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작 찾아왔어야 하는데, 미안하고..."
    9일 강원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에 위치한 계방산 자락 고(故) 이승복 군의 묘지에서 열린 '이승복 제41주기 추모제'가 거의 끝나갈 무렵 행사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한 노인이 이승복 묘지에 술잔을 올렸다.
    이 노인은 다름 아닌 1968년 11월 울진.삼척으로 침투해 강원도 산골초등학생이던 고 이승복 군을 참혹하게 학살한 무장공비 120명의 일원이었던 김익풍(68) 씨.
    "무장공비에게 항거하다가 무참히도 학살당해 자유민주 수호신으로 산화한 고 이승복 군의..."
    김 씨는 이런 내용의 추도사가 진행되는 동안 두 손을 맞잡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김 씨는 "진작 찾았어야 하고, 계속 오고 싶었는데..이제야 오게 돼 미안하다"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잔을 따랐다"고 말했다.
    "용서해 줘서 감사하다. 가족이나 사회가 고인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유언을 잊지 않고 살아갔으면 좋겠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 김 씨는 "가능하면 시간을 내 이곳을 자주 찾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승복 군의 형 학관 씨도 어렵게 발걸음을 한 김 씨의 손을 잡고 용서의 마음을 전하며 41년 만에 화해했다.
    학관 씨는 "아직도 그들을 보면 어떻게 하고 싶지만 세월이 용서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준 것 같다"며 "그도 그러고 싶어서 했겠느냐? 국가와 이념, 지시에 따라 그랬을 것으로 생각한다"라며 용서의 마음을 전했다.
    학관 씨는 "세월이 무상하다. 앞으로 살면서 어려운 게 더 많을 것인데 지난 일은 잊자"라고 말했다.
    김 씨는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남침한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124군 부대 소속 120명 중 마지막 잔당으로 울진에서 자수한 뒤 1980년대에는 반공강연 등의 활동을 했으나 현재는 서울 근교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추모제를 주관한 대한민국 예비역 영관장교 연합회는 김 씨에게 성금을 전달했다.
    (평창=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