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마다 지역마다 웅장한 세계문화유산

    5천여 년 전부터 약 3천년 동안 나일 강 유역에서 찬란하게 핀 고대 이집트 문명의 꽃이 지고
    무려 2천여 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고대 이집트가 남긴 문명의 유산이 지금까지 이집트의 곳곳에 남아 있다. 이들 유산이 전 세계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집트로 유혹하고 있다. 그리고 일단 이집트에 발을 들여놓고 나면 흠뻑 매료시켜 그들로 하여금 몇 번이고 다시 오게 한다.
    이집트의 대표적 유적지로 고대·중세·현대가 어우러져 있고 유명한 이집트 박물관이 있는 이슬람도시 카이로, 신화의 요람 헬리오폴리스, 이집트의 상징인 세 피라미드로 유명한 기자, 세계 최대의 네크로폴리스 사카라, 피라미드 지대의 중심지 옛 왕도 멤피스, 인류 최초의 종교개혁의 무대 아마르나, 부활의 신 오시리스의 성지 아비도스, 사랑의 여신 하트호르의 성지 덴데라, 거대한 신전 유적과 파라오의 암굴무덤의 보고 룩소르, 아름다운 그레코·로만 신전의 에드푸와 콤 옴보, 누비아 유적의 아스완, 태양의 아들 람세스 2세의 땅 아부 심벨,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도시 알렉산드리아, 그림문자 히에로글리프의 도시 라시드를 들 수 있다.

  • ▲ 거대한 신전 입구 탑문. (람세스 3세 장제전, 룩소르 서안) 
    ▲ 거대한 신전 입구 탑문. (람세스 3세 장제전, 룩소르 서안) 



    이들 주요 유적지에는 웅장한 피라미드, 아름다운 오벨리스크, 장려한 신전, 거대한 신전 기둥, 신비로운 돋새김, 암굴무덤의 화려한 벽화에 이르기까지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유산이 숱하게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많은 온갖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들이 가는 곳마다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나일 강 주변은 인류문명이 살아 숨 쉬는 거대한 노천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이집트에는 현재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일곱 군데 있다.
    이슬람 도시 카이로, 카이로 교외 기자에서 다슈르에 이르는 피라미드 지대의 네크로폴리스 유적, 옛 도시 테베의 신전과 암굴무덤 유적, 아스완에서 아부 심벨에 이르는 누비아 유적, 초기 기독교의 성도聖都 아부 메나Abu Mena유적, 모세가 십계명을 계시 받았다는 호레브산의 기슭에 있는 동방교회의 수도원 성 캐더린 유적Saint Catherine Area, 지금은 멸종되었지만, 옛 고래의 화석으로 유명한 이집트 서부사막의 오디 알-히탄Wadi Al-Hitan 일명 고래의 계곡Whale Valley 등이다.

    그리스가 역사에 등장했을때 이미 이집트는 고대문명

    이렇게 세계문화유산을 포함하여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유산이 곳곳에 남아있는 이집트에 매년 3백만 명이 넘는 여행객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와서 나일 강을 따라 여행한다.
    「나일의 물을 마신 사람은 다시 나일로 돌아온다」는 이집트의 속담이 말해주듯이 이집트를 한번 여행한 사람은 꼭 다시 가보고 싶어 한다. 고대 이집트 문명이 남긴 유적과 유물은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더 매력을 느끼고 더 큰 감동을 받는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선 이집트 여행에서 만나는 유적이나 유물은 그 하나하나가 최소 몇 천 년 넘는 오래된 것들이다. 피라미드만 하더라도 4천6백년 가까이 되었다.
    옛 그리스가 역사에 등장했을 때 피라미드나 대스핑크스는 이미 고대 유적에 속했다.
    중국이 자랑하는 만리장성조차도 피라미드가 건조되고 1800년이 지난 뒤에 만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신전을 비롯하여 오벨리스크나 신전 기둥의 돋새김이나 무덤의 벽화까지도 아무리 안 되도 3천년이 넘는다.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유산은 오래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규모가 크다.
    이집트의 상징인 기자의 대피라미드만 하더라도 그 높이가 147m나 된다. 1889년에 파리에 에펠탑이 서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또한 룩소르의 카르나크 대신전은 그 길이가 600m나 된다. 현재 전 세계에 남아 있는 신전 유적 중에서 가장 크다.
    더욱이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유산은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현재 나일 강 유역에 남아있는 피라미드를 비롯하여 신전, 파라오의 무덤만 하더라도 300개가 훨씬 넘는다.
    그리고 일용품·신에게 바친 공물·장제용품·도구·장식품·조각·미술품 따위 지금까지 출토된 유물이 2백만 점이 훨씬 넘는다. 그런데도 아직 사막의 모래 속이나 나일 강 유역의 진흙 속에 묻혀 있는 유물이 많아 지금도 곳곳에서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 매 모습의 신 호루스 조각상 (호루스 대신전, 에드푸) 
    ▲ 매 모습의 신 호루스 조각상 (호루스 대신전, 에드푸) 


    전세계를 점령한 이집트 유물 수백만점

    지금까지 발굴된 유물 중 1백만 점이 넘는 유물들이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 룩소르의 룩소르 박물관, 아스완의 누비아 박물관, 알렉산드리아의 그레코·로만 박물관을 비롯하여 전국 곳곳에 자리한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나머지 1백만 점 가까운 유물들은 런던의 대영 박물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베를린의 이집트 박물관. 로마의 이집트 박물관 따위 세계 유명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오벨리스크를 비롯하여 신전까지 옮겨다 놓았다. 타페 신전은 네덜란드의 라이덴 박물관, 덴두르 신전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다보드 신전은 마드리드의 오에스테 공원, 엘레시야 신전은 이탈리아 토리노의 이집트 박물관에 기증되어 현재 그곳에 서 있다. 누비아 지역에 있던 신전으로 아스완 하이 댐으로 인한 수몰을 피해 옮겨다 놓은 것이다.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유산은 이집트에 가지 않더라도 볼 수 있는 것이 또 하나의 매력이다.

    5천년전의 그림 문자 히에로글리프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유산에는 문자기록이 남아있다. 문자는 문명의 기본요소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5천년 이전에 이미 그들 고유의 그림문자 히에로글리프를 만들어 사용했다. 이 문자를 사용하여 신전의 기둥이나 무덤의 벽화나 파피루스 종이에 그들의 역사와 문화와 생활의 지혜를 기록하여 남겼다. 근세에 와서 신비에 쌓여있던 이 그림문자를 해독하게 되어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문명을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고대 이집트 문명을 더욱 값지게 만들어주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최소 몇 천 년이 넘는 오래된 유적과 유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나일 강 주변만큼 잘 보존된 유적을 갖고 있는 곳도 드물다. 이집트에는 거의 백년에 한 번 정도 큰 지진이 있었다. 그런데도 피라미드나 대스핑크스나 아부심벨의 대신전 같은 거대한 기념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건축기술이 우수하기도 했지만, 비가 오지 않는 건조한 사막기후와 모래가 유적의 보존을 도와주었다.

    색깔까지 잘 보존해준 '고마운 모래'

    좋은 예가 기자의 대피라미드에 대해서 많은 기록을 남긴 헤로도토스가 바로 그 곁에 있는 대스핑크스에 대해서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모래에 묻혀있었기 때문에 그가 아예 보지 못했던 것이다. 18세기 말,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했을 때만 해도 대스핑크스는 모래에 묻혀 머리 부분만 보였다. 지금처럼 전체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19세기 초에 이르러서였다. 몇 천 년이 지났는데도 무덤이나 신전의 벽화나 돋새김이 채색된 채로 선명하게 남아 있을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집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관광지였다는 사실이다.
    문명의 선구자로 자부하고 있던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인들이 기원전부터 이집트를 관광했고 많은 것을 배워갔다.
    이집트 여행을 해보면 고대 이집트 문명이 인류문명의 뿌리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리스·로마·헬레니즘·비잔틴 문명, 그리고 사라센 문명, 그리스도교 문명, 서구문명에 이르기까지 그 바닥에는 고대 이집트 문명이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서구문명은 그리스도교 문명의 이해 없이는 알기 어렵고 고대 이집트 문명의 이해 없이는 서구문명이나 그리스도교 문명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이 고대 이집트 문명이 「인류문명의 뿌리」라고 일컬어지는 까닭이다.

    기파랑( 02-763-8996) 펴냄 <이집트의 유혹> www.guipar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