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t의 돌 230만개를 210단으로 쌓아 
    4천5백년 전 건축기술이 현대인을 압도

    기자의 세 피라미드 중 맨 북쪽에 자리한 가장 큰 피라미드가 파라오 쿠푸의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이다.
    쿠푸는 고왕국 제4왕조의 초대 파라오로 붉은 피라미드와 굽은 피라미드를 만든 스네프루 1세
    의 장남이다. 그의 정식 이름은 고대 이집트어로 「크눔 신의 보호를 받은 자」라는 뜻의 크눔쿠푸우Khnomkhufwey였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를 줄여서 쿠푸Khufu라고 불렀다. 그리스인들은 케오프스Cheopes라고 불렀다.

  • ▲ 쿠프의 대피라미드. 꼭대기 나무 막대기는 원래의 높이 표시. 
    ▲ 쿠프의 대피라미드. 꼭대기 나무 막대기는 원래의 높이 표시. 


    높이 146미터 각변 길이 230미터

    쿠푸에 대해서는 대피라미드를 세운 파라오라는 것 외에는 나라를 어떻게 다스렸으며 피라미드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대피라미드가 쿠푸의 피라미드라고 처음으로 기록을 남긴 것은 헤로도토스였다. 그러나 그는 기원전 5세기에 이집트를 여행했을 때 신관에게 들은 것을 기록으로 남겼을 뿐 그것이 쿠푸의 피라미드라는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19세기 초, 영국군 장교 하워드 바이스Howard Weiss가 대피라미드의 「중량경감의 방」의 벽에서 쿠푸의 이름이 새겨진 카르투시를 발견함으로서 이것이 쿠푸의 피라미드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쿠푸와 관련해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1903년, 아비도스에서 발견된 높이 7.6㎝의 작은 상아로 만든 쿠푸의 좌상으로 상 이집트의 왕관을 쓰고 있으며 현재 이집트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대피라미드가 건조된 것은 신석기시대가 끝난 직후인 기원전 2550년 무렵이었다. 원래 대피라미드는 그 높이가 146m였으나 꼭대기의 일부가 허물어져 지금은 138m이다. 정 네모 밑바닥의 각 변의 길이가 230m이며 경사 각도가 51˚52'으로 2등변 삼각형을 이루고 있어 피라미드는 안정감을 준다.

    이슬람 시대에 모스크 건축재로 다 뜯어가

    대피라미드에 사용된 돌의 평균 높이는 50㎝이지만, 사람의 키를 훨씬 넘는 돌들도 많다. 돌 한 개의 무게가 작은 것은 2t, 큰 것은 20t이나 된다. 평균 무게가 2.5t의 돌 230만개를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210단으로 쌓아올렸다. 그 중 꼭대기의 7단이 무너져 지금은 203단이다. 사용 된 돌의 전체 무게가 약 6백만 t에 이르며 부피가 269만㎥로 지구의 북반구를 43,600분의 1로 줄인 것과 같다. 대피라미드에 사용된 돌을 30㎤로 잘라서 한 줄로 늘어놓으면 지구 둘레의 3분의 2까지 깔 수 있다고 한다.
    대피라미드는 웅장하면서도 매우 정밀하게 만들었다. 대피라미드의 기조부분은 2.1㎝ 이내의 오차로 수평을 유지하고 있으며 옆면의 각 방위가 평균 3분 6초의 오차밖에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남북을 향하고 있다. 피라미드의 네 모서리는 정확하게 직각을 이루고 있으며 밑변의 길이는 4.4㎝의 오차 밖에 없다.
    대피라미드의 겉은 마치 시멘트로 지은 건물에 타일을 입힌 듯이 전체가 흰 석회암의 화장석마감돌으로 곱게 덮여있었다. 그러나 이슬람 시대에 카이로에 모스크를 짓는데 이 돌을 뜯어다가 사용했기 때문에 지금은 속돌이 드러나 겉면이 돌로 쌓은 계단처럼 되어 있다. 이집트를 지배한 아랍인들은 고대 이집트의 기념건축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피라미드에 사용된 돌들이 모두 모스크를 짓는데 필요한 건축자재로만 보였다. 꼭대기도 원래는 금을 입힌 피라미디온이 있어 뾰족했으나 떨어져 나가고 지금은 평평하다. 맨 꼭대기에 보이는 피뢰침 같은 것은 대피라미드의 원래의 높이를 나타내기 위해 세워둔 나무막대기이다.

  • ▲ 낙타와 이집트 소년. (기자 피라미드 앞에서) 
    ▲ 낙타와 이집트 소년. (기자 피라미드 앞에서) 



    1200년전에 대규모 도굴

    대피라미드의 내부에는 「지하 방」「왕비 방」「왕의 방」「중량경감의 방」과 큰 복도·통로·환기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북면 중앙에서 약간 동쪽 지상 17m에 본래의 입구가 있다. 지금은 큰 돌로 막아놓아 드나들 수 없다. 그 오른쪽 아래에 현재 사용 중인 입구가 있다. 이 입구는 9세기 아바스왕조25)의 칼리프 알-마문이 대피라미드를 도굴하기 위해 뚫은 문이다. 그는 『아라비안나이트』에 등장하는 아바스왕조의 칼리프 하룬 알-라시드의 아들이다.
    알 마문의 입구를 지나 좁은 통로를 조금 내려가면 계속 내려가는 통로와 올라가는 통로 갈라진다. 그대로 계속 내려가면 「지하 방」이 나온다. 올라가는 통로는 도중에 좌우로 갈라져 오른쪽으로 가면 「왕비의 방」이 나오고 왼쪽으로 가면 높이 8m, 폭 2m의 계단으로 된 넓은 통로로 이어진다. 이 계단을 40m쯤 올라가면 「왕의 방」이라고 불리는 널방이 나온다. 지상 42m에 있는 이 널방은 대피라미드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왕의 방」은 바닥에 평평한 돌이 깔려있고 서쪽 벽 앞에 뚜껑이 없는 붉은 석관만이 놓여있다. 아스완의 화강암으로 만든 이 석관에 파라오 쿠푸의 미라가 안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장은 무게 50t의 화강암 판자 9장으로 덮여있고 그 위에 「중량경감의 방」이 있다. 이것은 이름 그대로 「왕의 방」에 걸리는 돌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공간이다. 그 밖에도 피라미드 전체에 걸리는 무게의 압력을 분산하기 위해 피라미드 속에 구조 벽을 만들어 놓았다. 대피라미드 속에 이와 같은 공간과 내부 벽을 만들어 놓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뛰어난 설계 지혜와 건축기술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왕의 방'에 공기구멍 2개...파라오의 혼이 드나들다

    「왕의 방」에는 남쪽과 북쪽 벽에 두 개의 작은 공기구멍이 있어 내부 온도가 섭씨 20˚가 되도록 유지해주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구멍을 통해 죽은 파라오의 혼이 드나들었다고 믿었다. 피라미드 내의 방과 큰 복도는 아스완에서 가져온 붉은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매우 견고하고 붉은 색깔을 띠고 있는 화강암을 태양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돌을 비석, 석관, 오벨리스크 따위 종교 기념물에 많이 사용했다.

  • ▲ 대피라미드 출입문. 위가 원래의 문, 아래는 현재 사용중인 출입구. 
    ▲ 대피라미드 출입문. 위가 원래의 문, 아래는 현재 사용중인 출입구. 


    텅빈 내부...외부의 참배 신전들도 다 사라져

    대피라미드 안에 볼만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벽화나 돋새김도 없다. 마치 미로와도 같은 좁은 통로를 따라다니다 보면 무덥고 호흡이 곤란해질 뿐이다. 피라미드 안에 들어가 봤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전에는 관광객들이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경사가 가파르고 위로 올라갈수록 바람이 세어 사고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지금은 금지하고 있다.
    대피라미드의 남동 모퉁이 부근에 작은 위성 피라미드가 3기 있다.
    쿠푸의 어머니 헤테페레스Hetepheres와 왕비 헤누트센Henutsen의 피라미드이다.
    그 밖에 주변에 벽화와 조각들이 있는 귀족들의 마스터바 석실무덤들이 있다. 쿠푸의 피라미드는 피라미드만이 홀로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원래는 피라미드의 동쪽에 장제전이 있었고 북동쪽에는 하안신전Valley Temple이 있었다. 그 사이를 길이 835m의 참배 길로 연결하여 전체적으로 피라미드 복합체Pyramid Complex를 이루었다. 지금은 모두 파손되어 없어지고 그 흔적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