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여 년간 취재해 온 좌파(左派)의 영역에서 누락된 부분은 《문화(文化)》였다. 문화계 좌파는 어떤 면에서 더 강력하고 더 파괴적이다. 쌍용사태, 용산사태, 촛불난동의 본질을 모르는 중간지대 시민들은 문화계 좌파의 감각적 영상과 이미지로 대한민국에 반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의 이념적 내전(內戰)을 「문화전쟁(culture war)」으로 표현한다면 그 한 가운데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하 민예총 : 民藝總)이 있다. 민예총(民藝總)은 소위 진보(進步)진영 예술인의 결집체로 불린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주한미군을 규탄하고, 이른바 「자주적 통일」을 외치는 데모 현장엔 어김없이 민예총(民藝總)이 있어왔다. 민예총(民藝總) 소속의 놀이패, 소리꾼, 춤꾼, 시인들은 격한 구호(口號)로만 흐를지 모르는 정치적 집회와 시위의 분위기를 띄워주는 이들이다.
     
     민예총(民藝總)은 1988년 11월26일 고은·백낙청·이건용·임진택 등이 발기인대회를 열고 같은 해 12월23일 『민족예술의 발전과 문화예술운동의 대중화』를 목표로 만들어졌다. 산하에는 민족건축인협회, 민족굿위원회, 한국민족극운동협회, 민족문학작가회의(現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미술인협회, 민족사진가협회, 한국민족음악인협회, 민예총(民藝總)영화위원회, 민족춤위원회, 민족서예인협회 등이 소속돼 있다. 문학가를 주축으로 건축가·연국인·영화인·무용가·서도가·사진가·음악가에 풍물굿을 하는 이들까지 망라돼 있다.
     
     민예총(民藝總)은 재야(在野)의 비판세력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집권 이후 문화계 제도권 안으로 집중적 진출을 꾀한다. 민예총(民藝總)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 藝總)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좌파정권, 사실상 727배의 집중적 지원>
     
     민예총(民藝總)과 예총(藝總)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 정부의 지원액(支援額) 자체가 달라졌다. 2008년 10월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좌파정권 당시 문화예술 지원(支援)사업이 이른바 「특정이념에 편향된 민예총(民藝總) 등에 집중 지원됐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한선교(한나라당) 의원은 『문예진흥기금(文藝振興基金)의 경우, 민예총(民藝總)은 노무현 정부 당시 56억 4200만원으로 단일 단체 중 최고액을 지원받았고, 한국작가회의(구 민족문학작가회의)는 3억 601만원을 지원받았다』며 『특히 한국작가회의는 남북교류사업 명목으로도 문예진흥기금 포함 총 사업비 8.57억으로 단일단체 최고의 남북교류사업 지원 수혜를 입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 당시 민예총(民藝總) 지원은 늘고 예총(藝總) 지원은 감소했다』며 『2003년 민예총(民藝總) 지원액은 예총(藝總)의 92%였으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 : 藝術委)가 출범한 2005년 162.9%, 2006년은 거의 2배인 191.3%였다』고 덧붙였다. 예술위(藝術委)는 노무현 집권 기간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민간 주도로 한다는 명분으로 발족한 조직이다.
     
     성윤환(한나라당) 의원 역시 『이전에는 예총(藝總)에 58억 원, 민예총(民藝總)에 25억 원씩 지원하다 2004년부터 58억 원씩 동일하게 지원했다』며 『예총(藝總)은 38만 명, 민예총(民藝總)은 10만 명으로 회원 수가 차이 나는 것을 고려하면 형평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10만 명 회원을 보유한 민예총(民藝總)과 38만 명 회원을 보유한 예총(藝總)에 대한 2006년 지원액 차이는 100:191.3이다. 두 단체 회원 수가 같다고 가정하면, 민예총(民藝總)은 예총보다 727배의 지원을 더 받은 것이 된다. 좌파정권 당시 이른바 「코드지원」이 이뤄졌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규모 면에서 예총(藝總)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민예총(民藝總)이 과거 10년 동안 온갖 특혜를 받으며 문화권력(文化權力)의 핵심으로 성장한 것이다.
     
     좌파정권 당시 문화예술계 굵직한 요직에도 민예총(民藝總) 인사들이 포진했다. 민족문학작가회 현기영 이사장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2003년 2월 임명됐다. 이어 국립현대미술관장, 국립국악원장에도 민예총(民藝總) 출신인 김윤수·김철호 씨가 같은 해 9월 각각 임명되자, 문화예술계가 거세게 반발했다. 「전국 대학 국악과 교수 포럼」은 국립국악원장 임용 철회와 장관 사퇴를 요구했다. 연극계 인사들도 「연극인 100인 성명」을 내고 『문화부는 민예총(民藝總) 중심의 인사 정책을 중지하라』라고 항의했다.
     
     문화예술계의 가장 큰 돈줄로 불리는 예술위(藝術委) 역시 11명 위원 중 예총 소속 인사는 두 명뿐일 정도로 편중 현상을 보였다. 장관 정책보좌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 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 국립민속박물관장, 국립연극원장, 문화재청장, 한국영상자료원장 등에도 민예총(民藝總) 인사들이 대거 진출했다. 盧정권 시절 문화부장관직에 올랐던 당시 국립극장 극장장 김명곤씨(57) 역시 민예총(民藝總) 출신이었다. 영화 「서편제」의 주인공으로 유명세를 탔던 金씨는 행정 경험이 없는 인물이었다.
     
     좌파정권의 문화계 코드인사는 단순히 편파성(偏頗性) 때문에 문제된 것만은 아니다. 「예술과 시민사회」의 오상길 대표는 『국민의 세금을 문화예술 발전에 사용해야 할 문화예술위원회는 순수 학술단체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채 좌파 성향의 산하 단체만 지원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수혜 단체가 민예총(民藝總), 문화연대 등이다. 과거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2006년 지금의 문화예술위원회로 변경된 후 이 같은 편파 지원은 더욱 심각해졌다』고 주장했다. 또 『단순한 지원 자금 배분 문제가 아니라 문화예술계의 편 가르기였다. 친노(親盧) 성향의 문화예술 단체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고, 노무현 정부는 문화예술계의 통제 기관을 둔 셈이었다』라고 덧붙였다.
     
     문화예술계의 물갈이는 현재진행형이다. 2008년 12월5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은 김정헌 前 예술위(藝術委) 위원장은 자신이 「이명박 정부와 코드가 달라서 부당하게 해임당했다」는 요지로 해임무효소송(解任無效訴訟)을 제기한 상태다.
     
     <『민족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표방한다』>
     
     대한민국 문화전쟁(文化戰爭)의 한쪽 편에 서 있는 민예총(民藝總)은 「민족예술의 구심점」임을 자처해왔다. 산하단체들의 이름을 보면 맨 앞에 「민족」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이들의 단체 소개 글에는 『해방 이후 민주화와 함께해온 문화예술운동의 성과를 대중화하고 민족통일을 지향한다. 부정적 과거유산의 극복과 사회개혁을 통해 민족문화의 전통을 올바르게 계승한다. 남북문화 교류에 힘쓰며 통일문화를 끊임없이 준비해 통일의 시대를 열어간다』고 씌어 있다. 민주화(民主化), 민족문화(民族文化), 민족통일(民族統一) 등의 키워드에 해당한다.
     
     우파성향의 소설가 복거일씨는 2006년 12월5일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문화미래포럼」이라는 새로운 문화예술단체를 출범하며 민예총(民藝總)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언젠가부터 문화예술계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탄생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심지어 북한에 역사적 정통성이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의 근간에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기본 원리이자 보편 가치인 자유민주주의가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느 순간 시민도 그것을 잊었다.
     
     문제는 민족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대신한다는 점이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民藝總)),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이 바로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단체들이다. 민족주의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를 최고의 보편 가치로 삼는다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민족주의는 최고의 보편 가치가 될 수 없다. 더욱이 그 민족주의도 변질됐다. 그동안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이런 현실에 대해 침묵하고 외면해왔다. 침묵과 외면도 선택이다. 북한의 인권침해와 핵실험, 남한에 대한 사상적 위협 등을 용인하거나 암묵적으로 지지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이런 암묵적 지지를 거부하기 위해 단체를 결성했다.』
     
     복거일氏 평가에 따르면, 민예총(民藝總)은 『민족주의를 최고의 보편 가치로 삼는』 더구나 『북한의 인권침해와 핵실험, 남한의 사상적 위협 등을 용인(容認)하거나 암묵적으로 지지(支持)하는 변질된 민족주의를 최고의 보편 가치로 삼고 있다』. 민예총(民藝總)은 과연 『민족문화의 전통을 올바르게 계승하여 통일의 시대를 열어가는』 단체인가? 아니면 복거일氏의 혹평(酷評)처럼 변질된 민족주의에 집착하는 퇴행적 단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