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ologue

     2009년, 나는 시청 앞 호텔에서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을 내려다보았다.
    밤이다, 군중이 든 촛불이 휘황하다.

    나는 손에 든 수기(手記)를 무의식중에 가슴으로 안는다.
    이 수기는 바로 110년 전인 1899년의 기록이다. 그리고 이승만이 직접 썼다. 나는 잠깐 110년 전을 떠올린다.
    광장에는 군중들이 가득 모여서 있다.
    그 당시에는 양초가 귀했으니 몇 명이 횃불을 들었겠지.
    연단 위에 선 이승만은 개혁을 주장하는 열변을 토하고 있다.

    나는 다시 2009년의 광장을 내려다보면서 저 군중 속에 이승만이 끼어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불교에서는 환생(還生)을 한다니 누군가의 몸으로 태어나 있지 않을까?
    세상을 오래 방황했던 영혼이지만 대한민국을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보라, 110년 전과 달리 고도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 나는 2002년 월드컵때 대한민국을 한국어로 외울 수 있었다. 광장을 가득 메운 수십만의 한국인이 모두 붉은색 셔츠를 입고 「대, 한, 민, 국」을 외치지 않았던가? 코리아가 대한민국이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대한민국의 건국대통령이 이승만이다.

    내 손에 수기가 전해질 때까지의 48년, 긴 인연이 진행되었던 1백여년간,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세상이 좁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지금도 누가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승만 박사시여,
    당신이 일으킨 이 「대한민국」자랑스럽지 않으십니까?

    그 대답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은 자랑스럽다.

    이 수기를 출간하도록 도와주신 정현배 교수, 그리고 내 변호사 스티브 폭스, 내 조상, 신의를 잃지 않았던 대한민국의 애국자들게 감사와 존경을 함께 표현하고 싶다.

                                                                                       2010년 2월 Lucy Jones

    nbsp;                                                                                        
      첫 번째 Lucy 이야기

     「한국은 자주 오십니까?」
    나를 방으로 안내하던 매니저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서 묻는다.

    「아니, 처음인데요.」
    특실 전용 엘리베이터에는 나와 매니저, 그리고 짐 가방을 든 보이까지 셋이 타고 있다. 매니저가 차분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뉴스를 보셨겠지만 전(前) 대통령이 사망해서요. 더구나 이곳은 서울시 한 복판이라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머리를 끄덕인 내가 지나는 말처럼 물었다.

    「자살 하셨다죠?」
    「그렇습니다. 부인.」
    「안됐네요.」
    「감사합니다. 부인.」

    매니저의 영어는 유창했다.
    그러나 나는 곧 이야기의 흥미를 잃고 몸을 돌렸다.
    눈치를 챈 매니저도 입을 다문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었으므로 나는 붉은색 양탄자가 깔린 복도로 나온다.
    중국과 일본은 여러 번 가봤지만 코리아는 처음이다.
    코리아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있는데다 중국, 일본과 함께 아시아 3대(大) 강국중의 하나이며 반도체, 자동차, 선박, 건설 부분에서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 남북으로 분단되어 지금도 전쟁 위협이 존재하는 지역, 위쪽 노스 코리아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며 핵문제로 클린턴과 부시를 골탕 먹이고 있다는 것도 안다.
    북쪽 지도자가 김 누구더라?

    그때 스위트룸 문을 연 매니저가 비껴서며 말했다.
    「가장 전망이 좋은 방입니다. 부인.」

    방으로 들어선 나는 낮게 탄성을 뱉는다.
    넓은 방 안의 가구들은 품위와 효능 양면이 훌륭하게 배합되었다.
    응접실과 침실도 잘 분리 되어있다. 창 쪽으로 나간 나는 다시 감탄했다.
    광장에 모인 인파는 마치 축제를 벌이는 것 같다.

    「시위는 하지 않을겁니다.」
    내 뒤쪽에 선 매니저가 말했으므로 나는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시위요? 왜요?」
    「전(前)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죠.」
    시선을 내린 매니저가 말하더니 한걸음 비껴섰으므로 나는 가방에서 10불짜리 지폐를 꺼내 보이의 팁을 주었다. 스위트룸 방값이 하루 1천5백불이었으니 이정도 팁은 줘야 균형이 맞는다. 1백불짜리 방에 든다면 1불 팁을 주는 것이 내 스타일인 것이다.
    내가 서른셋의 나이에 미국에서 27개의 도매상 체인을 가진 사업가로 성공 한 것도 이런 사고 때문이다.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 매니저에게 내가 물었다.

    「밖에 나가서 구경해도 되겠죠?」
    그러자 매니저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부인, 오시기 전에 주의 사항을 들으시지 않았습니까?」
    매니저가 되물었으므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난 도꾜에서 오는 길이거든요? 그리고 주의사항이라뇨? 소매치기가 많습니까?」
    「아닙니다, 부인.」
    「대통령이 죽은 것 하고 관계가 있나요?」
    「예, 시민들이 조금 흥분하고 있어서.」
    내가 시선을 내린 매니저 앞으로 한걸음 다가가 섰다.
    팁을 받은 보이는 이미 나갔고 방에는 둘 뿐이다.

    「반미 감정이 있나요?」
    내가 핵심을 찔렀는지 매니저가 머리를 들고 나를 보았다. 긴장한 표정이다.
    「예, 조금.」
    「괜찮아요, 걱정마세요.」
    몸을 돌려 내가 다시 광장을 보았다.
    「나도 세금 때문에 반미 중이거든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