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시설 추태 만발...미국인들 눈쌀"

    언젠가 교포신문이 마련한 '젊은이들과의 대화' 자리에서 우리 한국 젊은이 여러명 만났습니다. 변호사, 검사, 교수, 사회사업가, 재정분석가 등 한국인 2세들과 대화를 나누며 초롱초롱한 눈빛, 정확한 의사전달, 그리고 자신감에 찬 그들의 당당한 모습에 나는 가슴 뿌듯한 자랑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젊은이 뿐만 아닙니다. 이민 온 한국 사람들 또한 부지런하게 안정된 새활터전을 마련합니다. 부부가 열심히 일해서 이민 몇년만에 집을 장만하고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는 것을 보면 참으로 한국사람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일부에서는 이민 간 한국인이 허드렛일이나 한다고 흉을 본다지만, 흉을 보는 그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정신상태입니다. 남을 해치지 않고,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남에게 검은 돈 받지 않고 오직 내 힘으로 떳떳하게 새 생활을 일궈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런가 하면 얼마전 교포신문엔 1면 머릿기사로 "일부 한인 공중도덕 빵점"이라는 얘기가 실렸습니다. 붉은 색 잉크로 대문짝만하게 쓰여져 한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공공 시설 추태 만발...미국인들 눈쌀'
    '사우나탕에서 때밀고 빨래하고, 수영장에서 가래침까지 뱉는다'

    시카고 시내에 있는 대형 헬스클럽에는 군데군데 <가래침을 뱉지 맙시다>라는 한글 표지가 붙어있을 지경이라고,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한인의 추태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보도였습니다. 그 헬스클럽에서 일하는 한국인 종업원은 보도진에게 "문화적 차이로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해명한다는데 이런 모습이 어떻게 한국인의 문화란 말인가. 너무 답답하고 당황한 나머지 그런식으로 변명하는 것이겠지만, 자칫 미국인들이 그것을 한국의 생활문화로 오해할까봐 아연실색 진땀이 날 정도입니다.

    공중도덕, 시민의식은 교육 수준과 관계가 없는 것일까. 교육 수준으로 친다면 우리나라 국민의 교육은 미국에 비해서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육열이 대단하기로는 유태인을 능가합니다. 미국에서는 교육열을 말할때 유태인을 첫 손에 꼽습니다. 선진 사회의 일원으로 공동체 생활을 마찰없이 해나갈 수 있는 시민의식과 공중도덕은 역시 태어날 때부터의 가정생활 습관에서 익혀지기 마련입니다. 그 정신문화의 표현이 행동으로 나타날때 그것이 바로 생활매너인 것입니다.

  • 가. 출입문과 엘리베이터

    뒷사람에게 출입문을 잡아 주는 배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해서 가장 먼저 부딪치는 당황스러움이 출입문에서입니다.
    '아차, 여기는 한국이구나' 할 때는 이미 늦습니다. 별 생각없이 호텔에 들어서다가 앞 사람이 확 밀고 들어간 문이 바로 내 코앞에 부딪칠 듯 닥쳤을때 '이쿠, 저사람은 한국사람이지' 정신이 번쩍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앞에 들어간 사람은 평소 습관대로 뒤돌아보지도 않고 쌩 가버렸지만, 이 습관적 행동이 바로 ''함께 사는 사회'라는 공중의식이 결여된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한국이 아무리 바쁜 사회라지만 바로 뒤에 사람이 따라온다는 낌새는 누구가 쉽게 느끼는 법인데 뒤를 돌아보지는 않더라도 자기가 열고 들어간 문을 한번쯤 잡아주는 행동, 이것은 선진국이라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시민의 교양'인 것입니다. 그런 생활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은 한국사람의 '배려 없는 행동'에 실망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아니, 실망을 넘어 '무례한 한국인'으로 낙인 찍게 되는 것입니다.

    못 본체 문닫고 올라가는 남자

    바로 뒤에 사람이 오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출입문을 세게 밀고 들어가 버린다든지,
    뻔히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향해 오고있는데도 모른 체 얼른 '닫기' 단추를 눌러버린다든지,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성급하게도 '닫기' 단추를 여러번 눌러댄다든지,
    엘리베이터에 타고 내릴 때 앞사람이나 옆사람을 밀고 들어가거나 밀치고 나온다든지,
    엘리베이터 안에서 친구끼리 큰 소리로 떠들거나 휴대폰을 큰 소리로 받는다든지,
    엘리베이터 안에서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때 입을 가리지않고 침을 튀기거나 코를 푼다든지
    도대체 남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치도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무례한'입니다.

    어느 경우에라도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는 반드시 '미안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느 경우에라도 남의 도움을 받았을 때는 반드시 '감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한국사람의 경우, 이 두마디 말을 입밖에 내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현대 세계는 습관적으로 '미안'과 '감사'를 입에 달고 살아야하는 대중사회입니다.

    나. 대중 교통수단

    맨발로 비행기 안을 거니는 사람

    버스나 기차 안에서 앞 좌석에 발을 올려 놓으면 안됩니다. 신발을 벗거나 양말을 벗어 버린다든지, 맨발을 통로에 내밀고 건들거리면 안됩니다. 흔히 비행기 안에서 양말까지 벗고 화장실을 오가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됩니다. 장거리 여행에 답답하고 피로하더라도 양말은 벗지 말아야하고, 비행기에서 주는 실내용 양말을 신든가 실내화를 꼭 신고 다녀야 합니다.

    호텔 안에서도 실내화를 신고 복도를 왕래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생활매너 입니다. 만원버스나 기차에서 통로에 선 채로 오래 대화를 하는 것은 통행을 막는 행동입니다. 여기서도 물론 큰 소리로 떠들거나 휴대폰을 시끄럽게 거는 행동은 절대로 해선 안됩니다. 차 안에서 음식을 먹을 때는 씹는 소리를 내지 말고, 자기 쓰레기는 반드시 자신이 보관했다가 내려서 버리도록 합니다.

    비행기 안에서 의자를 뒤로 젖힐 때 항상 뒤에 있는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식사시간이 되면 젖혔던 의자를 제위치로 세워야 합니다. 승무원의 지적을 받고서야 고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장시간 여행중에 옆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더라도 원하지 않는 눈치일때는 말을 걸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 말로 떠들고 있느냐"

    특히 단체 여행을 할때, 사람들은 자기억제(self-control)를 확 풀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버스나 비행기를 전세라도 낸 듯이 다른 사람을 거의 배려하지 않는 듯이 보입니다. 자기들끼지 마음 놓고 떠들고 심지어 노래까지 합니다. 너무 소란스러워서 다른 사람이 참다 못해 "좀 조용히 합시다"라고 소리칠 정도라면 그들은 공동사회의 일원으로 진짜 빵점입니다.

    또 미국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한국관광회사 안내원들이 자주 곤란을 겪는 경우가 바로 이 소란입니다. 때로 백인들이 "저 사람들 어느 나라 말을 하느냐"고 안내원에게 조용히 물어본답니다. 이때 안내원은 '한국말'이라고 대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창피하다고 합니다. 조용조용, 가만가만, 소곤소곤---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생활매너를 몸에 익혀야겠습니다.

    비행기 착륙후 좀 앉아있으면 안됩니까

    비행기 안의 매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덜커덩---착륙하는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 닿는 소리입니다. 다 왔구나, 안도의 한숨도 잠시, 한 사람 두 사람 일어서기 시작합니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출때까지 문을 열수 없으니 앉아계시기 바랍니다.' 기내방송이 이어지고 비행기는 계속 달립니다. 사람들은 거의 다 일어섰습니다. 저마다 캐빈을 열고 짐을 꺼냅니다. 비행기가 선회하는 바람에 짐을 꺼내던 사람이 비틀거리더니 옆사람 머리에 엎어집니다. 어디서 가방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통로에 서로 앞서려는 다툼이 볼썽 사납습니다. 왜 이리도 급할까요. 비행기를 한발작 앞서 나가봤자 입국 수속과 짐찾기가 남아있는데 어디서나 서두르고 새치기하려는 행동은 무엇이 잘못되어 생겨난 습관인지요? 미국에선 미국인처럼 줄서기를 잘하던 교포도 한국에만 오면 똑 같아진다니, 참.

    다. 공공장소

    가래침 탁탁...껌도 퉤퉤

    방학동안 한국에 다녀온 2세들이 자주 묻는 말이 있습니다. 도대체 한국 사람은 길에다 왜 가래침을 뱉느냐고, 가래를 입안에서 모으는 소리까지 내면서 가래침을 아무데나 퉤퉤 뱉고 침도 마구 뱉으니 더러워서 입과 코를 막게 된다고, 가뜩이나 수많은 차량의 배기가스로 오염된 서울 공기 속에 가래침에서 증발하는 세균은 또 얼마나 많겠느냐고 얼굴을 찡그립니다.
     
    또 지적하는 말이 있습니다. 명동이나 롯데백화점등 번화가 거리는 온통 검은 점박이라고, 아스팔트에 마치 검은 점이 박힌 듯 얼룩덜룩 하고 때로는 끈적끈적 구두바닥에 달라붙는 게 있어서 무엇인가 물어보니 껌 뱉은 자국이라고 했답니다. 껌을 씹다가 거리에 그냥 내뱉는 사람들, 담배꽁초와 함께 경벌죄로 벌금이라도 물려야 하지않느냐고 묻습니다.

    한국 여권 치켜들고 쪼르르 끼어들기

    공항에서 출입국 수속을 할때 새치기를 말아야 합니다. 한국 여권을 손에 들고서 앞에 일행이 서 있다고 깡총깡총 뛰어가 끼어들면 "코리안"이란 속삭임이 어디선가 들립니다.
    은행, 백화점, 관청 등에서 다른 손님의 일을 보고 있는 직원에게 질문을 하는 행위도 새치기와 똑 같습니다. 한마디쯤 물어봐도 되겠지 하고 남의 등뒤에서 큰 소리로 질문을 던지는 행위, 또 그런 질문에 친절을 보인다는 듯이 대답해주는 직원, 모두 잘못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자기 차례가 올때까지 기다리는 인내력, 민주시민의 첫번째 교양 '줄서기'입니다.

    수퍼에서 산 물건을 싣고 카트를 몰고 주차장까지 나왔을 때, 그 카트는 반드시 지정장소에 돌려주고 가야 합니다. 요즘 한국엔 대형마트가 부쩍 많아졌습니다. 얼마전에 가보니 손님의 매너가 아주 몰라 보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젊은 부부가 많은데 그들은 한결같이 카트를 제자리에 돌려놓았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카트를 지정자리에 갖자주는 것, 이런 부모의 행동을 보며 자라난 아이는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똑 같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엄마가 버리니 아이도 버린다

    백화점이나 수퍼에서 물건을 집어 살펴보고 사지 않을 경우, 이 물건은 반드시 제자리에 놓여있었던
    모습 그대로 돌려놓아야 하는 것은 기본 상식입니다. 냉동 고깃덩이를 과자봉지 위에 올려놓고 가버린다면 그 고기는 상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말로 가르칠 필요없이 행동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서울 서초동 어느 초등학교 앞. 방과후 아이를 데리러 온 엄마가 무리지어 서 있습니다. 아이들이 우우 몰려 나오자 엄마들과 짝이 되어 걸어갑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과자봉지를 줍니다. 아마도 간식이겠지요. 잠시 후 엄마가 빈 봉지를 길바닥에 버렸습니다. 아이도 봉지를 버립니다. 골목길은 삽시간에 과자봉지가 흉하게 날아다닙니다. 이때 엄마는 엄마가 아닙니다.

    라. 운전할 때


  • 운전대만 잡으면 욕을 해대는 친구

    '차선을 지켜라' '신호위반 하지마라' '과속하지 마라' '양보운전을 해라'

    누구나 하는 말이고 듣는 말입니다. 아무리 산업이 발전해도 운전문화는 제자리인 모양입니다.
    요즘에는 한 집에 자동차가 두대 세대 있다는 아파트 단지, 외제 고급차도 많아지고 국산차도 외국에서 최고급에 오르기 시작했다니 정말 한국은 갈수록 발전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왜 운전문화는 업그레이드 되지 않는 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교통사고 피해상황을 보면 놀랍기만 합니다. 한해동안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OECD국가 중에 최고라니 참 무서운 사실입니다.
    "전쟁 나도 그만큼은 안죽겠다" 서울 사는 친구의 말입니다.
    이 친구는 학력도 교양도 두루두루 겸비한 한국의 지성인 여성입니다. 한데 이 여성이 운전대를 잡았다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한순간에 상스러운 여성이 됩니다. "아이고, 저 놈도 사내새끼라고 집에 가서는..." 어쩌고 저쩌고,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습니다. 이 친구가 이렇게 열을 내며 욕설을 퍼붓는 이유는, 운전하는 사람들이 도무지 양보를 안해 주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절대 안하는 양보, 남은 꼭 해야?

    하지만 이 친구 역시 남에게 절대 양보를 해주지 않습니다. 골목에서 나오려는 자동차가 손짓을 해가며 신호를 보내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친구 말인 즉 쳐다보면 안 된다나요. 자기는 절대 양보하지 않으면서 양보 않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지식인 숙녀(?)라니, 말 따로, 생각 따로, 행동 따로인 괴리현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운전문화는 문화랄 것도 없습니다.

    너도 나도 큰차, 고급차, 외제차… 이런 과시 문화를 자랑하는 독불장군들이
    남에게 무엇인들 나누고 양보하려 하겠습니까.

    신호등도 없고 정지 사인만 있는 사거리에 차들이 엇비슷하게 도착하면 서로 먼저 가라고 손짓을 하기 때문에 어떤때는 오히려 교통이 지연될 정도가 되는, 그런 생활매너가 생활문화인 나라---
    우리 한국 운전문화에도 어서 스며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내리는 고속도로에서 있었던 일

    오래전 일입니다. 어느 날 학교에 출근하는 길에 타이어가 펑크 났습니다. 난감해져서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경찰차가 나타나 주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슬부슬 비까지 내리는 침침한 날씨.
    지나던 차가 금방 멈추었습니다. 60대초반쯤 되는 남자가 내리더니 내게로 다가와 스페어 타이어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트렁크에서 타이어를 꺼내 바퀴를 바꿔 주었습니다. 그가 그 일을 하는 동안에도 비는 계속 내렸습니다.

    '어쩌나, 미안해서...젖은 옷 세탁 값이라도...20달러 한 장이라도 건넬까? 어쩌지?'
    "자, 다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해서...저, 드라이 클리닝이라도 제가..."

    그의 옷은 축축하게 젖어버렸고 머리카락도 젖어서 곱슬곱슬 엉켜있었습니다.

    '천만에요. 오늘 내가 당신을 도와줄 수 있어서 기쁩니다."
    "너무 감사한데...감사합니다."
    "어서 가보세요. 그럼 안녕히."

    그는 미소를 띄우며 차에 올라타고 사라졌습니다.
    '당신을 도와 줄 수 있어서 기쁩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도와 주는 마음씨. 
    도울 수 있었기에 오히려 자신이 기쁘다고 말하는 사람.

    마. 전화

    3살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대개 3살을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3살쯤 되면 '해도 되는' 행동과 '하지 않아야' 하는 행동의 차이를 구별할 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전화는 어른 뿐 아니라 아이들도 자주 사용하는 것이므로 전화 사용법에 대한 올바른 매너는 3살쯤부터 가르치는 게 좋습니다.

    a. 항상 자기 이름을 먼저 말할 것
    많은 경우 이름 대신 '나야' 또는 '난데' 라고 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매일 같이 전화 통화를 하거나 음성을 아는 가족이 아닌 이상, 목소리를 금방 알아듣지 못하면 받는 쪽에서 미안하고 당황하게 됩니다. '나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응당 알아보리라 생각할텐데 알아야 할 사람을 몰라보니 민망합니다. 더구나 그가 직장 상사라면 죄라도 지은 기분일 것입니다. 잘 아는 사이라 해도 분명하게 이름을 대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b. 전화하는 동안 다른 일을 하지 말 것
    전화하면서 책을 읽는다든지, 설거지를 한다든지, 다른 일을 하느라고
    상대방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되묻는다든지, 전화기를 떨어뜨린다든지
    모두 굉장히 무례한 행동입니다.

    c.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되도록 빨리 끊을 것
    동행한 사람이 있는데도 전화를 오래오래 하는 사람, 심지어 식사를 함께 하면서도 계속 전화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무례하다 못해 무식한 사람입니다. 전화가 길어질 경우 다시 전화하자고 말하고 끊어야 합니다. 공손하게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도록 양해를 구하고 빨리 끊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행동입니다.

    d. 전화는 아침 7시전과 밤 10시 이후에는 급한 일이 아니라면 삼가야 합니다.

    e. 자기 이름을 말할 때 "닥터 김입니다" "김사장입니다" 라는 식으로 직책이나 타이틀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김갑돌입니다'라고 이름만 말합니다.

    f. 전화하면서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g. 음악이나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놓은채 전화하지 않겠지요.

    h. 전화를 잘못 걸었을 때는 그냥 뚝 끊지말고 '미안합니다, 잘못 걸렸습니다"라고 말합니다.

    i. 남의 전화를 엿듣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전화하고 있을 때, 또는 남편이나 아내가 전화하고 있을 때 다른 방에 가서 다른 전화로 엿듣는 행위는 무례함을 넘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저속한 행동입니다.

    j. 언제 어디서나 전화할 때의 음성은 필요 이상으로 높이지 않습니다. 남에게 들릴듯말듯 조용하면서도 분명한 전화 음정을 나름대로 연습해 두는게 좋습니다. 공존의 윤리입니다.

    날마다 되풀이 되는 부모들의 전화 매너는 아이들에게 그대로 복사되기 마련입니다. 부모가 시끄럽게 전화한다든지 엿듣는다든지 전화로 싸운다든지 하면 아이들도 그렇게 합니다. 저질스러운 전화매너가 몸에 밴 아이들이 자라서 품위있는 신사 숙녀로 변할 순 없습니다.

    바. 목욕탕

    "물 좀 잠그시지요"

    미국에도 대중 목욕탕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은 없습니다. 물론 LA나 뉴욕, 시카고 같은 대도시에는 한국인 밀집지역에 한국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한국식 사우나가 많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일입니다. 목욕탕에 들어 온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물을 틀어놓은 채 정말 물쓰듯 물을 쓰는 여자를 가끔 봅니다. 몸에 비누칠을 하고 있을 때도, 이를 닦을 때도, 샴푸를 머리에 문지를 때도 도무지 물을 잠그지 않습니다. 철철철 물이 마냥 넘쳐 흐르도록 내버려 둡니다.

    "저어...물 좀 잠그시지요."
    물이 욕실 바닥에 줄줄 넘쳐 흘러가는 것이 너무나 신경에 거슬려서 말했습니다.
    "물 좀 잠그세요."
    전혀 반응이 없기에 한번 더 말했습니다.
    "당신이 목욕탕 주인이유?"
    흘낏 쳐다본 여자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습니다. 그런가? 내가 목욕탕 주인이 아니면 물 잠그라는 말도 하면 안 되는 건가? 자기 집 화장실 물도 이렇게 마냥 틀어놓고 쓰고 있단 말인가? 여기저기 붙어 있는 '물을 아껴 씁시다'라는 표어는 보이지도 않는가?

    '세탁금지'라는 글이 붙어있는 앞에서 빨래하는 여자도 있습니다. 주로 속옷을 빱니다. 그리고 그 속웃을 사우나탕 안에 널어 놓습니다. 젊은 여자가 자기 집 수돗물값을 아끼려고? 저게 알뜰한 살림솜씨?
    속옷을 저렇게 펼쳐놓으면 자기 알몸을 펼치는 꼴인데...얼굴이 붉어집니다.

    온몸에 오일 바르고 눕는 여자

    오일을 병째로 들고 들어와 온몸에 열심히 바르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오일이나 소금은 바르고 들어가지 마시오' 어느 목욕탕이든 내가 가본 곳에는 사우나탕 입구에 이런 글이 불어 있었습니다. 한글을 읽지 못하는 것도 아닐텐데 하지 말라는 짓을 굳이 하다니.

    "이 안에서 오일을 바르면 안돼요."
    내 말에 그녀는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이 또한 아주 신기한 것인데, 한국에서 많은 경우 사람들은 남의 말에 반응을 안합니다.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표정입니다.
    "거기서 그렇게 오일을 바르면 그 자리가 미끌거리잖아요. 다음에 거기 앉는 사람은 어떡하죠?"
    그녀는 뭐라고 중얼중얼거리더니 아예 길게 누어버렸습니다.
    얼굴에 수건을 덮고 누워있는 여자의 번들거리는 오일. 오일에 젖는 바닥.
    그 여자는 그렇다 치자, 어떻게 단 한 사람도 오일을 온몸에 바르고 드러눕는 여자에게 말 한 마디 안 한단 말인가. 나하고 상관 없는 일이면 누가 엎어지든 미끄러지든 다치든 나는 모른다는 태도. 우울한 일입니다.

    '우유 마사지' 말도 꺼내지 말랬는데...

    '우유로 마사지를 하다니! 망측해라.'
    처음 우유로 마사지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의 솔직한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목욕 바구니에 들어있는 우유가 마시기 위한 것인 줄만 알았지 마사지용인줄은 몰랐습니다. 한국이 변했다 변했다 해도 정말 몰라보게끔 변한 것이 '우유 마사지'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유마사지에 대한 지적만큼은 피하는 게 현명하다는 충고를 들었습니다.
    한국 어느 여성잡지에 글을 써 달라고 요청하는 잡지사 기자의 말이었습니다. 독자들의 공박이 아주 심할 테니 제발 우유마사지 문제만큼은 다루지 말아달라고. 그래도 여기에 새삼 꼭 언급하고 싶은 이유는 '우유는 귀한 음식'이라는 나의 편견(?) 탓인지 모릅니다.

    지금은 우리도 잘사는 나라가 되어서 신혼여행도 외국으로 다들 나가고, 자동차를 몰고 다닌다 어쩐다 하지만, 내가 자라던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우유는 파인애플 깡통처럼 몸이 아파 누워있을 때나 얻어 먹을 수 있는 귀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미국에서 영화에 나오는 우유목욕도 보았고 미국 우유 값이 굉장히 싸기도 하지만 아직도 나는 우유를 온 몸에 주루룩 주루룩 들어 붓는 모습은 참 소화시키기 힘듭니다.
    지구촌의 심각한 식량난이 뉴스에 보도되곤 합니다. 뼈만 앙상한 어린이들, 울 기운조차 없어 울지도 못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 나옵니다. 우유 마사지와 지구촌 기아문제를 연결해 생각하는 내가 잘못된 비약일지요.

    김유미 작가의 홈페이지 www.kimyum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