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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남부지법 이동연 형사1단독 판사는 14일 검찰이 불구속 기소한 姜의원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姜의원에게 적용된 3가지 법 위반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특히 姜의원의 박계동 총장실 난입 후 업무를 방해(방실(傍室)침입과 공무집행방해)한 혐의에 대해 『朴사무총장은 당시 소파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는데 신문 보는 것이 공무의 일환일 수는 있지만, 朴총장은 이미 비서가 스크랩해준 신문을 본 뒤여서 공무 중이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姜의원이 그 과정에서 탁자를 부순 혐의(공용물건 손괴)에 대해서도 『당시 강 의원은 극도로 흥분한 상태로, 탁자를 부순다는 인식(고의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죄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姜의원이 국회 경위의 멱살을 잡아 폭행했다는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항의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지, 위해를 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공무집행방해죄의 성립 요건인 위력(威力) 행사가 아니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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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기갑은 누구인가?]
     
     강기갑 의원은 2008년 5월~9월 사이 계속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한 인물이다. 당시 촛불집회는 야간집회로서 집시법 상 불법(不法)집회였다. 姜의원은 날이면 날마다 계속된 촛불집회의 주(主) 연사로 대중들을 선동했다. 촛불집회는 5월 말부터 폭력(暴力)집회로 변질됐지만, 姜의원은 선동행위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척추 골절 수술 등 53명 부상>
     
      姜의원의 불법과 폭력은 국회 안에서도 저질러졌다. 2009년 1월5일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실에선 姜의원의 「공중부양(空中浮揚)」 난동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국회 경위들이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不法점거농성을 하고 있던 민노당 당직자들에 대한 강제 해산을 시도 하자, 姜의원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姜의원은 朴총장 사무실에 난입했고 테이블을 뒤집으려다 힘이 부치자 테이블 위에 올라가 공중으로 몇 번 씩 뛰어올랐다. 내려온 뒤엔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집기를 집어던졌다. 이어 그는 국회의장실을 찾아가 면담을 요청하며 문을 발로 차기도 했다. 姜의원은 이날 국회경위과장 폭행 및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민노당이 올린 동영상을 보면 이날 오후 8시경 경위 30여 명은 불법 부착물을 떼는 과정에서 『천천히 해. 의원님이 다쳐. 조심조심』 등을 연발했다. 반면 민노당 측은 경위들을 향해 『×××들아』라고 욕설을 퍼붓는 등 거칠게 저지했다. 이 동영상에는 이정희 의원이 플래카드를 끝까지 잡고 늘어지는 모습도 찍혀 있다. 민노당은 동영상 설명 자료에서 이를 『李의원이 경위들에게 「밀려」 계단을 「끌려 내려와야 했다」』고 표현했다. 李의원은 이어 경위들에게 『너희들이 국회의원 때려 패는 사람들이야』라고 울부짖지만 동영상에는 경위가 의원을 때려 패는 장면은 없다. 반대로 姜의원이 경위들에게 발길질을 하는 모습은 담겨 있다.
     
      국회사무처는 당시 민주당과 민노당의 不法점거와 暴力행사로 총 3423만 원의 시설물 피해가 발생했고, 척추 골절로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인 직원을 포함해 53명의 경위와 방호원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3월2일 연말·연초 여야 입법대치 과정에서 물리력을 행사한 이유로 강기갑 의원과 함께 민주당 문학진 의원에 대해 국회의 모든 회의에 30일간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는 「출석정지」 조치를 결정했다. 야당 의원들은 이날 한나라당 측이 징계안을 강행하려 하자 항의 퇴장했다.
     
      <4월22일 또 다시 불법, 폭력...>
     
      강기갑 의원은 반성(反省)하지 않았다. 그는 4월22일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또 다시 폭력(暴力)을 사용했다.
     
      이날 민주당과 민노당 소속 의원들이 중심인 「한미FTA 졸속비준반대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는 국회 통외통위 회의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회의장으로 진입했다. 장내 소란이 벌어진 가운데 박진 위원장이 비준안 상정을 선언하자 강기갑 의원 등 야당의원들은 『왜 이렇게 통과시켜야 하느냐』고 격렬하게 항의했다.
     
      姜의원은 이 과정에서 의사봉을 빼앗아 부러뜨리고 마이크를 잡아 뽑는 등 또 다시 난동을 부렸다. 여당의원들은 『왜 남의 상임위에 와서 이러냐』고 맞받았고, 朴위원장은 『이렇게 되면 강기갑·천정배 의원에게 퇴장을 명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민노당 강기갑·이정희 의원에게 『폭력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추구하는 민주적 가치에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강기갑 의원은 6월10일 원외(院外)에서 폭력(暴力)을 사용했다. 이른바 「6월 항쟁 계승·민주회복을 위한 범국민대회」가 열린 이날 서울광장 일대에서는 천막을 치고 밤샘농성을 벌인 야당 의원과 경찰이 하루 종일 크고 작은 마찰을 빚었다. 강기갑 의원은 전경들 어깨를 타고 올라가 주먹을 휘둘렀다.
     
      <쌍용자동차 불법파업에도 개입>
     
      강기갑 의원은 2009년 쌍용자동차 不法파업에도 적극 개입했다. 姜의원 등 민노당 당직자들은 쌍용자동차 노사(勞使)대화가 재개된 8월6일 오전 경기 평택공장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날 「쌍용차를 사랑하는 아내 모임」 회원 20여명은 姜의원 등 당직자들을 찾아가 『우리 남편 회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외부세력 때문에 다 죽게 생겼다』며 국회로 돌아가 줄 것을 요구했다.
     
      姜의원이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느낀다』면서도 계속 자리에 앉아 버티자 일부는 『직접 일으켜 드리겠다』며 다가섰다. 얼굴에 물을 뿌리는 이도 있었다. 이들은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제발 떠나 달라』며 눈물을 흘렸다. 20분 정도 흐느끼던 부인들은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니 그만 돌아가시라』고 남편 동료들이 설득을 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姜의원은 오후에 기자회견을 하는 등 농성장을 지키다 오후 9시쯤 떠났다. 77일간 계속된 쌍용자동차 불법파업은 3000억 원 이상의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낸 채 끝이 났다.
     
      강기갑 의원은 1월5일 국회 폭력사태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姜의원은 5월28일 첫 공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이날 서울남부지법 형사1단독 김홍준 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국회 경위가 농성자들을 강제해산시키려 해 승강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신체적 접촉이 있었을 뿐 의도적으로 폭행하지는 않았다』며 『항의 차원에서 국회 사무총장실에 들어가 탁자 위에서 발을 구르는 등 비신사적인 행동을 한 것은 인정한다』고 밝혔다.
     
      <쿠바무역모델로 가자는 강기갑>
     
      강기갑 민노당 대표가 꿈꾸는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姜의원은 2009년 1월19일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쿠바와 베네수엘라를 「이상적 모델(?)」로 제시했다.
     
      그는 『지금의 무역 체계, WTO 세계화 같은 기조는 반대한다. 새로운 무역 체계와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며 『쿠바나 베네수엘라처럼 서로 잡아먹는 게 아니고 상생관계를 지속하면서 부족하고 취약하고 없는 것을 도와주고 보완해 주고 함께 성장 발전시키는 무역 체계로 가자는 거다. 제3세계에서 그런 주장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현재 GDP규모 세계13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쿠바는 GDP규모조차 확인되지 않을 정도로 몰락한 나라이다. 美 CIA의 월드팩트북은 PPP(구매력)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GDP를 11위, 쿠바와 베네수엘라를 각각 87위와 50위로 평가했다.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기자는『강 대표는 북한의 핵실험과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는 끝까지 직접적인 비판을 하지 않았다. 대신 6자회담이 잘 안 되고 남북 관계가 경색된 데 대한 이명박 정부의 책임론을 길게 언급했다』는 설명을 달아 놓았다.
     
      姜의원은 『금강산에서 우리 관광객이 북한 병사의 총에 맞아 죽었다. 북한은 사과하지 않았다. 그래도 가만히 있어야 한단 말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유감 표명은 하지 않았나? 저는 그렇더라도 단절이라든가, 우리도 못한다는 식보다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하고 똑같은 것인데, 북한이 그럴수록 더 적극적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해야 되는 관계다』
     
      <親北단체 전국연합 대의원 자격 유지>
     
      姜의원은 친북단체 전국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출신이다. 그는 17대 국회의원 시절에도 전국연합 대의원 자격을 유지했었다.
     
      전국연합은 1991년 설립 이래 친북좌파단체들의 회의체로 기능해오다가 2008년 2월 「한국진보연대」라는 左派연합체로 해소(解消), 통합된 조직이다. 전국연합은 『국가보안법 철폐-주한미군 철수-평화협정 체결-연방제 통일』등 북한의 對南노선을 공개적으로 추종해왔다.
     
      예컨대 전국연합은 2001년 9월22일~23일 충북 괴산 보람원 수련원에서 「민족민주전선 일꾼대회」를 가졌다. 당시 참석자들은 소위 「군자산의 약속」이라는 결의를 했는데 그 내용은 북한정권이 주도하는 연방제 통일 노선을 사실상 지지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6·15공동선언 이후 정세는 「조국통일의 대사변기」로 규정할 수 있다』며 『향후 10년을 전후해 자주적 민주정부(自主的 民主政府)가 수립됨으로써 연방통일조국을 완성할 수 있는 승리의 길이 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연방통일조국 건설이 『남한 내 「민족민주전선역량」의 反帝투쟁이 북한의 「사회주의혁명역량」이 승리의 기선을 잡은 反帝전선에 가세(加勢)·결집(結集)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 하여 사실상 북한 주도 통일을 전망했다.
     
      이를 위해 『미국의 군사적 지배뿐 아니라 사상적 예속, 정치적 지배, 경제적 수탈, 문화적 침탈을 반대·배격하여 親美예속체제 전반을 청산할 것』과 『민족민주전선이 親美예속세력을 제거(除去)하고 자주적 민주정부(自主的 民主政府)를 수립할 것』등을 주장했다.
     
      전국연합은 해마다 수백 회(回)의 집회·시위(2006년 한 해 약 800여 차례) 등 행사를 치렀으며,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소위 「범(汎)대위」를 조직해 親北反美운동을 벌여왔다.
     
      이 단체가 주도한 대표적 汎대위는 2002년 여중생汎대위, 2004년 탄핵무효汎국민행동, 2005년 평택汎대위 등을 들 수 있다. 전국연합의 후신인 한국진보연대는 2008년 광우병국민대책회의를 주도하기도 했다.
     
      <美日의 북한인권 문제제기를 오히려 규탄>
     
      姜의원은 국회 진출 이후 원내(院內)에서 쌀수입 반대를 주도하는 한편 원외(院外)에서는 전국농민회총연맹과 함께 소위 「통일농업실현」이라는 이름의 김정일 정권 지원에 주력해 왔다.
     
      그는 2007년 10월13일 「간첩·빨치산 추모제 추모위원」으로도 참여하기도 했다. 이날 광화문 열린공원에서 열린 소위「제1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는 소위 「열사(烈士)」라는 이름으로 간첩·빨치산 출신들을 추모하는 행사였다.
     
      추모대상인 소위 열사 중 상당수는 건국 이후 간첩·빨치산 활동으로 실형을 받은 인물들이었다. 행사장 전시물은 남파간첩 출신과 빨치산 출신들을 가리켜 『동지』와 『열사』로 호칭하며, 각각 『통일조국을 위한 사업을 위해 남한에 파견(派遣)』, 『조국통일투쟁에 전념하시다』 등으로 美化하고 있었다.
     
      姜의원은 2005년 7월14일 여야 의원 23명과 함께 소위 미국·일본 등 강대국의 對北인권문제 제기가 「북한에 대한 강권적 외교압력 행사」라고 비난하며 이를 반대하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결의안은 『미국 네오콘과 일본의 極右세력 등 국제사회 일각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북핵 문제 해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