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그뜨가 참 까다로운 여자라는 생각이었다.

    성규를 따라 집으로 돌아갈 의사가 있으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면 되지 무슨 조건을 달고 그러냐는 거였다.

    성규 몰래 야반도주한 게 미안해서 그런가, 싶기는 했다. 야반도주한 게 잘못이긴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고, 이미 일어난 일을 뒤집자면 명분 비스무리한 거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는 거였다.

    나는 오르그뜨가 좀 정치적인 성향을 지닌 여자가 아닐까 싶었다. 천성적으로 말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고 저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거지, 그 모든 일에 이유와 명분을 따진다면, 사람 돌아버릴 일이었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느냐는 거였다.

    물론 정치인들이라면 그래야 할 일이었다. 남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야 할 사람들이었으니까. 명분이 없으면 가차없이 아웃당해야 하는 게 그 세계였다. 하지만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런 것 좀 안 따지면 어떻단 말인가. 남의 눈치 살필 일도 없고 살피라고 할 일도 없는데.

    게다가 남편을 따라가는데 무슨 명분이 필요하단 말인가. 성규가 이 일을 마음 속에 두고두고두고 자신을 경계하게 될까 봐. 그야 자신이 잘못한 게 있는데 그 정도 경계는 감내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 정도 경계조차 감내할 의향이 없다면, 오르그뜨는 참 그런 여자라는 생각이었다. 너무 피곤한 여자라는 거였다.

    성규 혼자였다면 모르겠지만, 그 곁에 나와 지만이도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는 명분이 필요했다면, 그도 오버다. 나나 지만이나 오르그뜨가 성규를 버리고 야반도주했다고 두고두고 기억하고 경계할 사람들이 아니다. 도대체 내 와이프도 아닌 남의 와이프를 두고 우리가 왜 두고두고 기억하고 경계하고 한단 말인가. 요즘같은 바쁜 세상에 말이다.

    지만이는 뭐 모르겠다. 지만이는 아직 미혼이고, 결혼을 해야 하니까 이런 경험을 염두에 두었다가 나중 아내감을 고를 때 참고하게 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랬다. 몽골 사회는 한국 사회만큼 바쁘지 않아서 그럴지는 몰라도, 한국 사회는 너무 바빴다. 그런 거 일일이 기억하고 마음 속에 담아두고 살다가는 결혼생활 못한다.

    오르그뜨가 성규를 따라 당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조건을 단 데에 나는 무척 불만이었지만, 그러나 그 조건이 아주 간단한 것처럼 보였다는 데에 대해서는 또 만족이었다. 내가 똥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다고 잘못한 사람이 무슨 집으로 돌아가는데 조건까지 다냐고 한마디 하려다 참은 게 그 만족스러움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오르그뜨가 내건 조건은 의외로 까다로운 것이었다.

    몽골문화촌을 나와 돌아가는 길에서 성규의 얘기를 듣게 되었을 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나는 성규가 결혼 전에 몽골에서 오르그뜨에게 결혼 프로포즈 선물로 사주었다고 하니까 성규의 집으로 가 오르그뜨의 패물함을 뒤지면, 오르그뜨가 가져오라는 그 진주목걸이를 쉽게 찾아 가져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오르그뜨가 어디 특별히 감춰두지 않았다면 말이다. 지만이도 나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 진주목걸이는 오르그뜨의 패물함에 들어있지 않아요."
    "그럼 어디 있어."
    "몽골에 있어요."
    "몽골?"

    몽골에 있다는 성규의 말에 나와 지만이는 깜짝 놀래었다. 왜 그게 몽골에 있단 말인가. 성규가 사랑의 정표로 그녀에게 선물한 진주목걸이를 오르그뜨는 한국으로 나올 때 가지고 나오지 않았단 말인가. 이런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오르그뜨는 기본적으로 성규를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게 아닌가....

    "몽골의 처제에게 있어요."
    "왜 그게 처제에게 있어. 오르그뜨에게 준 선물이."
    "오르그뜨가 한국으로 나오면서 처제에게 주고 온 거예요."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다는 거야. 사랑의 정표로 준 진주목걸이를 어떻게 다른 사람한테 다시 줄 수가 있다는 거야. 아무리 처제라고 해도 말이지. 누가 누구의 사랑인지 알 수가 없잖아. 몽골 사람들은 그렇게 막 섞여서 산데?" "아니, 그게 아니구요. 이유가 있어요."
    "무슨 이유?"
    "원래 진주목걸이는 내가 오르그뜨에게 준 거지만, 처제도 그 진주목걸이에 반했던 모양이에요. 언젠가 오르그뜨가 흘리는 말 비슷하게 내게 얘기한 적이 있었어요. 진주목걸이 자기 동생한테 주면 안 되겠느냐고요. 성규씨 마음은 내가 받았으니까, 이건 자기 동생한테 줘도 되지 않겠느냐구요. 자기 동생이 무척 갖고 싶어하는데, 몽골을 떠나는 마당에 기념으로 주고 싶다고요."
    "처제라는 애는 왜 그런 걸 탐을 내는 거야. 지 언니 걸."
    "그래서 그러라고 했단 말이야?"
    "그럴 수야 없었지요. 그 진주목걸이는 내가 프로포즈의 의미로 오르그뜨한테 준 건데요."
    "그럼, 오르그뜨가 너 몰래 그걸 지 동생한테 주었다는 거네."
    "그렇지는 않아요. 그 얘기를 듣고 내가 타협점을 찾았지요. 그건 오르그뜨 거니까 처제든 누구든 그 누구에게도 주면 안 되고, 대신 처제를 위해서 내가 그와 유사한 진주목걸이를 다시 사서 주겠노라고 했어요."
    "잘 한 거네. 근데, 왜 지금와서 그 진주목걸이가 처제한테 가 있다는 거야."
    "실은 제가 약속을 못 지켰거든요. 말은 그렇게 해놓고, 마침 결혼준비가 너무 바쁜 나머지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예요. 나중에, 한국에 들어와서, 내가 처제에게 진주목걸이를 사주겠다고 한 약속을 기억하게 된 거예요. 그래, 그제서야 오르그뜨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괜찮다고 하더군요. 내가 자기한테 선물한 그 진주목걸이를 처제한테 주고 왔으니, 당신은 약속을 안 지킨 건 아니라구요. 황당했지만, 약속을 안 지킨 건 나였기 때문에 달리 뭐라 할 수가 없었어요. 자기 동생을 생각하는 오르그뜨의 심사가 기특하기도 했구요."
    "듣고 보니까 또 그런 사연이 있었네."
    "그럼, 그 진주목걸이 하나 때문에 몽골까지 갔다와야 한단 말이야."
    "할 수 없잖아요. 그 진주목걸이를 가져와야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그 똑같은 목걸이를 여기서 사가지고 오르그뜨에게 갖다주면 되잖아. 뭐 그런 것 때문에 몽골까지 갈 필요가 뭐가 있어. 게다가 몽골의 처제한테 이미 주어버린 진주목걸이를 빼앗아 올 수도 없는 일이잖아. 언니가 그걸 찾는다고 달라고 하면 처제가 얼마나 기분 나빠 하겠어. 줄 땐 언제고 도로 빼앗아 간다고."
    "옛날 한 약속을 지켜야지요. 처제 거 하나 새로 사서 처제에게 주고 오르그뜨의 진주목걸이는 가지고 와야지요."
    "그러느니 처제한테 간 진주목걸이는 그냥 내버려두고, 여기서 새 걸 하나 사서 오르그뜨에게 갖다 주란 말이야"
    "그럴 수는 없어요. 오르그뜨는 내가 그녀에게 준 진주목걸이를 기억할 거예요. 아무리 똑같은 걸 사다 준다 하더라도 오르그뜨는 구별을 할 거예요. 그러기를 저도 바라고요."

    성규의 말을 들어보니까 오르그뜨가 가져오라는 진주목걸이를 찾자면 천상 몽골까지 가지않으면 안 될 듯 했다. 여기서 그 똑같은 진주목걸이를 하나 사서 자 가져왔다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였지만, 사실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성규의 말마따나 오르그뜨는 진짜와 가짜를 금방 구별해 낼 거였다. 여자의 직감으로 말이다. 원래 진주목걸이에는 성규의 오르그뜨에 대한 사랑의 정표가 있는 반면 새로 사 가지고 간 것에는 그게 없을 터였기 때문이다.

    천상 몽골까지 갔다오는 게 불가피하긴 한 것 같은데, 그래도 달랑 진주목걸이 하나 때문에 몽골까지 갔다와야 한다는 건 아무래도 한심한 노릇이라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한심한 노릇이라는 생각이 들자, 오르그뜨의 조건이 의외로 까다롭고 번거로운 거라는 느낌이 들게 되는 것이었다. 암만봐도 오르그뜨는 까다롭고 번잡한 여자인 것 같았다.

    아무리 여자가 노래를 잘 하면 뭐하나. 아까 오르그뜨의 노래를 듣고는 성규가 오르그뜨와 결혼을 잘 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잘못했다는 생각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야반도주를 하지 않나 까다롭고 번거로운 조건을 달지 않나, 이런 여자라면, 누가 뭐래도 괜찮은 여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오르그뜨는 내가 몽골에 갔다오기를 바라는 것 같에요. 진주목걸이를 가져오라는 게 그런 의미라는 느낌이에요. 아까 오르그뜨가 진주목걸이를 갔다달라고 할 때, 문득 그런 느낌이 왔었어요. 오르그뜨가 내가 몽골 그녀의 집에 갔다 오기를 바라는구나, 하는 느낌이요. 어쩌면 예전에 한 약속을 이제라도 지키라 하는 의미일지도 모르지요. 처제에게 같은 진주목걸이를 사준다 했으니까요. 이래저래 몽골에는 꼭 갔다와야 할 것 같아요."

    부부끼리 뭔가가 통했다고 하는 데야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부부끼리는 지들끼리만이 통하는 뭔가가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터였다. 몸을 섞고 사는 사이였으니까.

    그러나 좀 생각해 보면, 오버란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성규와 오르그뜨, 얘들이 부부로 산 지 얼마나 되느냐는 거였다. 채 일 년이 안 되었다. 나는 10년이 넘게 와이프와 살을 섞고 살아도 와이프와 나 사이에만 통하는 무슨 느낌이란 게 없다.

    나와 와이프 사이가 너무 메말라서 그런가. 하긴 결혼 초창기에는 나와 와이프 사이에도 뭔가 짜릿하고 통하는 게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긴 하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안 통하게 되었고, 이젠 완전히 안 통하게 되었는지도, 싶긴 하다.

    그러고 보면 성규와 오르그뜨는 같이 산 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서로 통하는지도 모를 일이겠다. 10년이 넘게 산 나와 와이프 사이에는 아무것도 안 통하는데 일 년이 채 안 된 성규와 오르그뜨 사이에는 무언가 느낌이 통한다고 하니. 성규가 통한다고 하니 달리 더 뭐라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나는 빠질 참이었다. 몽골까지 갈 생각이 아니었다. 오르그뜨의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키자고 몽골까지 간다는 게 나는 한심하단 생각이었고, 내가 요즈음 쓰고자 하는 탈북자 소설이 안 돼 한가하다 하더라도 그 정도로까지 한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또 비용의 문제도 있었다. 몽골은 한국이 아니었다. 한국 안에서 움직일 때와 한국을 빠져나가 몽골까지 갔다온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이제 오르그뜨를 다 찾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있었다. 다 찾은 거나 마찬가지이므로 내가 이제 성규를 도울 일이 없고, 돕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몽골에 가는 건 빠지겠다고 하였을 때 정작 안 된다고 펄쩍 뛴 것은 성규보다 지만이었다. 성규는 아쉬운 내색은 하였지만, 나를 설득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만이는 적극적으로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내가 밀린 탈북자 소설을 써야 하고 몽골에 갔다 올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하자, 자기도 한가해서 가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이 사건의 끝장을 보고 싶어서, 없는 시간을 굳이 있는 것처럼 하고 가는 거라고 했다. 내가 비용 문제도 있다고 하자, 비용에 대해서는 자기가 전적으로 책임질 테니까 염려 말고 같이 가자고만 했다. 내가 이제 오르그뜨는 다 찾은 건데 여기서 뭘 또 낄 필요가 있는 거냐고 하는 말엔, 절대 오르그뜨를 다 찾은 게 아니라고 했다. 오르그뜨가 성규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몽골까지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르그뜨를 찾느라 지만이와 성규와 뭉치면서 경험하게 된 바이지만, 지만이와 의견충돌이 생겨서 나는 지만이에게 내 의견을 받아들이게 한 적이 없었다. 번번이 지만이의 의견에 내 의견이 밀려나고, 지만이의 의견에 따랐을 뿐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몽골에 갈 마음이 별로 없었지만, 지만이 적극 주장하는 바람에 내 마음을 내리고 지만이의 주장을 수용했다.

    참 묘한 일이지만, 지만이는 사람에게 설득력이 있었다. 그런 게 사업가 기질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 게 사업가 기질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만이는 사업가라는 게 제 격이라는 느낌이었다. 사업가라면 지만이 같아야, 그래야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었다. 순전히 느낌이어서 입증될 수 없는 것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느낌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지만이가 나의 몽골 비용을 댄다고 하였지만, 우리의 일체의 몽골 비용은 성규가 댔다. 자기 때문에 하는 여행인데, 나나 지만이에게 내게 할 수 없고 꼭 자기가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와 지만이는 성규에게 좀 미안한 감이 들기도 했다. 꽤 값비싼 진주목걸이를 샀지 일체의 여행비용까지 대지, 성규가 적잖은 돈을 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게 자기 때문에 하게 되는 피치 못할 여행이라는 성규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