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X열차 안에서 우연히 경향신문 사설(社說)을 읽었다. 사실(fact)을 전하는 신문(新聞)이 맞는지 의심스러워 읽고 또 읽었다.
     
     ≪「친일-모리배로 나라 골병 든다」는 민초들의 편지≫라는 제하의 사설은 1947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 특사로 방한한 앨버트 웨드마이어 사절단에게 한국인들이 보낸 편지 중 『미군정에 잠입한 과거의 친일파들이 모리배와 결탁해 가즌 악질 행위를 감행한 탓에 민중은 극도의 생활고에 신음하고 있습니다』는 부분을 인용한다.
     
     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사회·경제적 불안을 가져오는 모리배와 우익 테러단체를 반민족세력, 즉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와 동일시한 이들 편지의 인식이다』라며 『웨드마이어 사절단은 남한 우익이 민중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서도 냉전 대결 구도 속에 공산주의 척결을 위해 남한 반공정부 수립이 불가피하다고 결론 내렸다』고 적었다.
     
     이 사설은 80년대 대학가를 지배했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解前史)」을 요약한 것처럼 보인다. 대한민국 건국의 주도세력을 모리배와 우익 테러단체,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로 동일시하며 상대적으로 해방공간 좌익들을 독립운동가인 양 묘사하는 논법이다.
     
     이런 역사관(歷史觀)을 갖게 되면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공산주의로 통일됐어야 한다는 결론 말곤 나오지 않는다. 북한정권에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하게 되며, 대한민국 과거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수치스러운 역사가 되고 만다. 북한정권의 6.25남침과 같은 전쟁범죄(war crimes)도 용인되고 60년 간 북한동족에 자행된 끔찍한 대량학살(massacre)도 침묵하게 된다. 인간이 사는 현실 그 자체인 「자본주의」는 더러운 것이라 말하면서, 있지도 않았고 있기도 어려운 「사회주의」는 이상향처럼 동경한다. 성공과 성취의 祖國을 폄훼하는 친북·반미·좌익세력의 납득할 수 없는 세계관은 이 같은 역사관(歷史觀)이 뿌리를 이루고 있다.
     
     「解前史」식 역사관의 치명적 문제는 사실이 아닌 거짓에 기초했다는 데 있다. 건국세력에 모리배, 우익 테러단체,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가 있었고 좌익 중 독립운동가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전체는 아니다. 일반화(一般化)의 오류(誤謬)이다.
     
     건국세력의 주축인 초대내각은 모두 독립운동가였고 군인, 경찰, 공무원 등 실무관료는 남한인건 북한인건 소위 친일파가 등용됐다. 북한군 출신인 윤응렬(尹應烈) 前공군작전사령관은 『일군(日軍)출신 조종사들이 북한공군 창설에 대거 참여했으며, 6·25 때 한국을 공습한 야크기 조종사들은 거의가 일군(日軍) 조종사 출신이었다』고 증언한다. 교육받은 기능인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것은 필연이었다.
     
     「解前史」식 역사관의 또 다른 문제는 선(善)과 악(惡)의 가치관을 오도(誤導)한다는 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경향신문 사설은 위의 자료를 언급한 뒤 『친일과 반공이 별개로 파악될 수 없는 소이를 역사적으로 재확인한다』 『이 정권에 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극단적 색깔론, 흑백논리가 그렇다. 정당한 헌법적 권리인 노조활동을 좌파라며 불온시하는 풍토가 퍼진다. 「임금과 식량을 달라」고 요구했다가 공산주의자로 몰린 역사의 데자뷰다』라고 적고 있다.
     
     사설은 건국세력=모리배=우익 테러단체=청산되지 않은 친일파 공식에 이어 「반공」 역시 같은 범주로 동일시해 버린다. 결국 반공(反共)은 악(惡)이며, 용공(容共)은 선(善)이라는 식의 선동이다. 지난 60년 반공(反共)이라는 가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부정하는 북한의 공산전체주의에 대한 반대(反對)이며 대한민국의 자유(自由)를 지키기 위한 자위수단, 즉 악(惡)에 대항한 선(善)이었음을 뒤집는 주장이다. 이것은 단순한 왜곡(歪曲)을 뛰어넘어 날조(捏造)에 가깝다. 하얀 색을 검다고 말하는 식이다.
     
     『정당한 헌법적 권리인 노조활동...』 운운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우려하는 좌파란 노조의 정당한 헌법적 권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죽창 들고 경찰 패는 불법폭동이다. 국가와 헌법과 법치에 대한 전면적 파괴를 비판하는 것이다.
     
     북한정권과 이념적으로 공명(共鳴)하는 한국의 극렬노조는 『임금과 식량을 달라고 요구하는』 소수자·약자가 아니라 수백 억 예산을 집행하며, 수백 명 변호사 집단을 부리고, 경찰도 우습게 여기며, 좌경판사와 정치권의 비호를 받는 강력한 권력집단이다. 진실을 가리는 위장(僞裝)과 기만(欺瞞)을 읽으며, 이 나라 좌파의 미래에 또 다시 절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