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10월 노벨상 발표가 모두 끝나면 이런저런 생각이 복잡해진다. 그중 하나가 노벨상을 받는 유대인에 관한 것이다. 올해는 건너뛰나 했는데 '웬걸'이다. 며칠 전 발표된 노벨화학상 수상자는 이스라엘 본토 거주 유대인이었다. '세포 내 단백질 합성에 관여하는 리보솜의 구조'를 규명한 아다 요나트(Yonath) 박사(와이즈만과학연구소)가 주인공이다.

    유대인 노벨상 수상자가 몇 명인지 궁금해 '유대인정보'(www.jinfo.org )란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1901년부터 올해까지 모두 179명으로 나와 있다. '국경 없는 기자회' 같은 조직이나 단체를 뺀 개인 수상자 가운데 22%이다. 특히 노벨 경제학상은 총수상자의 41%, 의학상은 27%, 물리학상은 25%를 유대인이 휩쓸었다. '유대인정보'측은 "가계의 절반 이상이 유대인인 경우로 한정했다"고 밝혔다. 나중에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밝혀진 올해 노벨 의학상 수상자(잭 쇼스택 박사·미국인으로 분류)처럼 '숨은 유대인'까지 포함하면 줄잡아 3분의 1은 넘는다는 지적이다.

    본토 인구만 13억명인 중국계와 15억명인 이슬람계의 노벨상 수상자가 여태 6명, 9명인 것과 견줘보면, 세계 인구의 0.25%(1330만명) 남짓한 유대인들의 노벨상 석권은 '기적'에 가깝다. 인구 730여만명의 이스라엘도 건국 61년 만에 9명의 수상자를 냈는데, 이를 인구비율로 환산하면 우리나라는 60명쯤 받아야 한다.

    이런 유대인의 '노벨상 퍼즐(수수께끼)'을 푸는 데 지능지수(IQ)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2002년 핀란드 헬싱키대가 세계 185개국 국민의 평균 IQ를 조사한 결과, 이스라엘의 IQ는 95(26위)로 한국(106·2위), 미국(98·19위) 등보다 낮은 것으로 판명됐다.

    전문가들이 무엇보다 꼽는 비결은 유대 민족 특유의 뿌리 깊은 가정학습 전통이다. 가령 아이들이 처음 글자를 알게 되면, 꿀 한 숟가락을 아이 입에 넣어준다. 5세부터는 '토라'(구약성서의 첫 다섯 편)를 가르치는데, 잘 배우는 어린이를 위해 특별 파티를 열어준다. "자녀와 함께 쉬거나 잠자리에 들 때도 책을 읽어주며 '배움은 달콤하고 즐겁다'는 걸 심어주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이스라엘 근무 전직 외교관)

    극성스러운 교육열로 유명한 '유대인 엄마(Jewish Mother)'와 별도로 자녀가 성인식(13세)을 치를 때까지 학교 교육과 별개로 아버지가 역사와 율법, 도덕을 책임지고 가르치는 '부부 합동 교육'도 특이하다.

    학습의 초점도 다르다. '좋은 질문이 좋은 답보다 훨씬 더 낫다'는 유대 속담처럼 항상 의문을 품고 온갖 질문을 하도록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된다. 매주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 지키는 안식일이 대표적이다. 이때는 TV 시청, 자동차 운전까지 노동으로 금하고 가능한 한 집에서 머물며 독서와 사색, 가족끼리 토론으로 하루를 보낸다(아오키 이사쿠·'유대인의 공부법').

    요컨대 유대인들의 노벨상 '기적'은 국가 차원의 어떤 프로젝트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아기부터 지적(知的)훈련과 토론을 중시하는, 사회 저변에 깔린 '평생 학습 문화'의 산물인 셈이다. 단적으로 1991년 초 42일 동안의 걸프전 당시 이스라엘은 18번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24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대학들은 하루도 휴강하지 않았다고 한다.

    뜨거운 자녀 교육열과 악착스러운 생활자세란 측면에서 '동양의 유대인'으로 불리는 우리는 어떤가? 학원 등 사교육 기관에 자녀 교육을 떠맡긴 채 학교에서조차 창의성이나 상상력과는 거리가 먼 주입식 위주 공부에 머물고 있다. 그럴수록 '노벨상 강국'의 꿈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