 소개를 했다.
    「저는 상인(商人) 이시다라고 합니다.」
    「저는 이승만입니다.」
    이제 통역은 머리를 떨군 채 숨을 죽이고 있다.
    이시다가 이토록 조선말을 잘하는지를 몰랐던 모양이다.
    일본군 다섯은 제각기 총을 내려놓고 쉬는 중이었지만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잘 훈련된 병사다. 그때 이시다가 말한다.

    「일본은 조선의 형제국입니다. 청과는 다릅니다.」
    나는 소리죽여 숨을 뱉았다.
    올해, 고종 31년 6월(1894)에 일어난 청일전쟁에서 대청(大淸)은 패배하고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잃었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또 있다.
    과거제도가 폐지됨으로써 관로(官路)에 진출할 길이 막혀버렸다.
    내가 13세때부터 치러왔던 과거인 것이다.

    이시다의 시선을 받는 내가 낮게 말했다.
    「맞습니다. 허나 힘없는 형제는 수모를 당하기 마련이지요. 어찌 노형같은 분만 계시겠습니까?」
    불쑥 뱉은 말이지만 사실이다.
    오늘 길가에서 일어난 시비도 그렇지 않은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