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계급

박정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09.08.16 22:16:18

"가장 더러운 말!"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국민 모두가 코카 콜라와 햄버거를 먹고 있는 미국에서 ‘계급’은 일종의 ‘금지된 사상’이다. 한 사회조사 인터뷰에 응한 여성은 “내가 들어본 말 중 가장 더러운 말!”이라고 불쾌해 했고, 한 남자는 “사회 계급이란 말 자체를 없애버려야 해!”라고 화를 내며 말했다.
  또 한 여성은 “내가 사는 동네에 수위, 의사, 사업가, CPA 등 거의 모든 계급이 다 있지만, 나는 그것을 계급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우리는 계급이 있는 나라에 살고 있지 않으니까.”라고 말했다.
  “우리 도시에는 계급이 없다”라는 것이 미국인들이 한결같은 말이다. <계급, 미국의 계급 제도 가이드>(Class, A Guide through the American Status System, 1983)의 저자 폴 퍼셀(Paul Fussell)은 계급이라는 주제에 대한 반응에 따라 계급이 엇갈린다는 것을 확인했다. 계급에 대해 매우 분노하면 중간층이고, 이 주제에 흥미로운 관심을 보일수록 유복한 계층이라는 것이다.


▲                            미국 독립영화 'The American Ruling Class'(2005)의 한장면.


  사회적 평등이라는 공식 프로파간다에 속아 넘어가 외국인들은 미국에 계급이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한 목수의 다음과 같은 말은 계급의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계급이 있다고 말하기는 싫다. 하지만 비슷한 백그라운드의 사람들과 있을 때 더 편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비슷한 백그라운드’라는 집단 구분은 비록 과학적으로는 불안정하지만 한 계급을 다른 계급과 구분짓는 탁월한 방법임에 틀림없다. 당신이 누군가와 이야기하면서 당신의 말 뜻을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편안한 기분을 느낀다면 그것은 당신이 지금 같은 계급의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인들의 미국 사회 진단

  ‘평등의 신화’가 너무나 강력하고, 계급 구분이 하도 복잡해서 외국인들은 가끔 그 뉴앙스를 놓치거나 계급 구조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간과하게 된다. 영국 작가 월터 알렌이 1950년대 미국에 대학 교수로 왔을 때 그는 “인종의 차이, 혹은 새로 이민 오는 민족 그룹 이외에 미국에는 계급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살아보고 그는 뉴 잉글런드의 스놉(속물) 파워를 실감했고, 오랜 가문의 도덕과 문화적 권


▲                    소설 '상류사회' 한장면. 

위에 대한 지역민들의 무조건적 존경심을 확인했다. 
  신분이나 지위가 세습되는 제도가 없이 매 세대가 매번 새롭게 계층을 확정해야 하므로, 미국인들은 자신의 사회 계층이 무엇인지를 채 확인할 겨를이 없다. 이 지구상에서 미국 사회만큼 빨리 변하는 사회도 없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 살다 보니 미국인들은 유럽인들보다 더 자신의 계급 정체성을 발견하기 힘들다.
  현대의 에티켓 책들은 모두 미국에서 나오고 있는데, 그것은 미국이 신참자(new comer)들의 나라라는 것을 의미한다. 신참자란 지리적으로는 이민자들이요, 경제적으로는 신흥부자이고, 연대적으로는 젊은 세대다. 모두가 새로 진입한 사회에 잘 정착하기 위해 남들로부터 존경 받는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1805년에 존 아담스(John Adams)는 “우리 사회에서 보상은 타인의 존중(esteem)과 존경(admiration)이고, 징벌은 무시(neglect)와 경멸(contempt)이다.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고자 하는 욕망은 굶주림에 버금가는 거의 자연적 욕망이고, 세상의 무시와 경멸은 통풍(痛風)이나 결석(結石)에 비견되는 고통이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아일랜드의 시인 토마스 무어는 미국의 평등주의 헌법이 몰고 올 곤경을 예감하고 워싱턴 D.C. 시민들을 “노예로 태어나 귀족이 되려고 투쟁하는 사람들”이라고 묘사했다.
  그로부터 30년 후 프랑스의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에서 미국인의 계급 열망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 “민주주의 국가에서만큼 시민들이 하찮게 여져지는 곳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미국만큼 시민들이 자신의 중요성을 얻기 위해 스스로 싸워야 하는 곳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민주주의 시대에 향유에 대한 열망은 귀족 시대보다 더 강렬하지만 사람들의 희망이나 욕망은 더 흔히 좌절되고, 영혼은 더 피폐해진다.”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은 <민주주의 전망>(Democratic Vistas, 1871)에서 정부가 모든 시민이 평등하다는 환상을 심어줄수록 시민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존중받기 위해 더욱 피나게 투쟁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미국 사회는 ‘모든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고, 아무도 하찮은 사람이 아닌 그런 사회’(everybody is somebody, nobody is anybody)를 지향하는데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민주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더욱 불평등을 느낀다.

계급 없는 사회는 없다 

  미국은 계급 이동성이 용이하고, 운수 좋은 사람에게 보상이 쉽게 돌아가는 사회인만큼 실망과 질시(嫉視) 의 위험도 더 크다. 자신의 힘으로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다는 신화가 강력하므로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환멸 과 고통 또한 강렬하다. 계급이 없다는 공식적 신화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희망이 좌절되면 남는 것은 질투 뿐이다. 대도시 주차장에서 고급 차의 유리창이 깨지는 것에서부터 요즘 자주 일어나는 무차별 총기난사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반사회적 범죄 뒤에 이런 계급적 질투가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1970년대 영국의 ‘윗층, 아래 층’(Upstairs, Downstairs)을 모방하여 만든 TV시리즈 ‘비컨 힐’(Beacon Hill)이 실패하자 사람들은 매우 만족해했다. 미국에는 계급 제도가 아예 없기 때문에 그 프로가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실패한 것은 미국의 계급 구도에서 가장 흥미가 없는, 거의 귀족에 가까운 상층 계급을 다뤘기 때문이다. 만일 중간층의 상승 진입을 중상류층이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고, 또 중간층은 바로 아래 계층에게 그렇게 하고 있는 격돌의 장소를 다뤘다면 그 드라마는 성공했을 것이다.
  사회주의자이며 파티잔 리뷰(Partisan Review)의 편집장이었던 윌리엄 바레트(William Barrett)는 “계급 없는 사회란 유토피아적 환상이다. 사회주의 국가들도 고유의 계급 구조를 발전시키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우리가 어떤 경우건 계급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계급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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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classes 카툰 



  막스 베버의 후계자들은, 재력이 있을 때 그것을 계급이라고 말하고, 사회적 위세가 있으면 지위(status)라고 말하며, 정치적 힘이 있으면 당파(party)라고 말한다. 퍼셀은 그 세 가지를 모두 계급이라고 부르며 특히 지위에 강조점을 둔다. 자기 계급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에서 미국의 계급도 일종의 카스트(caste)라고 그는 주장한다.
  계급은 몇 개가 있는가? 단순히 말하면 두 개의 계급이 있을 뿐이다. 부자와 가난뱅이, 사용자와 피고용자, 지주와 임대자,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그것이다. 경제나 정치적 측면이 아니고 인간의 행동으로 가른다면 인격이 훌륭한 신사와 치사한 인간으로 가를 수 있고, 또는 세련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자기 저택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사람과 그것을 꿈도 꾸지 못하는 사람, 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자가용 승용차가 있는 사람과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사람 등등의 이분법도 가능하다. 죄의식을 가진 계층과 불만에 가득찬 계층으로 나눈 영국의 저술가 질리 쿠퍼(Jilly Cooper)의 이분법도 흥미롭다.
  그에 의하면 한 쪽에는 노동자들보다 돈을 적게 벌면서도 사회를 걱정하며 끊임없이 죄의식을 느끼는 중간층 혹은 상류층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텔레비전과 잡지 화보의 화려한 이미지에 세뇌되어 자신들만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노동 계층이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19세기 작가 매튜 아놀드(Matthew Arnold)가 자기 이웃과 친구들을 상류, 중간, 하류(upper, middle, lower)로 나눈 이래 계급은 흔히 3개로 구분되고 있다. 사르트르의 그 유명한 지식인론도 지배층과 하층민 그리고 그 중간의 지식인이라는 3등분의 구도로 되어 있다. 이 3등분의 개념은 특히 중간층에게 인기가 있다. 한 중간에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도덕적, 사회적 안정감을 준다. 상층 계급의 오만의 악덕, 속물 취미, 낭비, 부주의 등에서 거리를 둘 수 있고, 하층 계급의 더러움, 속박, 수치 등에서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퍼셀은 그 3등급을 각기 셋으로 나누어 모두 9등급으로 구분한다. 즉 상층은 보통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톱 상류(Top out-of-sight)와 그냥 상류(Upper), 그리고 그보다 조금 낮지만 중간 계층 보다는 조금 높은 중상류(Upper middle) 등 셋으로 나누고, 중류는 그냥 중류(Middle), 상층 프롤레타리아(High proletarian), 중간 프롤레타리아(Mid-proletarian)로 나누며, 하류는 하층 프롤레타리아(Low proletarian), 빈곤층(Destitute), 그리고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닥층(Bottom out-of-sight)으로 나누는 것이다.


▲                                                           미국의 upper class home.

최상류층과 최하류층의 유사성

  미국의 진짜 부자는 도로에서 보이지 않는 저택에 사는 사람들이다. 영화 ‘러브 스토리’에서 가난한 여주인공이 부자집 아들인 연인의 집을 방문할 때 자동차로 아무리 들어가도 집이 나오지 않던 장면을 여러분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러므로 톱 클래스는 ‘숨어있는 계급’이다.
  out-of-sight는 ‘눈에 보이지 않는’이라는 글자 그대로의 뜻도 있고, ‘발군(拔群)의’, ‘저 너머의’라는 뜻도 있는데, 퍼셀이 Top out-of-sight라고 했을 때 그것은 그 두가지를 동시에 의미하는 언어 게임이 된다.
  여하튼 그들의 집은 도로나 거리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고, 언덕 깊숙히 숨어 있다. 어쩌면 미국에 있지 않고


▲                                    미국 상류층의 정원.

그리스나 카리브 섬의 별장에 머무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하는 것은 세금으로부터,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질투심에서부터 도망쳐 몰래 숨어 사는 것이 여러 모로 안전하기 때문이다. 
  밴스 패커드(Vance Packard)는 이런 풍조가 1930년대 대공황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추측한다. 대공황이 그들을 공포에 몰아 넣으면서, ‘부를 과시하지 않고 조용히 거의 과묵하게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부의 과시적 장소였던 뉴욕 5번가에서 벗어나 부자들은 차츰 버지니아, 뉴욕주 상부, 코네티커트, 롱 아일런드, 뉴저지 등으로 이동해 갔다.
  부자들이 조용히 몸을 숨기는 현상은 토르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의 그 유명한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가 살았던 1890년대에 부자들은 제복을 입은 하인과 하녀를 부리며 자신들의 부를 과시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질투나 복수심에서 뿐만 아니라 베블렌의 시대보다 훨씬 교활하고 집요해진 언론, 그리고 베블렌이 알지 못했던 더 나쁜 위협, 즉 재단의 구걸자들로부터 피하기 위해 철저하게 몸을 숨긴다. 자신의 부를 자랑스럽게 과시하는 것이 미국 부자들의 행복이었는데, 지금 그들은 불쌍하게도 몰래 숨어서 살아야만 한다. 
  저택이나 사람만이 아니라 최상류층이라는 계급 자체가 사회에서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사회학자, 여론조사 기관, 소비자 조사의 조사원들이 그들을 만날수 없으므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물건을 선호하는지 일반인들은 알 수가 없다. 시야에서도 사라지고, 모든 사회조사에서 아예 항목이 빠져 있다면 사람들은 그 계급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결국 그들은 사회적 존재가 없다. 우리는 카네기 홀, 록펠러 센터는 잘 알고 있지만 그런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실재한다는 것에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힐튼 호텔의 상속녀 패리스 힐튼의 잦은 언론 노출은 참으로 특이한 현상이다.
  사회적 존재가 없는 것은 최하층 계급도 마찬가지다. 최상과 최하 사이에는 질적으로 전혀 다르지만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 최상층이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리 떨어진 대저택에 꼭꼭 숨어 살듯이 밑바닥 계층도 똑같이 우리 눈에 띄지 않는다. 그들은 빚쟁이로부터 도망쳐, 혹은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혀 아무런 사회적 신원증명서 없이 그림자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두 계층은 똑같이 신문에 자기들의 이름이 날까봐 노심초사한다. 상류층은 스캔들이나 사고 같은 가정의 흉사로 이름이 날 가능성이 많고, 하류층은 범죄 기사에 이름이 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베블렌이 ‘하층 혹은 가짜 유한계급’이라고 불렀던 이 최하층은 최상층과 이처럼 많은 것을 공유한다. 스스로 돈을 벌지 않고, 현금을 별로 갖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도 비슷한 모습이다.

최상류층과 상류층의 차이점 - 올드 머니와 뉴 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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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per society 



  상류 계급의 두번 째 층인 상류층(Upper class)도 상당한 재산을 유산으로 받기는 했지만 많은 부분을 자신이 번다. 물론 그들의 일은 우아하고 멋진 직업이다. 은행이나 기업을 소유하고, 싱크 탱크나 재단을 운영하기도 하며, 유서깊은 대학이나 외교 정책 연합 혹은 경제 개발 위원회 등의 일에 간여하고, 또는 상원의원이기도 하다. 비전문가 그룹에서 대사를 뽑던 시절에는 이 계층이 가장 많은 대사를 배출했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은채 꼭꼭 숨어사는 최상류층과는 달리 상류층은 가시적이다. 가끔은 과시적이기까지 하다. 베블런의 과시적 소비 구도에서 빠져 나간 최상류층의 자리를 지금은 이 계층이 담당하고 있다. 퍼셀은 프랭크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나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의 예를 들며 백악관도 그들의 차지라고 말한다. 백악관이 새하얗고 높은 곳에 위치해 만인에게 잘 보인다는 것도 그 임시적 주인들이 최상류층이 아니라 상류층임을 잘 말해준다는 것이다. 글쎄, 부시와 오바마는 어떤 경우일지 궁금하다.
  상류층의 특징을 몇 가지 말해보면, 우선 그들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말한다. 비록 그 언어가 사업이나 일상적 실생활에서 전혀 쓸모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전통적으로 그것이 상류층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는 것, 끊임없이 집안에 손님이 오가는 것 등도 상류층의 필수적인 표시이다. 손님들이 잠 자고 갈 여분의 침대방이 많이 있고, 손님들에게 대접할 음료, 식사, 놀이, 파티 등을 자주 언급하면 그
▲               upper class lounge.

것이 상류층이다.
  최상류층이건 상류층이건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칭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이 가진 물건들은 당연히 아름답고 비싸고 멋진 것이므로 그것들을 칭찬한다는 것은 오히려 무례함이 된다. 남의 물건을 칭찬해 주는 것은 가장 전형적인 중류층의 관습이다. 왜냐하면 이 계급은 남의 인정을 받는다는 확신을 끊임없는 칭찬으로 보증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상류 계급은 자신들의 가치에 대해 아무런 회의가 없다. 그러니 그것을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영국의 오랜 귀족 저택에 초대 받은 한 젊은 아티스트가 헤플화이트(Hepplewhite) 의자 세트를 보고 "이보다 아름다운 의자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하자 주인이 “내 의자를 찬양하다니! 버릇 없는 애송이 같으니라구!”하면서 즉각 그를 내쫒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상류 계급과 식사할 때는 요리의 맛이나 세련된 상차림을 칭찬하지 말아야 한다. 그 집의 안주인이 최상의 요리를 준비했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고, 게다가 그녀 자신이 요리를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실수로 포도주 한 잔을 쏟았다 하더라도 하등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인들이 깨끗이 치울 것이기 때문이다. 큰 잘못을 저지른 듯 당황해 하는 것은 중류층의 표시일 뿐이다.
  그러나 상류 계급의 두번 째 층인 상류층(Upper class)과 톱 클래스인 최상류층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그들의 재산이 상속된 것이냐 아니면 스스로 번 것이냐의 차이이다. 그러니까 최상류층과 상류층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돈의 근원이다. 최상류층도, 상류층도, 중상류층도 돈은 많이 있다. 그러나 돈만이 계급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인 요소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문화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세 계급이 똑같이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돈의 양보다는 근원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하면 자신이 번 돈은 소용 없고 부모로부터 받은 돈만이 계급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톱 3개 등급을 구분하는 주요 사항은 현재 버는 돈과 상속된 돈과의 관계이다. 최상류층, 다시 말해 록펠러(Rockeffllers), 퓨(Pews), 뒤퐁(DuPonts), 멜론(Mellons), 포드(Fords), 밴더빌트(Vanderbilts) 등 가문의 사람들은 완전히 상속된 돈으로만 산다. 그리고 상류의 두 번째 계급인 상류층(Upper class)은 상속과 자기 소득이 반 반씩이고, 세번 째 계급인 중상류층(Upper middle class)는 상속이 없이 완전히 자기가 번 돈으로만 산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그것이 자기 노력에 의해서 버는 것이라면 (영화배우가 대표적이다), 비록 그의 수입이 엄청나고 그의 씀씀이가 최상층의 그것을 흉내 낼 수 있는 정도라 하더라도, 그는 최상류층의 일원이 될 수 없다. 엄청난 재산의 영화배우들이 재산에 걸맞지 않게 좌파적 성향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 올드 머니(old money)의 이론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속칭 올드 머니로 불리는 상속 재산이야말로 최상의 상류 계급을 규정하는 필수불가결의 원칙이다.


▲                     Carnegie의 집. 지금은 Cooper hewit national design museum.

평균적 미국인들이 선망하는 중상류층

  상류층보다 하나 아래 계급인 중상류층(Upper middle)은 중간층과 그 이하의 계급이 가장 모방하고 싶어 하는 계급이다. 여론조사에서 어느 계급이 되고 싶느냐는 질문에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계급도 바로 이 계급이다. 중상류층은 사람들에게 쉽게 노출되어 친근하고 신뢰감을 주기 때문이다. 아래 계층이 보기에 캐비어를 먹고, 식탁에서 핑거 볼(finger bowl)을 사용하고, 프랑스어를 말하는 상류층의 생활방식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지만 그들과 비슷하면서 약간 고급인 중상류층의 생활양식은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따라 할수 있을 것 같다. 생활방식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중상류층은 자기의 힘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상류층이 가진 상속재산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불가능한 조건이지만 중상류층의 자수성가 사례는 자기의 노력 여하에 따라 자신도 실현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미국 상류층의 집.


  <성공하는 옷차림>(Dress for Success, 1975), <성공하는 생활방식>(Live for Success, 1981)의 저자 존 T. 몰로이(Johs T. Molloy)는 성공하려면 중상류층처럼 옷을 입고, 중상류처럼 생활하라고 충고한다. 왜냐하면 중상류층은 성공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의 복장은 중상류층의 외모를 만들어준다”고 그는 말한다.
  그에 의하면 회사 임원의 사무실도 성공의 기운을 풍기도록 꾸며져야 한다. 예컨대 성공적인 사무실은 “우선 넓어야 하고, 사람이 많지 않아야 하며, 부티가 나고, 잘 유지 관리되어야 한다. 고상한 취미를 보여야 하고, 깊은 인상을 주어야 하며, 안락해야 한다. 그리고 마치 개인 집처럼 사적인 기분을 풍겨야 한다.” 임원실만이 아니라 손님이 기다리는 대기실도 역시 “모든 방문객에게 중상류층의 기분을 주어야 한다.”
 
지리적 장소의 계급적 요소

  지리적 장소도 매우 중요한 계급적 요소이다. 장소는 계급과 아무 상관이 없고, 어디에 있건 최상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벌써 중류층의 생각이다.
  코스모폴리탄 클럽의 회장이 한 신입회원을 환영하며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젊은이가 뉴멕시코주에서 왔다고 하자 회장은 싸늘하게 시선을 돌린다.
  지리적 장소가 사회적인 계급의 표지를 얻는 것은 우선 앵글로-색슨과의 연관성이다. 얼마나 오래 동안 앵글로-색슨이 지배하고 있었던 장소냐에 따라 장소의 등급이 달라진다. 뉴포트, 로드 아일런드, 코네티커트, 메인 등이 그런 곳이다. 로스 앤젤리스의 급수가 떨어지는 것은 그 도시가 못살고 저급해서가 아니라 스페인의 지배를 오래 받았기 때문이다. 세인트 루이스가 텍사스의 산 안토니오 보다 급수가 높은 것도 그 때문이다.
  저명인사 명부인 후스후(Who's Who)에 올라 있는 사람의 수가 많은 곳, 또는 잡지 ‘아틀란틱’(The Atlantic) 구독자의 숫자나 개솔린 소비량에 따라 급수가 정해지기도 한다. 특정 종교의 근거지는 등급이 떨어진다. 예컨대 솔트 레이크 시티 같은 곳은 상류사회 지역이 될 수 없다.
  그 도시에 유명 신문이 있는지의 여부도 급수의 기준이 된다. 전 세계 대사관들이 있는 수도 워싱턴의 계급적 열등감은 일요판에 ‘오늘의 운세’(호로스코프)와 TV 연속극 줄거리 그리고 앤 랜더스(Ann Landers) 독자 상담을 싣고 있는 워싱턴 포스트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톱 클래스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뉴욕이 1위이고 시카고, 샌 프랜시스코,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보스톤, 클리블랜드 등이 그 뒤를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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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per class cartoon.

미국 인구의 80%가 중류층

  <화이트 칼라>(White Collar, 1951), <파워 엘리트>(The Power Elite, 1956)등의 저자인 라이트 밀스(C. Wright Mills)에 의하면 지위에 대한 공포는 중류층의 특징이다. 그래서 중류층은 크레딧 카드 수를 늘리고, 뉴요커(New Yorker)를 정기구독한다. 그것이 중상류층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가 중류층인가? 석유회사 직원, 컴퓨터 프로그래머, 우주선 엔니지어, 마케팅 메니저들이다. IBM, 뒤퐁(DuPont) 같은 회사들은 톱클래스가 아닌 대학 졸업생들을 고용하여, 그들이 일단 조직의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주입시키며 충성심을 유도한다. 직업을 잃을 것을 두려워 하여 이들은 수동적으로 되고, 자신이 거대한 조직의 교체가능한 한 부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차츰 인간성을 상실해 간다. “직원 연수는 우리 직원들을 언제나 교체가능한 인력으로 만든다”고 IBM의 한 임원이 공공연하게 말한 적이 있다.
  노예처럼 취급 당하는 중간 계급은 결과의 환상에 젖어 열심히 일하지만, 신입사원 연수생으로 시작해 30-40년간 성실하게 근무한 이후 퇴임하며, 문득 “이게 다란 말인가?”라고 생각한다. 미국 인구의 80%가 중류층이다. 
  하찮은 인물로 비칠까 두려워 중류층의 여성은 쇼핑하러 갈 때도 옷을 잘 차려 입고 간다. 백화점에서는 계급이 확연히 구별되어, 옷을 잘 입은 여성이 대접을 잘 받기 때문이다.
  스놉(snob, 속물)의 사전적 정의는 “태생이나 부를 가치의 유일한 척도로 삼는 사람”이다. 중류층에 이런 사람들이 가장 많다. 자신의 취향이 저급하지나 않은지 노심초사하는 중류층은 언제나 자신의 자연스러운 경향을 억누른다. 또 예의바르고 올바른 일만 해야 한다는 심한 강박증에 시달린다. 별로 대단하지 않은 디너 파티 후에도 감사 편지를 쓰거나, 과도하게 비싼 선물을 하는 것 등이 모두 그것이다.
  어디에 소속되려는 욕구는 중간층의 또 다른 표시이다. ‘이 달의 책’ 클럽이니 ‘문학 조합’이니 하는 모임의 주 고객이 중류층이다. 그들은 남과 고립되어 혼자 있다는 것에 원초적인 공포를 느낀다. 남다른 개성이나 기이한 행동 또는 혼자 고립된 내향성 등은 중간층이 가장 타기하는 관습이다.  
  자동차의 계급 표현은 이미 진부한 얘기지만 그것은 차의 종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 위에 써서 과시하는 것, 즉 뒷 유리창에 붙인 명문 대학 스티커가 역시 계급의 한 요소이다. 미국인은 지위에 대한 불안감으로 자기가 나온 대학을 자기 자동차 뒷 유리에 써넣는 유일한 국민이다. 세습되는 계급이 없는 미국인들은 다른 그 어느 나라에서보다 학벌에 의존할 수 밖에 없으므로, 고등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계급적 지표가 된다. 반드시 명문 대학이 아니더라도 자동차 뒷 유리에 출신 대학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것을 보면, 그만큼 대학 스티커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Vanderbilt masion. 지금은 박물관.

한국의 계급적 상황은?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에서 소비라는 외면적 현상에 가려진 계급적인 열망에 주목했었던 나는 폴 퍼셀의 책 <계급>을 읽으며, 여기에 가감(加減)할 한국적 계급의 지표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계급적인 구분을 시시콜콜하게 묘사해 놓으면 그것이 속물적 고정관념으로 강화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또한, 계급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는 사실을 희화화하여 계급적인 엄숙함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에 계급이 어디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평등주의 신화에 매몰된 허위의식의 소유자일 뿐이다. 엄연히 계급이 있는 사회라면 그 실상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계급의 속박에서 풀려나는 길일 것이다.
  19세기에 영국의 사회 계급을 면밀히 조사한 매튜 아놀드는 각 계급에 외계인과도 같은 이단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상상력이 빈약하고 이해력이 협소한 사람들은 상류층으로 올라가려 애를 쓰지만 재능과 감수성을 가진 소수들은 계급의 족쇄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다.
  퍼셀은 그런 사람들을 현대의 미국에 적용하여 X 피플이라 명명하고, 계급의 제약과 불안감에서 벗어난 이들 X피플만이 미국의 진정한 이념인 자유를 제대로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다소 지나치게 꼼꼼한 그의 계급 묘사의 희망적인 메시지인 듯 했다.
  미국과 엄청나게 다르면서 또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한국도 문제의 해결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보았다.     

박정자 교수의 홈페이지 www.cjpark.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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