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해와 지중해 그리고 모래바다에 둘러싸인 나라

    아프리카 대륙의 동북부 모퉁이, 망망대해와도 같은 모래바다沙海에 세계 4대문명의 하나인
    고대 이집트 문명이 발상한 땅, 이집트가 나일 강을 끼고 자리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땅을 타메리Tameri , 케메트Kemet , 타위Taui라고 불렀다.
    고대 이집트어로 「홍수의 땅」, 「검은 땅」, 「두 땅」을 뜻한다.
    해마다 나일 강이 규칙적으로 범람하면서 만들어낸 기름진 검은 두 땅,
    상·하 이집트를 가리켜 붙여진 이름이다.
    고대 이집트는 나일 강을 중심으로 상·하 두 이집트로 나뉘었다. 아스완에서 카이로에 이르는 나일 강 상류의 나일계곡 지대가 상 이집트Upper Egypt로 폭 15~50㎞, 길이 1,000㎞의 마치 좁고 긴 하천 오아시스 같았다. 카이로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하류의 나일 델타 지대가 하 이집트Lower Egypt로 동서 250㎞, 남북 170㎞의 부채 모양의 대평원이었다. 지금은 시나이 반도, 이렇게 다섯 지역으로 나뉜다.

    '검은 땅'과 '붉은 땅'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나일의 강물이 닿는 검은 땅만이 이집트였고 그곳에 살면서 나일의 강물을 마시는 사람만이 이집트인이었다. 강물이 닿지 않는 주변은 데세레트Desheret 곧 「붉은 땅」이라고 불리는 사막으로 그곳은 아예 이집트로 여기지 않았다.
    지금은 이 문명의 땅에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 아랍 공화국the Arab Republic of Egypt이 자리한다.
    아프리카 최대의 도시 카이로가 그 수도이다.
    「이집트」라는 이름은 옛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그리스어로 「이집트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집트를 아이규프토스Aiguptos라고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이것이 영어로 「이집트」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집트는 지리적으로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마치 아프리카 대륙 속의 외딴 섬처럼 동·서·남·북이 각각 홍해·리비아 사막, 누비아 사막, 나일 강의 종착지인 지중해로 에워싸여 있다. 지금은 교통이 발달하여 이들 사막과 바다를 사람이나 문물이 쉽게 넘나들고 있다. 그렇지만 고대에는 이것들이 고대 이집트를 천혜의 요새로 만들어 주변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줬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고대 이집트는 일찍부터 도시국가가 아닌 파라오가 이집트 전체를 다스린 중앙집권체제의 국가를 이룩했으며 그들 특유의 찬란한 문명을 꽃피워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동안 지켜 내려올 수 있었다.

  • 람세스2세 머리상(룩소르 신전 탑문앞).
    ▲ 람세스2세 머리상(룩소르 신전 탑문앞).


    간추린 이집트 역사
    원래 아프리카와 유럽 대륙은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고 많은 호수와 숲으로 덮여 있었다.
    약 1만 년 전 구석기시대가 끝날 무렵 지구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나 두 대륙이 갈라지고 그 사이에 지중해가 생겼다. 나일 강이 생긴 것도 이 무렵이었다. 뒤이어 기후가 크게 변화하면서 아프리카의 동북부 일대는 지금과 같은 사막으로 변했다.
    사막을 피해 고대 이집트인들이 나일 강 유역에 모여든 것은 지금부터 약 9천 년 전이었다. 이때만 해도 그들은 수렵과 채집으로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원시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약 7천 5백 년 전 신석기시대가 시작될 무렵에 이르러서야 그들은 나일 강변에 머물러 살면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다. 점차 사람들이 늘어나자 많은 부락이 생기고 이들을 다스릴 통치조직으로서 노모스Nomos라고 불리는 부족 국가들이 생겼다. 그리고 신을 섬기고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고 예술이 생겨나면서 고대 이집트 문명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당시의 이집트는 역사가 시작되기 전의 선사시대先史時代로 신이 이집트를 다스렸다 해서 「신의 시대Time of God」라고도 불린다.
    약 6천 년 전 선사시대가 끝날 무렵, 고대 이집트는 지금의 멤피스 부근을 경계로 풍토·정치·종교·문화가 서로 다른 상·하 두 이집트로 갈라져 천년 가까이 싸웠다. 나일의 상류에 자리한 상 이집트는 그 상징이 독수리의 여신 네크베트Nekhbet와 로터스01)lotus였고
    왕은 헤제트hedjet라고 불린 흰 왕관을 썼다. 수도는 네케브Nekheb였다.
    하류에 자리한 하 이집트는 그 상징이 코브라의 여신 와제트Wadjyt와 파피루스02)Papyrus였고 왕은 데슈레트deshret라고 불린 붉은 왕관을 썼다. 수도는 부토Buto였다.
    신화의 세계에서 상 이집트는 선의 상징인 신 호루스, 하 이집트는 악의 상징인 신 세트의 영역이었다.
    이집트에 역사시대가 시작된 것은 지금부터 5천 년 조금 전이었다.
    상 이집트의 전설의 왕 나르메르03)Narmer가 상·하 두 이집트를 통일하고 파라오가 지배하는 고대 이집트 왕조를 세우면서였다. 그는 오시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 호루스의 화신 즉 현인신現人神으로서 상 이집트의 흰 왕관에 하 이집트의 붉은 왕관을 합친 프슈켄트Pschent라고 불리는 이중왕관을 쓰고 통일왕조를 62년 동안 다스렸다.
    19세기 말 무렵, 상 이집트의 히에라콘폴리스Hierakonpolis에서 출토된 짙은 녹색의 점판암으로 만든 화장판化粧板이 현재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나르메르의 팔레트Narmer Palette」라고 불리는 이 기념물은 앞면에 상 이집트의 흰 왕관, 뒷면에 하 이집트의 붉은 왕관을 쓴 나르메르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이집트의 역사적 기록이 담긴 최초의 기념물로서 이것이 고대 이집트의 통일을 대변해주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이집트의 역사시대는 반만년에 이르는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고대 이집트 왕조시대 - 그레코·로만시대 - 이슬람시대로 이어져 오늘에 이른다.

    고대 이집트 왕조시대
    고대 이집트 왕조시대는 초기왕조 - 고왕국Old Kingdom - 중왕국Middle Kingdom - 신왕국New Kingdom - 말기왕조시대로 약 3천 년 동안 이어 오면서 30왕조에 약 185명에 이르는 파라오가 고대 이집트를 다스렸다. 물론 그사이에 고대 이집트는 몇 차례 분열되기도 하고 주변 이민족의 침입과 지배를 받은 적도 있었다.
    흔히 「파라오 시대」라고 불리는 왕조시대의 특징은 파라오Pharaoh의 존재였다. 고대 이집트 왕조는 파라오를 정점으로 한 신왕국가神王國家였다. 이 왕조는 유일한 지배자인 파라오의 통치 밑에서 같은 종족, 같은 종교, 같은 언어와 문자, 그리고 같은 풍습과 문화를 바탕으로 훌륭한 고대 국가와 위대한 문명을 이루었다. 파라오는 신왕으로 정치적으로는 왕이며 종교적으로는 태양신의 화신으로 지상의 지배권을 가진 살아있는 신이었다. 파라오의 임무는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혼돈을 방지하는데 있었다.
    「파라오」라는 칭호는 고대 이집트의 「큰 집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의 히에로글리프 페르-아pr-aa에서 유래되었다. 성서 구약에서는 바로Paroh라고 불렀다. 파라오는 머리에 이중왕관을 쓰고, 얼굴에는 권위의 상징인 가짜 수염을 달았다. 그리고 손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도리깨를 들고 있었다.
    파라오는 호루스 이름, 황금 호루스 이름, 두 여신 이름, 즉위 이름, 탄생 이름의 다섯 가지 칭호를 가졌다. 즉위 이름과 탄생 이름은 카르투시cartouche라고 불리는 두 겹의 테를 두른 두루마리 꼴의 장식 속에 표기했다. 카르투시는 고대 이집트어로 「보호하다」라는 뜻으로 세누shenou라고 불렀다. 태양신 라가 파라오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거대한 피라미드나 장려한 신전과 같은 많은 유적들은 왕조시대의 유산이다. 왕조시대의 종교는 다신교로 많은 신을 섬겼고 언어는 고대 이집트어, 문자는 그림문자인 히에로글리프Hieroglyphs를 사용했다. 첫 왕도는 멤피스였으며 이어서 테베로 옮겼다가 말기에 델타지대의 페르-라메수07)Per-Ramessu에 새 왕도를 세워 옮겼다.

    그레코·로만 시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한 것은 기원전 4세기 초였다. 대왕이 직접 이집트를 다스리다가 동방원정에 나가 갑자기 죽자 그의 부하 장군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열었다. 이 왕조는 약 3백 년 동안 고대 이집트 왕조의 전통을 존중하면서 파라오처럼 이집트를 다스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리스의 이집트 지배였다.
    뒤이어 기원전 1세기 말, 이집트는 로마 제국의 속국이 되어 약 7백 년 동안 그 지배를 받았다.
    이렇게 그리스와 로마 제국이 이집트를 지배한 약 천년 동안이 그레코·로만시대로 수도는 알렉산드리아였다. 종교는 다신교에서 일신교인 그리스도교로 바뀌었고 문자는 히에로글리프 대신에 콥트문자를 사용했다.

  • 파라오 돋새김 (카르나크 대신전, 룩소르).
    ▲ 파라오 돋새김 (카르나크 대신전, 룩소르).



    이슬람 시대
    이슬람 제국이 이집트를 점령한 것은 7세기 중반이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1천 3백여 년 동안 이슬람시대가 지속되고 있다.
    이슬람 시대의 이집트는 7세기부터 15세기까지는 우마위야Umaiyad - 툴른Tulunids - 이크쉬드Ikshidids - 파티마Fatimid - 아이유부Ayyubid - 맘루크Mameluke 등 이슬람 왕조 지배시대,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는 오스만 터키의 속주시대, 18세기 후반의 나폴레옹 프랑스군의 침략과 19세기의 영국 보호시대 등 이민족의 지배시대가 계속되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이집트는 알렉산더 대왕의 점령 이후 2천 3백여 년 만에 독립하여 이집트 왕국을 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1952년, 이집트는 가말 압둘 나세르09)G.A.Naser가 이끄는 자유장교단의 쿠데타로 공화국시대가 열려 오늘에 이른다.

  • 파라오 입상 (람세스3세 장제전).
    ▲ 파라오 입상 (람세스3세 장제전).


    21세기의 이집트

    관광·천연자원. 수에즈운하가 미래를 약속

    이집트의 국토는 동서로 1,200㎞, 남북으로 1,300㎞로 그 넓이가 약 100만㎢에 이르며 우리나라의 4.5배이다. 이렇게 넓은 땅에 7천 6백만 명을 헤아리는 인구가 산다. 하지만 국토의 95%가 불모의 사막이고 나머지 5%만이 나일 강 유역의 농경지대로 인구의 99%가 이곳에 산다.
    이집트는 북반구북위 22°~32°-오키나와와 상해의 위도상에 위치해 있지만, 주위가 사막에 둘러싸여 있어 매우 덥고 건조한 전형적인 사막기후이다.
    봄과 가을이 매우 짧다. 5월부터 9월까지가 무더운 여름이고 11월부터 3월까지가 온난한 겨울이다.
    평균 기온은 겨울이 섭씨 14˚, 여름은 30˚이다. 그렇지만 사막지대와 남부 내륙지방은 지열까지 합
    치면 50˚가 훨씬 넘는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나일의 이슬」이라고 불렀던 비는 거의 오지 않아 연평균 강우량이 카이로가 24㎜이고 아스완이 1㎜밖에 안 된다. 그러다보니 이집트에서 기상예보는 풍향, 기온, 운량만 보도하고 비에 대한 예보가 없다. 봄이 되면 타오르는 불꽃처럼 빨간 꽃이 피는 화염수火焰樹가 나일 강변을 붉게 물들인다. 이때부터 5월초까지 함신Khamsin 즉 「50일 바람」이라고 불리는 뜨겁고 건조한 모래바람이 사하라 사막에서 심하게 불어온다. 아라비안나이트에서 「마신魔神이 타고 오는 바람」이라고 한 바로 그 바람이다. 한번 불면 49일 동안 계속 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늦은 봄에 중국 대륙에서 우리나라로 불어오는 황사와 비슷하다. 이 기간에는 이집트 여행을 피하는 것이 좋다. 이 바람이 그치면 그때부터 무더운 여름이 시작된다.
    이집트의 원주민은 니그로이드Negroid를 모체로 아프리카 남부에서 올라온 상 이집트의 함족Hamites과 서아시아에서 건너온 하 이집트의 셈족Semites의 혼혈이었다. 하지만 이집트가 이슬람화 되면서 원주민과 아랍인 사이에 대대적인 혼혈이 이뤄져 지금은 인구의 대부분이 아랍계 이집트인이다.
    다만 6백만 명에 가까운 콥트교도들Copts이 고대 이집트인들의 후손으로 원주민의 피를 이어가고 있다. 그밖에 사막지대에 유목민 베두인족Bedouin, 아스완 남부 누비아 지방에 검은 피부에 곱슬머리의 누비아인Nubian이 산다. 베두윈은 아랍어로 「사막에 산다」는 뜻이며 누비아는 「황금이 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종교는 두 번의 완전한 단절이 있었다. 왕조시대에는 다신교로 많은 신을 섬겼으나 그레코·로만시대에는 일신교인 그리스도교로 바뀌었다. 지금은 이슬람교로 다시 바뀌어 이집트인들의 대부분이 무슬림이다. 다만 이집트는 이슬람 국가인데도 인구의 약 8%가 초기 그리스도교의 일파인 콥트교도들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결코 적은 수가 아니지만, 두 종교가 그들 나름대로 공존하고 있다.
    현재 이집트의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왕조시대 사용했던 고대 이집트어나 그레코·로만시대에 사용했던 콥트어는 사라진지 오래다. 문자도 고대 이집트에서 3천년 넘게 사용했던 그림문자는 신전의 돌기둥이나 벽화의 장식으로 남아 있을 뿐 지금은 아랍 문자만 사용한다. 모든 이슬람 국가가 그러하듯이 이집트의 휴일은 금요일이며 모스크에서 집단예배를 갖는다. 오늘날 이집트는 이슬람 세계의 중심에 있다. 더욱이 고대 문명이 남긴 세계 최대의 관광자원, 「파라오의 수로」라고 불리는 수에즈 운하10)Suez Canal, 시나이 반도의 풍부한 원유와 천연가스 자원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외화가 이집트 경제를 뒷받침 해준다. 다만 현재 이집트가 개발도상국가로 머물러 있어 안타깝다. 그들의 저력이 다시 살아나 21세기에는 새로운 이집트의 번영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기파랑(02-763-8996) 펴냄<이집트의 유혹> www.guipar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