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미국의 한국인, 한국의 한국인

    "탕에서 때를 밀지 마십시오"

  • ▲ 조광동 ⓒ 뉴데일리
    ▲ 조광동 ⓒ 뉴데일리



    미국은 인종시장이라고 할 만큼 세계 도처에서 모인 민족과 종족으로 구성된 다양한 얼굴의 모자이크 사회입니다. 인종과 민족은 필연적으로 자신들의 문화와 독특한 인종적 성격을 이민 보따리에 가져 옵니다. 많은 인종 속에 살다보니 인종마다 가지는 성격과 품격을 느끼게 됩니다.
    미국 속에서 코리안은 똑똑하고 근면하고 열심히 일하는 민족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크지만, 약삭빠르고, 싸우기 잘하고, 준법정신이 약하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만만치 않습니다. 거기에다 공중도덕이 부족한 인상을 많이 주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침을 뱉거나, 식당이나 샤핑 센터처럼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장소에서 큰 소리를 떠들어 타인종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하고, 한국인들이 많이 다니는 헬스클럽 월 풀 벽에 "탕에서 때를 밀지 마십시오!" 라는 한글 호소문까지 나붙게 합니다. 이것을 보는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지는 수치심과 분노를 느끼지만, 그러면서도 슬픈 것은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이민 가방에 묻어 온 한국인의 품격

    저는 요즘 한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국격' 논의를 보면서 헬스클럽에서 때를 밀지 말라는 모욕적인 한글 표지판을 생각하면서 인종이나 국가가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품격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민 가방에 묻어온 한국인의 품격과 품위가 미국 땅에서 '아메리칸'이 되었는데도 코리안의 냄새는 여전히 풍기고 있습니다. 물론 세월이 가서, 이민 연령이 많아지면 미국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문화와 품격이 결합되는 과정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Gresham Law)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문화와 품격이 결합하는 과정에서도 한국과 미국의 좋은 것을 지키고 배우기보다는, 좋은 것을 더 쉽게 잃어버리고 나쁜 것을 더 빨리 배우는 문화적 그레샴의 법칙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좋은 점은 못 배우고 나쁜 점은 걸신 들린 듯

    이런 현상은 조국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 우수해서 셀 폰도 잘 만들고 자동차도 잘 만들어서 세계와 미국에서 코리안의 위상을 우뚝 세우고 있는데 한국 고유의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을 급격히 상실하고 서구문물의 나쁜 것을 걸신 들린 사람처럼 삼키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진수를 배우는 데는 등한시하고 자본주의 껍데기만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실험장인 미국이 아직까지 건재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바탕에 깔린 청교도 문화와 정신이 있어서입니다. 근검절약하면서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정신과, 부를 나누고 돕는 박애정신과,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의식이 자본주의를 꽃피웠습니다. 이런 튼튼한 바탕이 있었지만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타락과 탐욕과 탐닉의 속성을 거부하지 못하고 점차로 부패하면서 미국 자본주의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월가의 탐욕, 청교도정신의 타락

    최근 미국이 앓고 있는 경제 홍역도 미국 의식과 정신과 품격이 쇠퇴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습니다. 시작이야 주택시장과 금융시장에서 위기가 왔지만 그 바탕에는 미국 도덕의 타락, 정신의 쇠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월가 사람들의 끝없는 탐욕이 집중 포화를 맞지만 그것 못지않게 보통 사람들의 도덕 불감증이나 분수 모르는 욕심이 경제위기에 불을 질렀습니다. 돈 많은 월가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속이고 술수를 썼고, 돈 없는 서민들은 집 한 칸을 마련하기 위해 가짜 서류를 만들고 허위 숫자를 나열했습니다. 규모가 다르고 죄질은 다르지만 그 근원은 같은 것이고 거기에는 미국 도덕성과 품격과 양식이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국격이 밥 먹여주냐?" 무서운 냉소주의 병균

    이명박 대통령이 "국격을 높이자"는 선언을 했을 때 한국 사회 반응은 가지각색이었습니다. "국격이 밥 먹여 주나?" 하는 냉소적 반응에서부터 "국격 선언이 새로운 한국의 원년을 열었다"는 아부적 반응까지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부화뇌동하는 아부족에게는 아부하고 치부하는 속물적인 '격'이 지배하고, 사사건건 부정적이고 사시적으로 찬물을 끼얹는 냉소족에게는 김을 빼고 뒷다리를 잡아끄는 파괴적인 '격'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부족을 경계해야겠지만, 더욱 문제가 되는 집단은 국가 시책에 냉소하는 사람들입니다.
    냉소주의는 더 밝은 세상과 더 좋은 삶을 만들려는 인간의 노력을 빼앗아가는 암세포 같은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냉소주의 성격과 냉소적 품격이 개인에 그치지 않고 그 사회의 다수에게 옮겨가면 그 사회가 아무리 능력을 가졌어도 빛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은 "국격이 밥 먹여 줍니다"

    국격에 냉소하면서 "국격이 밥 먹여 주냐"고 팔짱을 끼지만, 분명한 것은 “국격이 밥 먹여 준다”는 것입니다. 밥만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식탁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삶의 행복까지 가져다줍니다. 국격이 떨어지면 잘 먹여 주던 밥그릇이 깨어지고, 악을 쓰면서 서로 싸우고, 나라가 혼란스러워지고, 삶이 피곤해집니다. 경제도 정치도 결국은 국격이 좌우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성격이나 품성이 없으면 경제가 잘 될 수 없고, 멱살 잡고 싸우면서 의사당을 폭력 연기장으로 만드는 정치에서 나라가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결국은 국격 입니다. 미국의 풍요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도 국격 때문이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중국이 세계 정상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국격에 달렸습니다. 잘 나가던 일본이 교만과 과대망상에 빠져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도 군국주의 국격이었고, 일본이 잿더미에서 세계의 선진국으로 부상한 것도 성실한 국격 때문입니다.

    "중국 상품은 취급하지 않습니다"

    저는 20년 전 중국을 방문했을 때 베이징 거리에서 음식을 사먹다가 길에서 파는 먹음직스런 음식을 담는 그릇을 시꺼먼 구정물에 씻는 것을 보면서 질겁을 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Made in China' 식품에 머뭇거려집니다. 얼마 전에는 아는 분으로 부터 중국산 차를 선물 받았지만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마시지 않았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중국인들의 위생과 청결의 '격', 양식과 도덕의 '격'에 신뢰가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먹는 식품일 때는 그 나라 국격이 우선 떠오릅니다. 지난 몇 년간 중국산 식품과 물건이 미국 시장에서 곤욕을 치렀습니다. 일부 가게에서는 "우리는 중국산 물건을 취급하지 않습니다."라는 표지까지 내 붙였습니다. 이것은 중국의 국격이 경제에서 수난을 겪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중국이 서둘러 이 불을 껐지만, 이 불은 언제 재발할지도 모릅니다. 일부 학자들은 미국의 쇠락과 함께 중국이 미국을 대신할 것이라고 예견하지만, 중국이 수천 년 동안 축적된 부정적인 품격과 품성을 선진화 하지 않으면, 현재 중국의 국격 으로는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존경받는 선진국이 되려면 나라의 격을 높여야 합니다.

    '제2건국'  '선진한국 원년'...만세 부른다고 선진화 되나

    반대적인 사람들은 왜, 지금 와서 이명박 대통령이 ‘국격 쇼’를 하고 있느냐고 비아냥거리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바로 이런 반응이 선진화의 걸림돌이 되는 의식의 '격'입니다. 지도자가 진보든 보수든 나라를 잘 만들겠다고 할 때는 도와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 국민의 애국적인 품격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제2건국'을 선언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5년을 '선진 한국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이명박 대통령도 취임식에서 2008년을 '선진화의 원년'으로 선포했지만,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언은 용두사미가 되었고, 이명박 대통령의 선언도 구체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격을 높이는 운동은 선진화 운동입니다. 이 선언이 성공하려면 G20 정상회담을 유치하고 만세를 부르는 정도의 자기도취나 감상으로는 가능치가 않습니다. 국격을 높이는 운동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나라의 명운을 거는 것 같은 치열한 열정과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하고, 지속적으로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18세기부터 갈고 닦은 선진국의 국격

    일부 사람들은 '국격'이란 말이 사전에도 없는 말이라고 하지만, 국격 이란 말은 이미 한국에서도 오래전에 사용되어 왔고,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18세기에 '국가 성격'(National Character)을 국가적 이슈로 놓고 치열한 논쟁을 거쳤던 화두였습니다. '국격'은 나라의 성격(Character)과 품질(Quality)로 볼 수 있습니다. 국가의 성격과 품격, 품성, 의식과 도덕, 태도, 문화가 나라의 '격'을 말해 주는 국격이 될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면 얼굴과 눈빛과 미소에서 인간의 격을 느낄 수 있고, 대화 방법과 예절과 예의에서 사람의 질을 느낄 수 있고, 옷차림과 외모와 화장에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개인의 인격과 품격과 의식에 따라 사람의 격이 달라지는 것처럼 국민의 도덕성과 관용과 정직성과 애국심과 절제력에 따라 국격이 달라집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13개 덕목들 

    18세기 국격 논쟁에 선봉에 섰었던 프랑스의 몽테스큐는 국격의 본질을 도덕성과 사고의 습관, 태도에서 찾았고, 이 중에서 특별히 도덕성이 핵심을 차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도덕성은 사회성과, 성실성, 허영심, 관용, 긍지, 나태, 정직성 같은 선한 요소와 악한 요소의 결합이라고 지적했고, 루소는 국격을 국가 양심과 애국심에서 찾았고, 이것이 주권과 자유 정부의 초석이라고 말했습니다. 프랑스가 국격 논쟁을 할 즈음 나라를 처음으로 세운 미국은 새로운 나라를 어떤 성격과 품격과 철학으로 정립해야 할지에 고민했습니다. 미국의 현자로 불렸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절제, 침묵, 규율, 결단, 검약, 근면, 성실, 정의, 중용, 청결, 평온, 순결, 겸손 등, 13개의 덕성에서 인격과 국격의 근간을 찾았고, 헌법을 기초했던 토마스 제퍼슨은 정의와 관용, 근면, 중용, 인내, 독립심, 자립정신, 애국심, 각성, 참여의식, 관용, 희망을 국격의 바탕으로 생각했습니다. 

    국격 높아져야 '세계인 대접' 받지요

    한국이 2010년을 국격을 높이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으로 만들 수 있다면 한국은 지금까지 이룩한 놀라운 경제성장을 선진국의 초석을 까는 바탕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가 지구촌으로 되면서 국격은 국가적인 것에서 세계적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국격은 그 나라를 세계적 선진국과 지도국으로 만드는 힘이 되는 동시에, 그 국격이 보편적 가치와 품격으로 승화하면서 세계에 영향을 주고, 시대를 이끌어가는 국가적 긍지가 될 것입니다. 상품 수출이 경제를 부강하게 만들고, 문화를 수출하는 한류는 코리아의 위상을 높이고 세계인의 가슴에 코리아를 심을 것이고, 한국의 국격은 시대를 선도하고 역사의 주역이 되는 선진국의 바탕이 될 것입니다. 국격은 국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