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익들의 맥아더동상 파괴 선동이 올해도 거듭됐다.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이하 연방통추) 등은 8일 인천 중구 소재 자유공원에서 소위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를 정부 측에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연방통추는 북한정권과의 「연방제 통일」을 추진하자며 만들어진 단체이다. 연방통추는 2009년 1월21일 광화문 집회에서 『연방제는 나쁜 것이 아니다. 연방제는 1년 중 6개월은 남쪽에서 대통령을 하고, 나머지 6개월은 북쪽에서 대통령을 하는 것이다』라며 연방제를 공개적으로 선동해왔다.
     
     연방통추는 6월7일 자살한 강희남 목사가 대표를 맡았던 단체이다. 姜씨는 자살 당시 자신의 방에 「이 목숨을 민족의 재단에」라고 적은 붓글씨 1장과 『지금은 민중주체의 시대다』라는 글귀로 시작하는 A4 용지 1장의 유서를 남겼다. 유서는 『지금은 민중 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 제2의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라는 내용이었다.
     
     親北단체 「전국연합」,「통일연대」의 상임고문과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한 姜씨는 2005년 5월10일 「양키추방공동대책위(이하 양키추방委)」라는 단체를 만들어 『美제국주의 침략의 상징 맥아더동상을 7월17일에 끌어 내리겠다』며 자유공원 등 인천 각지를 돌며 천막농성을 벌였었다. 姜씨를 대표로 한 양키추방委는 산하에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이하 련방통추)」,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이하 주미철본) 등의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당시 양키추방委의 천막농성은 인터넷매체를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다. 「통일뉴스」는 2005년 5월19일 양키추방委 관계자들의 주장을 기사화했는데, 姜씨는 맥아더 동상 철거 이유에 대해 『6.25 당시 맥아더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양키의 식민지 지배를 받지 않고 살 수 있었다』는 요지의 주장을 했었다.
     
     姜씨는 자살 직전까까지도 「김일성(金日成)의 영생(永生)주의」와 「김정일(金正日)의 선군(先軍)정치」를 옹호하고, 북핵(北核)의 필요성을 강변해왔다.
     
     그는 2004년 7월29일 「COREA」라는 인터넷매체와 親北사이트 「민족통신」 등에 게재한 「탈북자 소감」이라는 글에서 『현재 패권주의(覇權主義) 세계에서는 核무기가 말을 한다. 核이 없으면 주권도 지킬 수 없다. 核은 주권이다. 以北 내 조국이 核을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양키들의 콧대를 꺾을 수 있다. 그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같은 해 8월10일 「COREA」에 실린 「저 불량배 부시를 생각한다」는 글에서는 『북조선은 지금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만나볼 수 없는 정치리념과 철학이 있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그것은 金日成 수령의 「永生주의」이며 또 金正日 위원장의 「先軍정치」 리념이다. 북조선이 약하고 가난한 나라로 보이지만 그들이 세계 최강 아메리카와 맞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은 정신력에 의한 것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미사일과 核은 그들의 정신력의 상징물이다. 核은 주권이다. 남조선과 달리 북조선은 核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권국가로 유지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金日成 주석의 「永生주의」와 金正日 위원장의 「先軍정치」 리념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姜씨는 5·16 혁명 당시 주민증을 찢은 뒤 40년간 참정권을 포기했다가 2002년 대선(大選) 당시 『이번만큼은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하겠다』며 주민증을 다시 만들었다. 그는 1994년 김일성(金日成) 사망 시(時) 「북(北)에 조문(弔問)간다, 길 비켜라」는 글을 들고 조문을 강행하다 문산 근방에서 체포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