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前한나라당 대표의 세종시 관련 발언이 논란이다. 언론에 보도된 23일 발언의 요지는 이렇다.
     
     『정치는 신뢰인데, 신뢰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문제는 한나라당의 존립에 관한 문제이다...(法 통과 당시 세종시 문제점을) 수없이 토의했고, 선거 때마다 수없이 많은 약속을 했다...이렇게 큰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무슨 약속을 하겠는가. 과연 국민이 (한나라당을) 믿어주겠는가』
     
     세종시는 朴 前대표 지적처럼 소위 국민과의 신뢰(信賴)를 선택할 것이냐, 장기적 국익(國益)을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세종시는 노무현 수도이전(首都移轉) 공약이 헌재에서 위헌판결을 받게 되자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변형돼 추진된, 국익과는 거리가 먼 포퓰리즘의 상징이다. 「충청표」를 무시할 수 없었던 朴 前대표는 자신이 대표로 있던 2005년 3월2일 노무현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 특별법(세종시법)에 동의했고, 이번에도 「충청표」를 무시할 수 없었던 지 세종시 발언에 나섰다. 그는 23일 『세종시 원안 추진에다 필요하다면 플러스알파가 돼야 한다』고까지 나갔다.
     
     朴 前대표 발언에 대해 주요 언론에서는 원칙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줬다고 일갈(一喝)했다. 그렇다면 정권교체 이후 朴 前대표가 보여준 원칙은 무엇이었나?
     
     1. 朴 前대표는 7월19일 미디어法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 참석과 관련, 『참석하게 된다면 반대(反對)표를 행사하기 위해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전문가들 지적처럼, 미디어法은 여야(與野)-좌우(左右) 또는 친이(親李)-친박(親朴) 사이 정쟁의 대상이 아니었다. 좌경화된 방송의 독과점(獨寡占) 구도를 선의의 경쟁(競爭) 구도로 바꾸려는 것이었다. 방송의 철밥통 구조를 개혁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朴 前대표는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를 무렵 좌익들의 미디어法 반대논리에 힘을 실어줬다. 「알다가도 모를」 원칙이었다.
     
     2. 朴 前대표는 2008년 5월6일 광우병 난동이 시작되자 『쇠고기 문제의 초점이 잘못돼 있다. 지금 협상에 대해 반대하는 네티즌이나 국민들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확산되는 이유는 쇠고기 협상 전후에 정부의 자세와 태도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달 10일 李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국민들이 정부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것(광우병 파동)은 국민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할 일이지, 이념(理念)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朴 前대표의 당시 발언은 한국진보연대 등 친북좌파 단체들이 주도했던 광우병 난동의 본질을 외면한 것이었다. 오히려 미국산 쇠고기가 독극물인 양 떠들어대던 온갖 거짓과 불법을 옹호하고 나섰다. 국익 대신 깽판세력의 불법, 폭력, 무질서 공권력 파괴에 면죄부를 주었다. 역시 「알다가도 모를」 원칙이었다.
     
     3. 朴 前대표는 올 초 「용산사태」와 관련, 화를 많이 냈다는 보도도 나왔다. 1월2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朴 前대표는 『왜 그렇게 빨리 진압에 들어갔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왜 그렇게 기다리지 못했는지 잘 모르겠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朴 前대표를 만났던 한 측근은「연합뉴스」와 통화에서 『朴 前대표가 강경진압에 대해 굉장히 화가 난 것 같았다』면서 『농성 시작 25시간 만에 진압이 이뤄졌는데 강경진압이 너무 빨랐다는 생각이 분명했다』고 전했다. 기사에 따르면, 朴 前대표는 또한 『그렇게 급한 일이었느냐』며 『순식간에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될 수 있느냐』며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朴 前대표는 이번에도 법치와 질서 대신 불법, 폭력, 무질서, 공권력 파괴를 감싸고 나섰다. 용산사태 당시의 상황은 도심 테러에 가까웠다. 不法농성자들은 화염병을 100개 이상 투척하며 용산 일대를 무법천지로 만들어 버렸다. 연쇄적으로 불이 났다. 한 곳을 끄면, 또 다른 군데서 불이 났다. 경찰은 18차례나 설득을 시도했다. 모두 실패했다. 경찰특공대가 들어갔지만, 不法농성자들이 신나를 통째로 부어놓은 탓에 사고가 터졌다. 경찰의 진압은 강경진압도, 과잉진압도, 살인진압도 아니었다. 사람이 죽고 다친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정당한 법집행이었다. 당시 영상을 보면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나라가...나라가 아니다』
     
     朴 前대표의 원칙은 알다가도 모를 기준이다. 그는 용산사태 무정부 상태에 대한 의분(義憤) 대신 『강경진압』 운운하며 공권력을 비난했다. 다 접어두자. 그러나 그것이 진압과정 순직한 김남훈 경사에게 해야 할 말인가?
     
     4. 朴 前대표는 1월5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회의에 참석, 국회 폭력 점거 사태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노당-민주당을 다 같이 비판하는 양비론(兩非論)을 이렇게 폈다.
     
     『지금 야당이 그 동안 한나라당의 협상제의라든가 이런 것을 거부하고 대화도 계속 거부해 가면서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잘못하고 있는 일이다...한나라당이 국가발전을 위하고 또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내놓은 이 법안들이 지금 국민에게 오히려 실망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는 점도 굉장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이 법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국민통합을 위해 다수당인 우리 한나라당이 한걸음 더 나가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5. 朴 前대표는 모호한 정체성(正體性)을 보여 온 인물이다. 2002년 5월14일 김정일을 만나고 돌아와 『어떤 의견을 교환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7.4 남북 공동성명 얘기를 했다. 6.15 공동선언도 7.4 공동성명에서 뜻이 뿌려진 것이다. 7.4 공동성명 채택 당시 씨앗이 뿌려졌지만 아직 완성이 안됐는데 우리 시대에 결실을 보아 평화통일을 위해 같이 힘을 합쳐 노력하자는 얘기를 했다. (내가) 「약속하셨죠」라고 하자 김 위원장이 「약속합니다」라고 말했다.』
     
     김정일과 소위 평화통일(?) 약속을 맺고 돌아 온 朴 前대표는 이후 6.15선언을 지지하는 스탠스를 유지했다. 2004년 서울에서 열린 6.15국제토론회에 참석해서는 『4년 전 당시 평양에 경험들이 아주 생생하다』며 『(6.15선언을) 잘 발전시켜 나가야죠』라고 공언했다.
     
     6.15선언을 통일의 원칙인 양 주장해 온 朴 前대표는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좌익들의 불법, 폭력, 깽판을 감싸는 발언을 거듭하더니 이제는 세종시 문제에서도 국익 대신 소위 약속과 신뢰를 선택했다. 많은 국민들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다. 朴 前대표가 말하는 약속과 신뢰는 무엇인가? 그의 원칙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인가? 권력인가? 인기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